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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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문숲길.6] 희미한 메시아적 힘, 발터 벤야민과 함께
이름 시냇물 이메일

[인문숲길.6]

희미한 메시아적 힘, 발터 벤야민과 함께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매주 목요일 오전에 CBS 크리스천 NOW를 녹화하러 갈 때, 나는 이른 아침에 지하철에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에 라디오방송을 통해 히틀러를 공격하던 인간 화재경보기, 발터 벤야민을 떠올리곤 한다. 이 방송 오프닝에서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 그래 나는 벤야민 선생을 벗하고 산다. 
 
발터 벤야민 커넥션 
 지난 3월 9일에서 10일까지 <발터 벤야민 커넥션 심포지엄>이 정독도서관에서 지난 이틀간 있었다. 일본에서 삼사백여명 이상 모이는 학회를 가끔 봤는데, 한국에선 그런 큰 학회를 본 적이 없던 내가 이틀간 한국에서도 그런 모임을 목도하는 행복을 누린 것이다. 게다가 정독도서관 근처 인사동 북촌마을 삼청동 거리는, 한국판 자본주의의 새로운 쇼케이스였다. 발터 벤야민이 살아 한국을 방문한다면, 여기 독특한 한국적 뒷골목 파사주를 반드시 산책할 것이다. 게다가 귀한 글벗 권성우 교수님과 함께 그 거리를 거닐고 학회에 참여하니 나에겐 잊을 수 없이 호사로운 시간이었다.

 

그래, 발터 벤야민 붐이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였을까. 아우라, 아케이트 프로젝트, 일방통행로 등 지적 호기심이 작동했을 수도 있겠으나, 가장 큰 매력은 발터 벤야민의 '약한 메시아적 힘'이라는 단어 하나의 흡입력이 아닐까. 이 환멸의 시대에 우리에게 '희미한 메시아적 순간'이라도 찾으려 했을까. 발터 벤야민으로 시작되는 바디우, 지젝, 아감벤 같은 좌파 메시야니즘은 사변적이고 '바깥의 정치'라고 비판받고는 있지만, 바깥의 정치도 종요럽지 않은가.

 

 과거 현재를 통합시켜, 미래에 폭발한다고 보는 벤야민. 화약을 꽉 다져쟁여 불을 붙이는 화승총처럼, 지루한 시간들 후에 튀어나갈 진리의 총알을 꿈꾸게 한다. 진리는 이 폭발점에 있다. 그럼, 지금 이 환멸의 시간은 화약을 다져놓는 절정의 시간일까.

 

 과거에 실패한 혁명적 시간들이 메시아처럼 벌떡 일어나 미래로 향할 거 같은 벤야민식의 환멸에서, 나는 "풀이..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의 김수영이나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두 시인이 그리워 했던 원초적 힘과 유년기를 벤야민 덕분에 떠올려봤다

 

 파리를 점령할 나찌의 폭력을 예감했던 발터 벤야민, 태평양전쟁을 예감하며 1941년「서시」를 썼던 윤동주, 박정희 독재의 야만을 예감했던 김수영, 남북관계 긴장과 예상할 수 없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안을 떠올리는 나 자신이 함께 만나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다. 

 

     "우리는 빈곤해졌다. 경제위기가 곧 문앞까지 왔고, 그 뒤에 그림자가, 곧 다가올 전쟁이 있다. 인류는 필요에 따라 문화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려고 대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일을 웃으면서 한다는 점이다"      

 ㅡ발터 벤야민『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선집.5』180면 

 

  벤야민 글이 재미있는 이유는 명랑성에 있다. 그의 삶이 비극적 자살로 가는 길목에도 '엉뚱한 명랑성'이 있다. 그것은 카프카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서글픈 명랑성'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 희미한 명랑성으로 두 작가는 다가오는 파시즘을 잠시 견뎌냈다. 벤야민은 "웃으면서" 사유하라 권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자는 정의를 "불의를 말하는 것이 정의다"라고 답했다 한다. 그런데 벤야민은 부르주아의 불의를 유년의 자기 삶에서부터 미세하게 도려낸다. 그래, 숨겨진 불의를 말하는 것이 정의다. 그 불의는 내 삶에도 있다.

