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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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의 탄생 2 : 암시의 힘
이름 시냇물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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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탄생2] 

              암시의 힘

 

 

넌지시 비치는, 암시
     어떤 영화를 보고, ‘시적이다’라고 할 때, 그것은 뭔 뜻인가? 
     어떤 사람을 보고, ‘시인 같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이나 성격을 가진 사람일까?
     과연 시의 본령은 무엇인가 ? 성급히 말하자면 그것은  ‘암시’(暗示)가 아닐까. 암(暗)이란 한자는 해[日]가 지고 소리[音]만 들리는 어두운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암시란 해가 지고 소리만 들리는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짐작만 하는이 암시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말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상상하여, 작품을 완성시킨다. 
    시의 본질적인 요소에 관해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그의 『작시론(作詩論)』(1846)에서, 한번에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긴 시는 “참된 시적 효과를 결여하기 쉽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시 도대체 시적(詩的)이란 것은 무슨 뜻인가? 짧은 시를 읽다보면 홀연히 강한 빛을 띠면서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시조나 하이쿠, 소네트 같은 정형시, 자유시나 서사시, 극시가 우리에게 주는 첫 매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암시다. 회상이다. 어두움 혹은 그늘 속에서 고리타분 하지 않은 신선한 혹은 엉뚱한 상상력이 벌떡 혹은 슬그머니 일어나는 융기(隆起)다. 정현종의 시「섬」을 읽어보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1939~ ), 「섬」

 

   단 두 행으로 읽는 이들의 상상력을 가볍게 흔드는 시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할 때, “그 섬”은 희망이 될 수도, 삶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섬’은 쉽게 닿을 수 없는 곳, 어떤 미지의 땅으로 저편에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 섬”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따라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시인은 사람들에게 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이'에 가고 싶은 것이다. 그 사이는 섬이다. 섬이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존재다. 정작 육지에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니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거리(=사이)를 두고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로 상상할 수도 있겠다.  또한 섬은 ‘사이’에 있으므로, 정작 사람들에게 이르지 못하는 영원한 소외감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를 표상하기도 한다. 나는 이 '사이'를 현실적인 문제로 상상하지 않는다. 나는 '사이의 철학자'로 알려진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로 파악한다. 곧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언어의 세계'에 가고 싶다는 뜻으로 나는 공감한다. 그런데 시란 한번 발표되면 시인의 것이 아닌 것. 어찌 해석하든 그것이 잘못 읽었든 이미 그것마저도 '창조적 오독(creative reading)'이 되는 세계가 시독해의 창조성이다. 암시의 시는 시인의 것을 떠나 이미 독자의 것이다. '사이'에 대한 다양한 의미는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암시의 옷을 입었기에 우리에게 멋스레 다가온다.

 

   짧은 시라 하면 ‘비어있되 일체를 담는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하이쿠[俳句]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쿠의 대표적인 시인 바쇼[芭蕉, 1644~1694]는 평범했던 단시 형식에 선(禪)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담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하이쿠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조에서 마지막 종장을 생략한 것과 같다. 그 '생략'에 매력이 있다. '생략'된 결론의 여백을 독자는 직관적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古池や(ふるいけや) 蛙飛び込む(かわずとびこむ) 水の音(みずのおと)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네
         풍덩!

 

   한 순간, 찰라에 대상을 포착하여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풍경. 어느새 우리 마음도 하나의 연못이 되어, 잔잔한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너무도 강렬하고 선명한 이미지는 독자의 마음에 '오래된 연못'을 이전시킨다. 그리고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풍덩 ! 어떤 독자는 자신의 일상에 풍덩 소리가 울리는 날이 기대할 것이다. 지극히 짧되 영원을 담을 수 있는 찰라의 순간,  그것은 실존적 자각을 경험하는 순간, 발터 벤야민에게는 존재가 흔들리는 '메시아적 순간'(『역사철학테제』)일 것이다.  별안간 일상의 흐름이 끊어지면서, 전혀 낯설고 이질적인 누군가가 나의 의식을 대신 차지하는 눈뜸의 순간, 이 암시의 순간을 통해 독자는 신비로운 눈뜸을 체험한다. 
   바로 이때 존재의 뿌리가 드러나고, 읽는이는 아찔한 법열에 휩싸인다.   

