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숲길

2114

프린트하기

제목 시의 탄생 1 :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이름 김응교 이메일
첨부 untitled.bmp (2.3M)


111

[시의 탄생 1]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자기와의 분리

 

 

 

질문 1. 주로 작품 착상은 언제 얻습니까? 

       2.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 작품을 씁니까?

       3. 작품을 쓰고나서 가장 최근 자극을 받았던 것이 있다면 말해주시죠.

       4. 작품을 쓸 때, 자기 자신을 어떤 마음 상태로 두려고 합니까?

       5. 작품을 계속 쓸 수 없을 때,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려고 합니까?

       6. 초고 과정에서는 언어 다음으로 무엇을 지향합니까?

       7. 제목이 작품에서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회답 1. 때, 정신상태와 함께 특별히 정할 수 없다.

       2. 장소 : 내 책상 위, 때 : 오전 10시부터 오후 1경까지.

       3. 미묘한 자극이라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다.

       4.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다가가려고 한다.

       5. 얼마 동안 그만 둘 때도 있고, 힘써서 끈질기게 계속 쓸 때도 있다.

       6. 제대로 의미를 갖지 못한 질문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통합(integration)이라고나 할까.

       7. 제목은 멋지게 하고 싶지만, 결국 번거롭기 짝이 없어 적당히 붙여 버린다.

       8. 완성이라 하기보다는, 나와 분리되기를 바란다.

          작품을 나와 다른 것으로 자립시키고 싶다. 말하자면 아이를 낳는다라는 것.

             -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김응교 번역,『이십억 광년의 고독』(문학과지성사,2010)

                                                                                       원출전『詩を書く』(思潮社、2006)

 

 

   한편의 시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당신은 위의 인용문에서 몇 번의 질문과 답에 관심이 있으신가? 

    딱 잘라서 말하기 힘든 답을 한 시인은 위와 같이 물음과 답을 통해 답하고 있다.

    일본에 직업적으로 시 쓰고 먹고 사는 시인이 딱 한 명 있다고들 한다. 윗글은 그 스스로 산문에서 직업이 ‘시인’이라고 여러번 밝힌 바 있는,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郎) 시인이 쓴 글이다. 데츠카 오사무 감독의 '아톰' 주제가 가사를 지은 대중적인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산문이라 해야 할지, 시라 해야 할지 모르나, 시인 자신에게는 이미 시냐 동시냐 산문이냐 소설이냐 하는 경계가 사라지고,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에게는 그저 '문학'만 남아 있다.

 

    그냥 첫번째 질문 "주로 작품 착상은 언제 얻습니까?"에 대한 "때, 정신상태와 함께 특별히 정할 수 없다"는 대답은 읽기만 해도 다니카와 시인의 삶을 말해준다.

    2008년 이 분 댁에 찾아 뵈었을 때, 나는 차를 마시며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다니카와 시인의 말 중에 몇 가지 내 뇌리에 새겨진 말이 있다.  

   "시를 생각하지 않고, 시를 쓰지 않는 순간, 시인이 아닙니다. 시인은 매일 시를 써야죠. 아침새가 매일 노래하듯이.... 매일 시를 쓰지 않으면 하늘이 주신 천직을 방관하는 죄를 짓는 겁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졸지에 죄인이 되어 버렸다. 아직 그 천직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있으나, 다니카와 시인의 시집을 번역해 출판하고, 이분의 다른 산문집을 번역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해본다. 시를 쓰는 것은 때와 장소가 없이 어디에서든 새가 노래하듯, 상상하고, 쓰는 것이다.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은 위의 인용문 어느 대화에 관심이 있으신지?  

     

    1950년 19살의 나이에  시「네로」 외 5편을 『문학계』에 발표하여 등단한 그는 1952년 첫시집 『20억년 광년의 고독』을 냈다. 첫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래 거의 모든 출판물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는 10만권 이상 팔린 시집을 몇권 갖고 있는 시인이다.

   “3살 / 나에게 과거는 없었다 // 5살 / 나의 과거는 어제까지 // 7살 / 나의 과거는 촌마게 끝까지 // 11살 / 나의 과거는 공룡까지”(「생장(生長)」, 1952)로 시작되는 첫시집의 첫시는 그의 모든 인생을 예감케 한다. 나이마다 언급한 한 줄 표현으로 우리는 시인의 상상력에 동행한다. 20억 광년의 세월 속에 한 점도 되지 않을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며 “내 시간의 무언가를 모르는” 공허(空虛)를 고백한다.

   그가 문단에 등장했던 1952년은 태평양전쟁이 끝나자마자 1950년 옆나라에서 전쟁이 터져 동족끼리 피비린내가 났을 때였다. 1952년 5월 1일 황궁앞으로 진입하는 데모데에 경찰이 발포했던 소위 ‘피의 메이데이 사건’이 있었던 시대였다. 당시 문단은 감상적인 시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니카와는 눈물을 일시에 제거하고 ‘깔끔한 청순함’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겼다. 그의 시는 아주 쉬우면서도, 약간의 변조(変調)를 통해 깊은 생각을 자극했다.

