현대시의 숲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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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의 탄생 4 : 만요슈와 일본 현대문학
이름 시냇물 이메일

만요슈의 연시

春の野に          봄날 들녘에
霞たなびき        봄 안개 드리워져
うら悲し          왠지 서글퍼
この夕かげに      이 저녁 어스름에
鴬なくも          꾀꼬리 울고 있네                             ㅡ 오토모노 야카모치

 

 산과 들녘에 원앙 한 쌍 찍지어 다정하듯이 다정했던 내 님을 누가 데리고 갔다
 
그루터기마다 꽃은 피어나지만 어째서일까, 사랑스런 그대는 다시 피어나지 않네
ㅡ 노나카노 가와라노 후비토미쓰

 사랑하는 이 그리워하기보다 가을 싸리가 피었다가 지듯이 나 그리 되고 싶어 

ㅡ 2권 120

 

먼 바다 파도 밀려오는 해변에 거친 바위를 화려한 베개인 양 베고 누운 당신이여

ㅡ 2권 222 ; 石中死人歌

 

당신이 바로 패랭이면 좋겠네 나 아침마다 그 꽃 손에 들고서 항상 그리워하리

ㅡ 3권 408

 

집에 있으면 임의 팔 베개 삼아 누웠을 텐데 풀 베개 베고 누운이 나그네 가여워라
ㅡ 3권 415 ; 立田山死人歌

 

아내와 함께 둘이서 가꾸었던 우리 뜨락은 나무도 무성하게 자라나 버렸구나

ㅡ 3권 452

 

가스가 산에 아침마다 구름 끼듯이 언제나 보고 싶어 생각나는 그대여  

ㅡ 3권 584

 

뱃사공이여 빨리 배를 젓게나 한 해 동안에 두 번 오갈 수 있는 내 님 아니기에
ㅡ 10권 2077

 

당신 그리다 죽은 후에 그 무슨 소용 있을고 내 살아 있는 동안 만나보고 싶어라
ㅡ 11권 2592

 

내 님이 나를 아주 그리나보다 마시는 물에 임 얼굴 떠올라서 잊을 수가 없구나
ㅡ 20권 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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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탄생 4] 아래 글은 계간『시평』2011년 봄호 원고입니다.



『만요슈』와 일본현대문학

                                        

      김응교

 

    작년(2010년) 10월 7일 교보문고에서 열린 작가 강연회에서 나는 진행을 맡았다.
    베스트셀러『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후 ‘세상’으로 줄인다)를 쓴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은 큐슈대학 농학부에 들어갈 때만 해도 소설가가 될지 몰랐다고 한다. 졸업하고 쥬크(입시학원) 선생으로 일하다가 스물일골 살에 등단하고 소설집 두 권을 냈다. 그렇지만 두 권의 책은 처참하게 외면당하여, 그냥 입시학원 선생으로 살자 하다가 2001년 4월에 『세상』을 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그때 나는 도쿄에 살고 있었는데 ‘세카츄’(일본에서는 이 소설을 ‘세카츄’라고 줄여 말한다)의 열풍은 대단했다

   카타야마 씨는 괴테를 인용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괴테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랑으로 시작하여 자살로 끝 맺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백혈병에 걸린 소녀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결국에는 같은 구조입니다. 저는 제 소설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단가 모음집으로 8세기 후반부터 전해진『만요슈[萬葉集]』에 나타나는 사랑의 원류와 비교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만요슈』에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추억하는 노래인 ‘만가’와 궁중시인이 일반시민인 ‘농민’의 다양한 이야기 등 시대적으로도 다양한 노래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만요슈』에 수록된 만가(輓歌)는 ‘사랑’을 읊은 현대시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만가에서 자주 나오는 ‘나의 마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라는 구절을 별 생각없이 들으면, 현대인들의 사랑노래로 들립니다. 뿐만 아니다. ‘바닷가에서 물새들이 울고 있다’는 관용구는, 고대인들이 ‘물새’를 죽은 이를 불러오는 사자로 여겼다는 점만 의식하지 않는다면, 누가 듣더라도 이건 그야말로 절절한 사랑시의 한 구절입니다. 『만엽집』에 자주 쓰이는 ‘기다린다’는 '죽은 자의 영혼이 되살아나 나에게 다가오는 것, 혹은 죽은 자의 혼을 맞이하러 가는 것'이라는 죽은 자와의 교감을 나타내는 의미지만, 역시 연애감정에 대입 가능합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산 사람으로 대체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죽은 이를 추억하고 사모하는 ‘만가’는 ‘연가(戀歌)’의 원형으로 일본문학에 뿌리 내린 것입니다. 이만치 일본문학에서 사랑이라 하면 죽음을 밑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인간에게 친한 이의 죽음 만큼 괴로운 것도 없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대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세상』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작가들은 뻔한 이야기를 피해 특이한 소재를 찾는데, 오히려 카타야마 씨는 청소년이 사랑하는 뻔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부닥칩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남녀 사랑이야기는 「공무도하가」, 「배따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황순원 「소나기」, 에릭 시절의 『러브스토리』등 너무도 흔한 스토리입니다. 『세상의』의 표면적인 사랑은 문창과 4학년 정도라면 상상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청소년 남녀의 사랑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실례일텐데, 나는 더 이어 말했다.
   “이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이면적인 스토리입니다. 뻔한 이야기를 ‘영원한 사랑’으로 만든 것은 이 소설의 내면을 깔고 있는 이면적인 스토리라인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사랑하던 할머니가 죽자 그 할머니의 유골함에서 뼛가루를 훔치는 노인의 사랑이고, 그것은 곧 『만요슈』에 나오는 추모시의 원형을 생각게 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 』라는 소설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표면적 구조인 청소년의 사랑은 뻔하지만, 그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이면적 구조에 나타나는 죽은 연인 할머니의 뼛가루를 훔치는 노인의 사랑이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구조, 『만요슈』에서 나오는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을 회감(回感)시킨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일본식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카타야마 씨가 이 작품의 성과를 넘어서는 것, 자기가 만든 산맥을 넘는 것이 지금부터의 과제일텐데, 현재 쉽 살 초반기이니 삽십 년 이상 새로운 작품으로 뵙고 싶습니다.”
   자칫 잘못 들으면 실례인 표현이 많았을텐데, 카타야마 씨는 자기 소설을 새롭게 분석해줘서 고맙다며 내 평가를 극찬했다.