   위 두 편의 짧은 시는, 시가 어떤 것인지 그대로 잘 보여준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말했다.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 사물에서 몽상이 생기고, 그 몽상에서 이미지가 솟아나는 것, 그것이 곧 노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물체를 통째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거기서 수수께끼도 신비성도 사라진다. 스스로 뭔가를 창조한다는 마음, 그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그들은 우리 모두에서 빼앗는다. 물체를 지명해 부르면 시의 재미는 4분의 3이 날아가 버린다. 시의 재미는 조금씩 헤아리는 데에 있다. 넌지시 비치며 암시하는 그것이 곧 꿈이라는 것이다.”

   넌지시 비치며 암시하는 것, 그것을 말라르메는 시의 꿈이라고 한다. 

   하이쿠는 이 암시의 힘을 겨냥하여 되도록 아니 극도로 짧게 만들어진 5.7.5조의 시 형식이다. 시의 본질적인 요소에 관해서 소설가이며 시인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작시론(作詩論)』(1846)에서, "한번에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긴 시는 참된 시적 효과를 결여하기 쉽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은 하이쿠나 시조 그리고 소네트 외에도, 시의 암시성에 대해 정확한 지적이라 할 수 있겠다. 
     

   숨 쉬는 자기동일성
    암시가 전해지는 과정을 서정(抒情)이라고 한다. 뜻을 펴나간다는 ‘펼 서’(抒), 뜻을 펴나간다는 ‘뜻 정’(情), 곧 서정(抒情)이란 정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서정시(抒情詩)란, 첫째, 객관적 현실에 의해 환기된 자신의 사상 감정을 정서적으로 노래하는 것. 둘째, 서사시, 극시와 달리 주관적이며 관조적 수법으로 자기 내부의 감정을 운율적으로 나타낸 시 곧 개인의 감정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한 시가 서정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란 자기체험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 밖에서 사건을 찾기보다는 자기 내면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파랑새가 매일 아침 노래하듯이 ‘자기 이야기’를 노래해야 한다. 시는 논증하는 논설문이 아니고, 구호만 남발하는 선언문도 아니다( 물론 구호를 쓰기 위해 시를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진정한 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에 대해 192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하는 시인들은 '뼈다귀시'라고 비판한 바 있다. 어쩔 수 없는 시기가 아니고, 평생 그런 글만 쓰려면 빨리 시를 포기하고, 다른 장르를 선택해야 한다.
   시는 은근한 암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김소월을 만난다. 김소월 시는 암시를 위주로 하는 대표적인 예다. 아잇적 정서적 축적이 가득한 가장 기초적인 어휘 500개 정도만으로 시를 쓴 시인이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봄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봄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전문

    ‘갈봄여름 없이’ 에서는 계절의 순서를 바꾸어 약간의 낯설게 하기를 통한 변화를 주었다. 가을을 '갈'이라 한 장난[pun]도 재미있다. 정서적 충격이 강한 가장 기초적인 언어로 그는 읽는이의 기억을 퍼올려 회감(回感)시키는 정서적 충격을 준다. 이 시의 핵심은 2연에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이다. “피어있네”에서 서정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암시가 발생하는 단어는 ‘저만치’ ‘혼자서’이다. 이 두 부사가 "피어있네"와 어울려 읽는이의 마음에 상상력을 일으킨다. 그것은 신문기사처럼 명확하거나, 소설처럼 눈에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저만치’ ‘혼자서’라는 단어에 셀수없는 해석이 있을만치, 두 단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에서 암시는 발생한다. 시는 저만치 홀로 있는 넌지시 비치는 암시다.   

