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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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문숲길3] 경계에 피는 꽃
이름 시냇물 이메일

[인문숲길3]

* 시에 대해 쓰다가 막히면 인문학에 대해 쓴 글을 올리려 합니다. 혜량 바랍니다.  

 

경계에 피는 꽃

 

 

1. 

얼마전 디아스포라 얘기를 썼고, 우리 안에 디아스포라 얘기를 썼었지요. 우리 안에 새터민,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자, 귀화자, 뉴코리언(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직 총인구의 2%가 안 되지만, 국제결혼률은 전체 13% 정도죠. 

 

전체인구 13%가 '이주민 한국인'에 이르면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형 다문화 국가가 되고, 문학교과서에도 '이주된 한국인', 가령 네팔에서 귀화한 한국인의 글이 실리겠지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독일교과서에 실린 것이 1960년대?

 

새터민(탈북자)를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로 보느냐, 논쟁거리지요. 개별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암튼 이제 택배 하는 분 중에 조선족 분도 적지 않은 거 같아요.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우리나라도 유럽형 다문화 사회가 된다죠.

 

2.

월드컵 때 시청앞에 막내와 응원 다녀왔는데, 이후 박지성 책을 읽더니 종일 공을 몰고 다니려 합니다. 그러더니 유소년 팀에 들게 해달라 졸라대서, 한달에 3만원짜리(너무 싸죠!) 매주 한번 3시간 하는 노원구에 있는 노엘FC에 들어갔습니다.

 

 그저 시합이나 하다가 돌려 보내겠지 했는데, 근데, 가보니까 장난이 아닌 겁니다. 코치라는 사람이 차범근 교실 지도자 출신이라 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풍주의보, 불볕더위에서도 연습시키는 겁니다.

 

  20분 골 차고, 10분 휴식, 정확히 6번에 나누어 합니다. 처음 개인 드리볼(20분) 쉬고, 트리핑(20분) 쉬고, 패스해서 슛 넣기(20분) 쉬고, 페인팅 하기(20분)해서 2시간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조끼 입고 시합하는 겁니다. 그 코치가 너무 고마웠어요.

 

 인사할 때마다 90도로 인사하는 그 코치가 시범 보일 때는 진짜 프로구나,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계단 오르기 할 때는 육상선수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서도 야단칠 때는 확실히 야단 쳐주는 코치가 고마웠습니다.

 

 근데 두 주전에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유소년팀 이후 운동장을 쓸 어른들이 "저 코치, 북한에서 탈출한 축구선수야. 굉장히 잘하지"라는 겁니다. 차범근이 받아줬는데 수준이 국가대표급이라는 겁니다. 저만 몰랐지, 어른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함민복 시에  「경계에 피는 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픔과 상처 사이, 그 갭(Gap),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한나 아렌트, 벤야민 같은 디아스포라까지 갈 것 없이, 그 겸손한 실력파 코치님이 저에게 요즘 꽃으로 보입니다.

 

3.

요즘 추석은 너무 좋은 시간들입니다.

그 코치는 여기 남쪽에 가족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뭘 먹고 지내는지? 고작 아이들 한명당 3만원씩 받아, 생활이 될지?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 이주 결혼자, 귀화자, 장애인들은 어떻게 이 추석 기간을 지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가 며칠전에 한 시인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사날후면 추석이랍니다. 지금 술 마시고 눈물이 나올려는 걸 참고 있습니다. 즐거운 추석되시길 바랍니다."

며칠전 두번째 시집을 기다리게 하는 한 시인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지금 술 마시고 / 눈물 나올려는 걸 참고 있습니다 / 즐거운 추석되시길 바랍니다" 3줄 짜리 시 앞에서 저는 무너집니다. 이 시인이 뭔가 쓰기만 해도 미리 감동해버리는 몹쓸 습관이 들어버린 소심한 저는 이 문자를 보고 또 보고 또 보면서, 답신도 못 보내면서, 힘 내! 힘 내라구! 주문을 외워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내 둘레를 둘러 봅니다.

모두 즐거울 때 가족이 없는 외로운 분도 있고요. 주변에 홀로 있는 이들에게 전화나 문자라도 보내보려 합니다.

 

    덧말 :  독특한 추석선물 ......                    

   윗글과 연결이 잘 안 되지만, 이럴 때 내용과 관계없는 메일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제가 편집의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문예지『리얼리스트』에 시인 이시영 선생님께서 원고를 보내주시면서 써주신 메일입니다. 세계작가대회 준비 등으로 너무도 바쁘신 선생님께, 너무도 적은 원고료로 청탁해서 송구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렇게 메일을 주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어려운 상황 속에서 '리얼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후배들에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어서 원고를 뒤적거려 두 편을 찾아 보내드립니다. 원고료는 정기구독 등으로 돌려주세요. 흡족한 작품은 아니지만 어여삐 여겨주시기를 바라며, 리얼리스트 동지들의 분투를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메일을 받고는 힘을 내봅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배워 후배와 문학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저도 그 나이가 되어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어려운 분들 추석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들 추석 잘 쇠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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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제 트위터(http://twtkr.com/Sinenmul)에 올렸던 글을 올립니다.


마당 2010.10.05. 2:20 pm 

한때 정기구독 보다 원고료를 받는 것이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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