 

   과연 『만요슈』라는 책은 어떤 책이기에 현대 일본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을까?
  이 책은 『고지키[古事記]』, 『니혼쇼키[日本書紀]』등과 비슷한 8세기말에 편찬되었다. 이 세 종류의 책은 모두 고대 일본이 대내외적으로 고대국가를 확립하고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끼고 벌인 국가적 수사(修史) 작업의 일환이었다. 문화적인 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의식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함에 따라 운문 분야에서 『만요슈』가 편찬되었다(구정호,『만요슈』,살림,2005 이 글에 나오는 시는 이 책에서 인용했다.)
  전체 20권이지만, 몇 권씩 편집되어 있던 것을 모아 하나의 가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노래의 수는 4500여 수로부터  이루어지지만, 다른 판본의 사본에 의거해 세는 방법도 있고, 노래 수에 관해서도 갖가지 설이 있다.
  카타야마 씨와 대담했던 『만요슈』의 시는 관을 끌 때의 노래. 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반카[挽歌]를 말한다. 가령,

 

   산과 들녘에 원앙 한 쌍 찍지어 다정하듯이 다정했던 내 님을 누가 데리고 갔다

 

  이 시는 나카노 오에 왕자가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단히 상심할 때, 노나카노라는 사진이 이 시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이 시를 읽고 왕자는 오열마며 슬퍼하면서도 이 노래를 칭찬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문학의 침체기마다 주목을 받으며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도 『만요슈』였고, 태평양전쟁 때 그 살벌한 전장에서 일본의 젊은 병사들이 품속에 품고 암송했던 책도 『만요슈』였다고 한다. 그만큼 『만요슈』는 일본인이 회귀해야 할 미(美)의 원점이기도 했다. .
  물론 『만요슈』에 실린 시들 중에 천황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는 시들이 많다. 이른바 이 책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만들어낸 고전’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만요슈는 민족의 노래입니다. 일본 민족 전체가 솔직한 자세로 다같이 인간으로서의 공통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위로는 청황으로부터 아래는 물질하는 해녀와 걸인까지가 모두 그렇습니다. 천황이 나물 캐는 소녀에게 연가를 지어 보냈고, 또 신분이 낮은 소녀가 높은 사람에게 진솔한 연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계층의 사람이 이 시대의 현실 문제에 직면해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하루오 시라네・스즈키 토미 엮음『창조된 고전』, 소명출판, 2002. 88면 재인용)

 

   『만요슈』의 사랑은 천황제와 견결히 내통하고 있다. 『만요슈』는 지배 체제를 확립시킨 천황가의 칙명에 의해 편찬된 칙선 노래집니다. 고대 천황제 450년간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 책에서 말하는 민족혼이란 천황제와 혼합되어 관념화 된 ‘천황나라의 국민성’인 것이다. 작품에 나오는 '그대'[君]라는 단어도 천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 내면에도 천황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황제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에게 『만요슈』는 꺼끄러운 고전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죽음과 내통하는 사랑’에 대한 원형적 심리상태는 일본 현대문학까지 이어졌고, 거기에 공감하는 현대인은 이 원형을 되살려낸 작품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강연과 대담을 마치고 한식집에 갔는데, 카타야마 씨는 내가 한 말이 글로 발표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에 가자마자 메일로 인사하는 겸손한 분이었다. 『만요슈』의 사랑에 대한 공감이 그와 나 사이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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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야마 쿄이치 : 1986년 「기척」으로 『문학계』신인상을 수상했고 현재 후쿠오카 현에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1986년 '문학계'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카타야마 쿄이치는 지난 2001년『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그해 일본소설 최다 판매부수(320만부)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만월의 밤, 모비딕이』,『네가 모르는 세계의 움직임』,『존 레논을 믿지마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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