 

 박사를 받고도 교수가 되지 못했기에 벤야민은 역사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아포리즘적인 그의 글은 학술논문과 전혀 달랐다. 나는 방송을 할 때마다, 라디오, 영화, 모든 이미지를 역사변혁의 매체로 생각했던 벤야민을 떠올리곤 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할 때도 나는 벤야민을 떠올리곤 했다. 벤야민이 살아 있다면 분명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했을 것이다. 벤야민은 한동안 중독되었을 것이다.

 

윤활유 한 방울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이미 바싹 매말라버린 나뭇가지는 다시 나무에 붙어 자랄 자신이 없었다. 귀국하고 1년 동안 다른 작가나 지인들에게도 일체 연락 안 하던 죽은 나뭇가지 닮은 기간이 있었다. 꾀병 닮은 대인기피증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게 된 페이스북이 나에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뭔가 쓰면 누군가가 “좋아요”를 클릭해주는 것이다. 그 클릭 하나가 “나도 의미있는 존재구나”라는 자신감을 조금씩 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2년 넘어 페이스북을 하는 거 같다.


 이제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단순한 자기위안을 넘어. 내 공부를 위해 쓰고 있다. 공부 모임의 정보를 모으고, 또 공부할 분들을 모으는 찌라시 역할을 하곤 한다. 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의 첫 글인 「주유소」에서 광고 찌라시의 중요성을 역설했지.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하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견해란 사회생활이라는 거대한 기구에서 윤활유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엔진에 다가가서 그 위에 윤활유를 붓는 것이 아니다. 숨겨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그 자리를 알아내야 할 대갈못과 이음새에 기름을 약간 뿌리는 것이다.”

ㅡ발터 벤야민,「주유소」,『일방통행로』

 

 파리에서 나치의 등장을 라디오 방송에서 고발했던 발터 벤야민이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분명히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했을 것이다. 그가 원하던 "전단, 팰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 그리고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오늘날 SNS가 그 자체다.


 무엇보다도 벤야민처럼 좀더 깊이 있고 좀더 대중에게 다가가는 글을 써야겠다. 벤야민처럼 권위적이고 뻔한 형식을 파괴하는 글을 써야 한다. 되도록 아니 이제부터 하드카버로 책 ??????그리고 벤야민이 꿈꾸었던 '희미한 메시아니즘' 그 용기를 품어야겠다. 이번 학기 내 수업에서 발터 벤야민『일방통행로』(1828)를 강독하고 있다. 이 밤에 다시 생각한다. 왜 나는 학생들에게 발터 벤야민을 권하는 걸까. 희미한 메시아적 힘을 찾는 전복의 시각을 권하는 걸까. 세상을 변화시킬 인문학의 역동을 권하는 걸까. 아래 문장 때문일까

 

 

"지금 막 덮쳐오는 불행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된 것인가를 인식하는 순간 동시대인은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한층 더 잘 알게 된다. 그가 깨닫는 역사는 그를 슬프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만든다"ㅡ발터 벤야민『파사주』

 

 

 

 "메시아는 최후의 날에 오지 않고, 그 다음날 온다"는 카프카의 말을  아감벤이 인용했다지. 이 말은 '그대 자신이 메시아가 되라, 진짜 메시아는 메시아가 된 그대를 축복하러 다음날 온다'라는 뜻이겠지. 우리 자신이 메시아로 견디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 강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벤야민이 말하는 '계급투쟁을 통해 연대하는 대중'은 '느슨한 대중'이 아니라, '탈(脫)중심 다(多)중심 네트워크'이고, 그것은 페이스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나는 아마도 방송과 SNS에 대한 실험을 한동안 포기하지 않을 거 같다.


 대선 이후 TV뉴스를 단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내가, 환멸(幻滅)에 몸서리치지만 아직 냉소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벤야민과 대화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환멸이 환희(歡喜)로 바뀌기를 꿈꾸고 있는 한, 아직 내 환멸은 의미 있는 절망일 것이다. 그래, 악착같이 지탱하는 힘의 지랫대 끝에 발터 벤야민이 있기 때문인 거 같다.


 벤야민의 글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단독자를 역사적으로 각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소중하여 이 심야에 몇 자 남긴다. 윤활유 한 방울 같은 글을 쓰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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