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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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의 탄생 3 : 그게 나를 건드렸어, 톡톡
이름 시냇물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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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탄생 3]



그게 나를 건드렸어, 톡톡

  

그러니까  그 나이였지 ......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 왔는지 강에서 왔는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다. 그건 들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며 침묵도 아니었어.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자 돌아오는 길에서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것이 나를 건드렸어.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었어.

뜨겁거나 잊혀진 날개들,

또한 내 맘대로 해보았지

그 불을

해독하며,

드디어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지.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구부러진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디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지.

                     - 파블로 네루다, 「시」 전문

 

   시가 우리를 건드린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았을 명품이다. 이 시는 시가 어떻게 우리의 상상력 속으로 스며들하고, 융기(隆起)하여, 한 줄 글로 형상화 되는지 그 과정을 누설하고 있다.

누가 지었는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누가 썼는지 알게 되면 되레 시 읽는 데 방해될지도 모른다. 이런 시는 시 자체로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소리 내서 천천히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시혼(詩魂)에 대한 예의일 거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를 시만으로 읽을 수 없다. 시를 지은 시인의 삶이 너무 거대한 까닭이다.  

   파블로 네루다(본명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1904~1973).

  

   그런데 아쉽게도 네루다가 썼던 스페인어를 나는 모른다. 네루다를 생각할 때마다 김남주 시인이 번역했던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시선집』(남풍, 1988)이 그립다. 물론 영어로 번역했겠지만, 김남주 시인이야말로 영혼의 빛깔이 네루다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저 책에 이 시의 번역이 있나? .....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영어 번역본과 대조하면서 네루다의 마음에 다가가보고 싶다. 이 시를 여러 사람이 번역했는데, 몇 군데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군데군데 내 식으로 고쳐 번역했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지 ...... 시가 /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And it was at that age.....Poetry arrived /   in search of me. I don't know, I don't know where /  it came from, from winter or a river) 

    왜  "그러니까"(And)로 시작할까. "그러니까"라는 연결어는 이 이야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해 오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로 시인은 읽는이를 옆자리로 바짝 끌어 당긴다. 독자를 이미 얘기나누던 상대로 만드는 친밀한 연결어다. "그러니까"는 시를 신선하게 하고, 읽는이를 편하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편하게 주절대는 듯한 이 화법이 독자를 흐뭇하게 한다. 누군가가 내게 뭔가 나긋나긋 속삭이는 듯한 착각.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를 통해, 시란 삶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과정에 찾아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게다. 그러니까, 시인이 시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시가 시인을 찾아와 건드린다는 뜻이다.

     "그 나이였지"  또한 화자가 비밀을 먼저 고백하는 척하며 독자를 끌어 당기는 표현이다. 고백이랄까, 이런 식의 말투는 어느 정도 친한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어법이다. 이쯤되면 뭔가 주의 깊게 들어주지 않으면 실례인 듯 싶은 느닷없는 마음이 얼떨결에 작동된다. 진짜 있었던 일인듯 진지하게 듣게 된다. 곧바로 이어지는 "몰라" "모르겠어" 같은 표현도 정밀한 조작으로 배치되었건만, 독자인 '나'에게 마음을 풀어헤친 시인이 툭 터놓고 말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마치 친한 누구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약간의 책무를 갖게 한다. 친한 친구와 수많은 별과 바람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들을 때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들어줄 수밖에 없는 착각이랄까. 이렇게 첫 부분에서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시에 녹아든다.  

"아니다. 그건 들은 것도 아니고 책으로 / 읽은 것도 아니며 침묵도 아니었어. /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자 돌아오는 길에서 / 얼굴 없이 있는 나를 // 그것이 나를 건드렸어."

   진짜 시는 남의 말을 듣거나, 책을 읽고 모방하거나 침묵의 영성 속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침묵에는 여러 종류의 침묵이 있다. 여기서 침묵은 시적 중얼거림을 위한 살아 있는 침묵과는 다른, 네루다가 싫어하는 어떤 부정적인 침묵일 것이다.

   젊은 영혼이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내일을 불안해 하며 해매던 길거리에서 시는 화자를 건드렸것다.  도무지 표현되지 않는, 뚜렷한 형태도 없는 거대한 아니 크기를 알 수 없는 어떤 영적 덩어리가 '어떤 길거리에서' 정말 뜬금없이, 예고없이 찾아왔것다. 