   앞서 말했듯이 1920년대 구호로만 이어진 시를 '뼈다귀시'라고 비판할  때 임화는 이야기시를 발표했었다. 이른바 단편서사시라는 새로운 선택이었다. 그런데 노동시에서도 이 암시의 힘은 발휘된다.

 

그는 장화를 벗으려고 했다

비명소리보다 먼저 복숭아뼈가 신음을 토하고

으드득, 무릎뼈가 튀어올랐다

부러진 홍두께처럼 아무런 감각도 없는 발을

어떻게든 장화에서 꺼내려고

그는 안감힘을 썼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듯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발은 꿈쩍도 않고 대못처럼 박혀 버렸다

숨을 아주 깊이 들이마시고

핏발 선 눈을 천천히 감고

털썩, 엎드려 가늘게 떨다가

그는 비로소 죽은 듯이 투항했다

그러자 너덜너덜 허벅지만 남기고

저 혼자서 롤러 밑으로 걸어가는 발

끝까지 그의 장화를 신고 가는 발!

                         - 임성용, 「발」전문

    임성용의  시집『하늘공장』에 실린 첫 시다. 이 시에는 어떤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인지, 어떤 일을 하다가 다리가 따로 노는지, 어떤 공장인지, 주인공 직업이 뭔지 몇살인지 일체의 설명이 없다. 위 시집에 실린 시 중에 가장 암시성이 충일된 작품이다. 시인은 '으드득, 무릅뼈가 튀어'오르는 사고가 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암시한다. "신음을 토하고","고함을 질렀다","대목처럼 박혀버렸다","죽은듯이 투항했다"는 몸에 관한 비극적 표현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암시를 통해  독자는 벼라별  이야기를 상상하고 지어내게 된다. 

    이렇게 산재를 당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다리는 다시 붙일 수 있는가? 그냥 장애인이 되는 걸까? 장애인이 되면 가족들이 어렵지 않을까 ?  구체적인 이야기시보다도 오히려 긴 장편의 역사가 독자의 상상력 속에서 풀려지는 것이다.

    탁월한 시는 독자를 또다른 창조자로 모신다.  독자가 시를 잘못 읽더라도, 작가의 의도와 맞지 않더라도, 탁월한 시는 독자의 상상력 속에서 그럴 듯 하게 완성된다. 

   특히 그 암시가 자기가 경험했던, 아주 어렸을 때, 혹은 잠재의식 속에서, 아니 태어나기 전에 경험했을 것 같은 동일하다고 느꼈을 마음 속에서 울림은 그 파장이 더욱 넓다. 곧 시의 암시가 독자의 잠재적인 체험과 일치하는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의 자리, 거기서 우리는 감동하고, 이때 시는 비로소 독자의 몸과 함께 숨쉰다.

  

    시에서 암시란 순간적인 자기동일성에서, 구체적인 사건까지도 자극시킬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시의 본질은 모두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 우회하는 것, 눙치는 것, 넌지시 그리고 슬그머니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눙친 여백을 곰삭여 지어내며 스스로 창조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넌지시 말하는 암시가 직설적으로 말하는 구호 혹은 케이오 펀치보다 더 충격적인 너울을 일으킬 수 있다.

 

김응교(http://twitter.com/sinenmul) 


김명인 2010.07.16. 11:55 am 

다음 학기에 시강의 해야 하는데 너무 좋은 교재! 좀 빌려주시오, 출전 밝힐께.
임성용의 [발]과 문태준의 [맨발], 그리고 신동엽의 [발]까지 한번 '발'만 가지고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듯.

김응교 2010.07.16. 5:08 pm 

3류 서생의 글에 의미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깜냥은 너무 빈천하기만 합니다. 늘 가르쳐 주소서. 선배님. 임성용은 게그적 풍자성과 비판성으로 무장한 리얼리스트 시인으로 제가 많이 기대하는 존재입니다. 비 내립니다. 헤집어 놓은 강물이 분노하여 역류하여 토하거나 폭발하지 않기를..... 다만 포크래인 몇 개 떠내려가 무모한 욕망덩어리들이 반성할 정도로 내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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