 

예쁘장한 교외 전차 연변에는

오손도손 하얀 집들이 있었다

산책을 권하는 오솔길이 있었다

 

내리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

논밭 한가운데 역

예쁘장한 교외 전차 연변에는

그러나

양로원의 굴뚝도 보였다

 

구름 많은 3월의 하늘 아래

전차는 속력을 늦춘다

한순간의 운명론(運命論)을

나는 매화 향기로 바꾸어 놓는다

 

예쁘장한 교외 전차 연변에는

봄 이외는 출입금지다

- 「봄(春)」전문,시집 『20억년 광년의 고독』(1952) 30면

 

    2연까지 읽으면 소녀풍의 단순한 소품이다. 그런데 3연 끝에 “한순간의 운명론을 / 나는 매화 향기로 바꾸어 놓는다”라며 시인은 운명론을 갑자기 개입시킨다. 이때 약간의 고통이 감지되는 이유는, 바로 앞 2연 끝에서 ‘양로원의 굴뚝’이라는 단어, 죽음의 향기를 자극시키니 때문일까. 가령, 화장터의 굴뚝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곧이어 시인은 3월 하늘 아래 인간의 일생처럼 전속력으로 가는 전차를 보면서, 죽음의 냄새를 ‘매화 향기’로 환치시킨다. 단순한 풍경묘사는, 인간 운명에 대한 묵상으로 바뀐다. 패전 이후 비관적인 운명론이 팽배했던 시기에 그는 짐승스런 운명론을 “매화향기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봄 이외는 출입금지다”라고 선언한다. 철학자인 아버지 다니카와 데쓰죠[谷川徹三] 교수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그는 너무도 빨리 세상의 벌건 오장육보를 눈치 챈다.

    당시 아유카와 노부오[鮎川信夫], 다무라 류이치[田村隆一], 세키네 히로시[関根弘], 구로다 요시오[黒田嘉夫]와는 확실히 다른 다니카와 시인을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는 “돌연히 아득한 나라에서 찾아온” 독특한 존재로 평가했다. 그래서 일본 시(詩) 문학사를 얘기할 때, 다니카와 슌타로를 일본의 ‘민주 1세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민주 1세대란 전후파 바로 다음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그는 수십권이 넘는 시집과 200여종이 작품집을 출판해낸다. 시집, 시나리오, 라디오 드라마 대본, 희곡, 동화, 가요, 르뽀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쓰고 있는 그의 세계를 제한된 지면에 모두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시나 글을 읽으면 ‘빠지게’ 된다. 그의 시에 중독된 채, 며칠 시집에서 ‘놀다’ 나올 수밖에 없는 그의 시의 본령을 어디까지나 우주와 세계와 나 자신이 합일된 싱싱한 세계이다. 현실을 직접적으로 담기 보다, 싱싱한 감수성에 다가오는 우주를 시에 담는 그의 세계관을 ‘우주적 아나키스트’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에 정치적인 내용을 담지 않는다. 시의 정점은 한 순간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대신에 그는 시가 아닌 현실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정치적인 활동에 참여해 왔다. 김지하 구명운동부터 최근에는 티벳 독립운동에 계속 자신의 인세를 보내고 있다. 마치 체코의 민주화와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책의 인세를 보냈던 자크 데리다와 비슷하다고 할까. 내가 번역했던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이십억 광년의 고독』, 문학과지성사,2010)의 인세도 티벳 독립운동 단체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실에서 시로 돌아오면 그의 시는 동시적이고 우주적이다. 어린아이를 위한 책도 많이 냈던 그는 일본애니메이션『아톰』,『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도 지었다. 유치원생이 읽어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그의 시는, 괴테가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가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그런 시가 좋은 시”라고 했던 바로 그런 류의 작품이다.

   전후 일본 시인들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그의 시는 낮고 작은 곳에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는 시집을 낼 때마다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었다. 그 예로 파격적인 실험을 보여준 실험시일부(壱部) 한정판 시집『세계의 모형』목록」(시집 『正義』1975)의 경우이다. 이외에도 그는 시와 만화, 시와 노래, 시와 다큐멘타리 등 끝없는 실험을 통해 언어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세상의 온갖 물상을 진지한 유머로 바라보는 다니카와 시인, 고단한 삶을 유머로 보는 그의 시를 읽을 때, 영혼이 즐거워진다. 그리고 시인 천상병이나 박재삼이 그리워진다.

 

김응교(http://twitter.com/sinenmul)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시의 탄생' 연재를 시작하며 : 목차 [4]
시냇물 2010.05.01. 2844
22 시의 탄생 5 : 메타포, 은유가 말하기를
시냇물 2011.07.12. 2588
21 시의 탄생 4 : 만요슈와 일본 현대문학
시냇물 2011.01.12. 1990
20 [인문숲길3] 경계에 피는 꽃 [1]
시냇물 2010.09.20. 2185
19 [인문숲길2] 백석, 윤동주, 전태일 [2]
시냇물 2010.08.27. 4011
18 [인문숲길1]사상의 리베로, 데리다 [4]
시냇물 2010.08.06. 2597
17 시의 탄생 3 : 그게 나를 건드렸어, 톡톡 [3]
시냇물 2010.07.29. 2131
16 시의 탄생 2 : 암시의 힘 [2]
시냇물 2010.07.16. 2364
시의 탄생 1 :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김응교 2010.07.09. 2115
14 [인문숲길.7] 역사란 무엇인가, 영화<변호인>
시냇물 2014.01.17. 1649
13 [인문숲길.6] 희미한 메시아적 힘, 발터 벤야민과 함…
시냇물 2013.04.24. 1067
12 시의 탄생 15 : 괄호의 탄생 ㅡ김기택 시집 『갈라진…
시냇물 2013.03.04. 1465
11 시의 탄생14 : 결핍을 넘어선 충만ㅡ 고은 신작시
시냇물 2013.03.04. 1000
10 시의 탄생13 : 후쿠오카 형무소 윤동주에 대한 응답
시냇물 2013.01.08. 1196
9 시의 탄생12 : 희망의 꽃을 피우는 선생님
시냇물 2012.07.01. 1538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