밤의 한 자락에서 혹은 뜻하지도 않게 타인의 얼굴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가 말했었지, 타인(他人)의 '얼굴'(이때 얼굴은 face가 아니라, 타인의 진짜 삶, 일테면 '고통의 배꼽' 같은 것을 말한다)을 보고 어떤 계시를 느끼고 삶의 존재가 바뀔 때가 있다고, 그때 무한책임을 체감한다고 레비나스는 말했었지.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네루다의   아버지는 자갈 기차 기관사였다. 자갈 기차 인부들이 침목 사이에 빠져나간 자갈을 그때그때 채워주지 않으면 철로가 유실된다.  쉬지 않고 자갈을 메꿔야 하는 하는 인부는 철인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성격은 매우 거칠었다고 한다.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험악한 단어와 악취들......이후 네루다는 아버지의 얼굴을 타인에게서 많이 발견했을 것이다. 탄광 노동자의 삶을 본 네라다는 탄광에 대한 시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바로 이때, 타인의 삶을 마주 했을 때에 시는 시인을 건드린다. 톡톡.  

   또한 역사적 시간이나 사랑이나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시는 우리를 건드린다. 특히 시인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자 외롭게 돌아오는 길에서, 또 이전엔 집단의 일원이었을 뿐인 '얼굴 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린다. 과거의 원효가 당나라로 가던 중 헤골의 물을 마시고 '화쟁(和諍)의 원효로 바뀌듯이, 폭력적이었던 과거의 사울이 다마스커스에서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사도 바울(saint paul)로 존재가 바뀌었듯이, 시는 그렇게 소리없이 우리를 건드린다. 톡톡.

   나의 주체를 못 찾고 남 얼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줄도 모르는 나에게, 정작 자기의 얼굴이 없는 나에게.... 바로 이때 그것[詩]이 우리를 건드린다(it touched me).  바로 이때야말로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메시아적 순간일 터이고, 알랭 바디우가 말했던 진리-사건의 순간일 것이다. 

   시는 우리를 불러 시인으로 만든다. 시는 사람에게 창작된 창작물일 뿐이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깨진다.「시」야말로 시인을, 독자를 부르는 주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은 여기서 전복된다. 시인은 자연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받아 쓰는 대필가가 아닌가.

 

  내 영혼에서 뭔가 시작되었어                       

   그것이 '나'를 부르자,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었어"(and something started in my soul)라는 상황이 온다. 내 영혼에 찾아온 시혼을 어떻게 맞이해야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 이름들을 도무지 / 대지 못했고, / 눈은 멀었으며, /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었어./ 뜨겁거나 잊혀진 날개들, / 또한 내 맘대로 해보았지 / 그 불을 / 해독하며, / 드디어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지./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진한 / 난센스, /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 순수한 지혜," 

   머리 속의 문장들을 글로써 풀어내지 못할 때, 단어는 떠오르지 않고 영혼만 꾸물거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뜨겁거나 잊혀진 상상력의 날개가 퍼득이고, 내 영혼의 불을 해독한다. 이 정도라면 누구든 뭔가 끄적이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가 없다. 그래, 에이, 한 줄 써보자. 그래서 화자는 희미하게 첫 줄을 쓴다(and I wrote the first faint line).

   자신이 없어 '희미하게'(faint) 한 줄을 쓰기 시작하면 그것이 시의 한 구절이 되는 것이다. 영혼이 어찌해야 할지 모르다가, 웅얼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번역은 "어렴풋한 한 줄을 쓴다"고 되어 있는데, '어렴풋한' 이라는 단어는 생각날듯 말듯한 구절을 고심하다가 애매모호한 문장 한 줄을 쓴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내가 보기엔 밤새 펜대와 씨름하다가 자신있게 진하게 쓰지 못하고, 자신없는 구절을 '희미하게' 쓴다고 번역하는 것이 뭔가 이미지의 틀이 잡혀 다가오지 않나 싶다.   

   네루다가 희미하게 생애 첫 줄을 쓴 때는 1915년 6월 3일, 12살 때였다고 한다. 시의 영매를 만나 흥분한 네루다는 새어머니에게 그 시를 바치려는데, 건성으로 읽어본 아버지가 “어디서 베꼈니?”라고 답했던 그때 네루다는 이렇게 느꼈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문학비평의 쓴맛을 보았다.”

   이후 참을 수 없는 열정으로 시를 써서 이미 학생시인으로서 필명을 날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노트를 창밖으로 던진 후 불태워버렸다. 네루다는 아버지가 못 알아보도록 필명으로 시를 발표한다.  1920년 10월, 체코의 작가 얀 네루다의 성을 빌린 네루다는 파울로(바오로, 바울)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처음에는 단지 필명이었으나, 1946년도에는 아예 법적인 이름이 된다.  

   한번 시의 영매를 만나면 병에 걸려 그 열병을 식힐 수가 없다. 이렇게 시혼은 영혼을 건드려, 영혼은 마침내 한 줄 쓰게 만든다. 그 희미한 한 줄은 영혼이 숨 쉬는 것이다. 릴케가 말했던가. - “시를 쓴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것이다”(To write poetry is to be alive)  

 

   내가 본 풀리고 열린 하늘              

   이제 화자는 시를 통해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시혼이 그를 건드렸을 때, 이미 새로운 존재가 움직였고, 그가 한 줄을 희미하게 썼을 때, 그의 상상력은 새로운 차원을 겨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 풀리고 / 열린 / 하늘을, / 유성들을, /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 들쑤셔진 그림자, / 구부러진 밤, 우주를."

   여기서 '얼굴이 없던' 화자는 주체가 되어 하늘을 보고, 화살과 불의 역사를 본다. 그런데 "구멍 뚫린 그림자 / 화살과 불과 꽃으로 들쑤셔진 그림자"는 무엇일까? 왜 그림자에 구멍이 뚫려 있을까? 총알 구멍일까? 왜 그림자가 화살과 불과 꽃으로 들쑤셔 있을까? 

   네루다는 20살 때 첫 시집『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1924)에서 관능적 표현의 서정시를 주로 써서 당시 전통적이던 완곡한 애정 표현에 도전했다. 다음 단계에는 시집 『지상에서 살기』(1935)까지를 통해 초현실주의 기법의 시들을 썼으며, 스페인 내전(1936)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현실 참여의 시들을 썼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희생 당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그는 새로운 선택을 다짐한다. 네루다는 “파시스트들이 마드리드 밤거리에서 준동하고 있을 때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이 세력을 조직하고 군대를 창설하여 대적했다"라고 자서전에 써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나치를 멸망시키는 데 사회주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하고, 네루다는 1945년 7월 칠레 공산당에 입당한다. 이후 네루다는 칠레의 민주화를 위해 혁명의 최전선에 선다.

    "예술과 문학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수 불가결한 그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 시는 개인적 삶의 솔직한 기록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향한 발언이어야 한다. 시의 목적은 고백이 아니라 설득에 있는 것이다."   

   인류를 향한 발언으로 문학을 정의했던 네루다이지만 뼉다귀만 남은 구호 같은 시를 쓰지는 않았다. 그는 혁명의 역사를 간접적이고 풍요롭게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다의성(多義性)은 직접적인 목적시보다 힘이 세고 시간이 오래 간다.  그의 시를 모든 이가 사랑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구체적이지 않고 보여지지 않는 암시성에 있을 것이다. 감추고 감춰진 신비감이 그의 시에 충만하다.   "구멍 뚫린 논밭",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등의  서정적이고 신선한 상징적 표현들은 천명이면 천명 모두 각자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의 맛과 수천의 아름다움이 녹아 있는 주름진 표현이다.    

   화자가 시를 쓰고 난 다음에 보는 것은 풀리고, 열린 하늘이며, 유성이며 그리고 온갖 새로운 작은 누리들로 한없이 퍼져나가는 여러 이미지의 신호들, 그 네트워크인 우주를 마침내 보는 것이다.  얼굴 없이 있던 내가 주체가 되는 순간, 시인의 언어처럼 세상은 그토록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이제 시를 통해 우주를 목도하는 화자는 한 단계 '너머'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나 자신이" 우주의 심연의 일부임을 체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이 작디 작은 존재는 / 그 큰 별들 총총한 / 허공에 취해, / 나 자신이 그 심연의 / 일부임을 느꼈고, /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지."

   '나'라는 이 작디 작은 존재는 허공에 취해 우주의 일부임을 느낀다. 우리는 별들과 이웃하며, 별들과 벗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와 함께 자연과 공생하며, 우주와 화창(和唱)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물과 다름없는 유기체의 영양소이며,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바람과 하나라는 것을, 시혼(詩魂)으로 인해 깨닫는다. 나는 여기서 시인 네루다가 얼마나 인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염원했는가를 공감한다.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I wheeled with the stars / my heart broke free on the open sky)

   직역하면 '내 마음은 창공에서 자유로와졌다"는 말이다. "바람에 풀렸다"는 번역은 의역이다. 의역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녹여내는 표현이다. 어느새 불러온 강바람에 몸이 원자로 분해되어 그냥 자연 속으로 내 존재가 흡수되는 듯한 표현이다. 나 자신이 우주의 별들과 함께 구르며, 내 심장이 바람에 풀린다면 얼마나 편할까.

   별과 함께, 바람과 함께, 네루다는 완전히 일체되어 있다. 그것은 황홀한 충일감이다. 존재가 완전히 바뀌어 있는 단계다. '얼굴 없이 있는 나', '눈 멀었'던 내 심장이 '바람에 풀'려 버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환생(換生)하는 것이다. 시를 읽는 것, 시를 느끼는 것, 시를 짓는 것은 이렇게 새롭게 살아있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비판과 저항 정신은 바로 이러한 우주의 정신이 융기한다. 네루다의 시에는 우주적인 존엄과 저항, 슬픔과 기쁨이 역동하고 있다. 그의 심장이 풀린 바람은 역사의 바람, 혁명의 바람이기도 했다. 네루다가 참여했던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어, 마침내 1970년, 칠레는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다. 하지만 그 신선한 바람은 오래 불지 않았다. 군사쿠테타로 인해 아옌데 정권은 무너지고, 파블로도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열아홉의 나이로 문단에 나와 40여 권의 시집으로 1971년 노벨 문학상, 1953년 레닌 평화상을 받았던  네루다, 좌파와 우파, 청년과 노인, 남자와 여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사랑 받았던 네루다의 생명을  암세포는 가만 두지 않았다. 1973년 9월 23일 10시 30분이었다.

   아옌테와 파블로가 우주 속으로 사라졌지만, 칠레 시람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파블로는 살아 있다! 아옌데는 살아 있다!" 

   그의 심장, 살아 쉼쉬며 뛰는 열정이 바람에 풀려 있기에 아직도 이 시는 읽히고 또 읽혀질 것이다. 바람 속에 풀려 있으니까.

 

   당신에게 시혼(詩魂)은 이렇게 다가온다. 이 시를 쓴 네루다처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그럴려면 우리의 눈시울과 뼈와 피를 조금씩 건드리며 말을 거는 시혼을 잘 환대해야 할 것이다. 그 시혼과 자주 친해지다보면, 영혼이 움직이고, 어쩔 수 없이 참을 수 없어 희미하게 혹은 어렴풋히 한 줄 쓰게 된다. 그런 순간, 갑자기 새 하늘이 열리고, 그냥 시라는 바람에 풀려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느껴지시는지. 시혼이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는 은밀한 순간을, 톡톡



 

POETRY

And it was at that age...Poetry arrived
in search of me. I don't know, I don't know where
it came from, from winter or a river.
I don't know how or when,
no, they were not voices, they were not
words, nor silence,
but from a street I was summoned,
from the branches of night,
abruptly from the others,
among violent fires
or returning alone,
there I was without a face

and it touched me.

I did not know what to say, my mouth
had no way
with names
my eyes were blind,
and something started in my soul,
fever or forgotten wings,
and I made my own way,
deciphering
that fire
and I wrote the first faint line,
faint, without substance, pure
nonsense,
pure wisdom
of

someone who knows nothing,
and suddenly I saw
the heavens
unfastened
and open,
planets,
palpitating planations,
shadow perforated,
riddled
with arrows, fire and flowers,
the winding night, the universe.

And I, infinitesmal being,
drunk with the great starry
void,
likeness, image of
mystery,
I felt myself a pure part
of the abyss,
I wheeled with the stars,
my heart broke free on the open sky.

 

김응교(http://twitter.com/sinenmul) 


joyman 2010.07.31. 12:06 am 

아, 좋습니다. 가슴이 뭉클한 시. 얼마만인지....너무 산문 속에 살아서 그런지 참 오랜 만에 좋은 시를 만났습니다.

許弛 2010.07.31. 9:56 am 

"시를 쓴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 있다는 것이다. 우린 대부분 다 좀비같은 존재로군요.

박태건 2010.08.02. 10:51 am 

김응교 선생님의 글은 굳은 시심의 문을 톡, 톡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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