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숲길

1580

프린트하기

제목 시의 탄생12 : 희망의 꽃을 피우는 선생님
이름 시냇물 이메일

시의 탄생 12                                    


 세상에, 20년전 도종환 선생님께 썼던 편지가 아직 있네요. 지금은 국회위원이 되셨지만 제가 이 편지 쓸 때는 감옥에 계셨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선생님께서 중요한 역할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졸고「희망의 꽃을 피우는 선생님」입니다. 발표된 잡지와 원고를 잊었는데, 원문은 아래 도종환 선생님 홈페이지에 있어 옮겨 놓습니다.  http://j.mp/My5HQP 



희망의 꽃을 피우는 선생님 

         도종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김응교(시인)


  겨울이 조금씩 비켜가고 있습니다.
  직접 청주로 찾아뵈어야 하는데 또 이렇게 편지로만 인사드립니다.

 

  1년 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 큰 잔치날(1991년 10월 22일), 그간 전화로만 통화하던 선생님을 잠깐 만나 뵙고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짧은 악수, 지금은 아쉬움만 남아 있습니다. 그 날 선생님이 천천히 낭송하시던 시 한편이 기억납니다. 수많은 하나님을 흙에 묻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그런 내용이었죠. 담담하게 시를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선지 송이 눈 내리는 오늘은 선생님의 시를 다시 읽어보며 그때 그 모습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 중에 기도 시로 씌어진 시가 눈 꼽아 읽혀집니다. 딱히 종교시로 범주를 정해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진부하고도 낡은 생각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시편 중에 몇 편의 기도 시에 마음을 두고 있거나 혹은 문제삼고 있는 탓에 이 자리를 빌어 읽어보려 합니다.
  
  역사 현장에 심겨진 깊은 뿌리

   선생님의 시를 처음 대한 때는 1984년이었죠. 『분단시대』1집에 실린 시편들 말입니다. 저 암울했던 80년대 초반엔 ‘오월시’, ‘삶의 문학’, ‘시와 경제’ 그리고 ‘분단시대’ 등의 젊은 동인들이 소위 ‘유격전’ 수준의 시운동을 펼치고 있었죠. 돌이켜보면 우리 시사에서 민중적 리얼리즘을 확고히 다져놓았던 시기였다고 여겨집니다. 이른바 시문학의 전성시대 속에서 『분단시대』를 구해 읽었던 습작기 문학도였던 저는 자양분을 얻어 함뿍 들이마신 어린 새싹 같았습니다.
   

   거기엔 줄 치고 읽어야 할 뼈저린 이야기시가 많이 있었죠. 특히 선생님의 시가 그랬습니다. 가령, 시인의 가족사가 그려진 <삼대(三代)>. 이 시에서 1980년 5월 어느 도시 근방으로 투입되는 한 사람의 사병이 실탄을 거꾸로 장전하는 정경은 우리 민족의 아픈 자화상이었지요. 또한 <흑인 혼혈아 가수에게>, <첫돌>같은 시들은 신식민지의 민족모순과 분단모순이 뼈아프게 시화된 역작이었고요. 그리고 얼마 후, 정신대 문제를 고발한 장시 <조선데이신따이>를 발표하셨지요.

   번개가 지나가는 하늘 아래
   우리는 누워 있었습니다.
   낮은 데서 바라보는 산들도 이제는 낮고
   궐련도막에 빨갛게 불을 붙이며
   일본군 고쪼는 등 굽혀 어둠 열어 나가는데
   어금니에 물려 떨리는 천둥소리
   발톱 끝을 때리는 빗물에도 아파요
   늦도록 군표 쪽지나 지전을 세고 있을
   늙은 포주의 방엔 불이 흐리게 새고
   문 앞마다 걸린 우리들 사진이
   빗소리에 흔들리며 가슴 복판 두드려요.
   어미니, 젖고 있어요
   저희는 누구의 딸이어요.
                               -「조선데이신따이」, 4에서

  이제사 정치권에서 일종의 대중심리 조작기재로 정신대 문제를 들먹이고 있지만, 당시로는 드물게 정신대 문제를 담아낸 위 시는 이제 다시 읽어도 억장 막히게 하는군요.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시가 단순히 과거의 문제를 과거로 끌고 가 훌쩍이게 하는 신파조가 아니라, 아직도 ‘꽃나들이 오입질하러 늙은 왜놈도 실어오고 /… / 이십만 못다 핀 조선처녀 군화발로 밟아간 / 그런 니또헤이 고쪼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 관광 비행길 타고 제주도에 서울에 내려 / 사업인지 합작투자인지 꽃 같은 이 나라 처녀 / 몇 년 이고 몇 달이고 데불고 살다 / 버리고 달아나도 또 오십사 뱃길을 열어주고 / 누구 하나 쓰다 달단 말 한마디 없다믄요’ (<조센데이신따이>8에서)라며 오늘의 현실적 모순과 연결 지어 낸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얼마 후 출판된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창작과 비평사, 1985)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당시 유행하던 민중시의 도식성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었기에 전통적인 정서이면서도 이상스레 신선했지요. 그런데도 이 시집을 가볍게 읽거나 혹은 도종환 하면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 1986)만 들먹이는 이들도 있지만, 말했듯이 저는 분단한국사의 의미를 깊디깊게 천착한 첫 시집을 선생님의 시 세계에 자리잡은 굳건한 뿌리로 보고 있습니다. 그 뿌리에서 사랑도 나왔고, 그 열매를 맺는 아픔도 있었고요.


  사랑의 폭, 사랑의 아픔

  그리고 그 뿌리에서 솟아 나온 눈물과 인내의 시편들이 바로 『접시꽃 당신』이었죠.
  언젠가 『접시꽃 당신』을 『홀로 서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비교하는 어느 평자를 보고 얼마나 코웃음쳤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사랑의 깊이는 어데서 오는가를 그 평자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었습니다. 바로 아래 같은 시가 『접시꽃 당신』의 ‘비극적 리얼리즘’을 대변하는 절창이 아닐는지요.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뿐일 때도
   우리들은 온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참답게 산다는 것은 참답게 싸운다는 것
   빼앗기지 않고 되찾겠다는 것
   생명과 양심과 믿음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고
   정의와 자유와 진실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니
   밀물처럼 달려오는 죽음의 말발굽 소리와
   위압의 츱츱한 칼바람에 맞서
   끝끝내 물러서지 않는 것도
   (…)
   희망을 가진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앞길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일 때도
   우리들은 암흑과 싸우거늘
   빛이 보이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새벽을 믿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암병동」에서


  이 시에서 ‘앞길 전혀 보이지 않은 어둠일 때도 / 우리들은 암흑과 싸우거늘’이란 구절이 그리 가슴 시리면서도. ‘~행복하랴’라는 반어조로 얘기할 때는 더욱 악다구니가 치솟는 정서를 체험합니다. 내용에서도 사실은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라, 이미 <울타리꽃>이란 시에서 보이듯이 죽어서도 가족(혹은 민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선생님의 시 세계가 아닌지요.

  때문에 『접시꽃 당신』은 ‘대중화=저급화’라는 도식이 해묵은 관념임을 증명해 보인 첫 시집이라 여겨집니다. 그 열쇠는 선생님의 치열한 민족의식과 민중연대성이 구현된 시 정신 때문이겠고, 그것이 신파조의 넋두리가 아닌 진실한 목소리를 담는 열쇠가 되었겠죠. 해서 저는 최두석 시인의 말마따나 (“대중성과 연애시”, 『창작과 비평』, 1987) 『접시꽃 당신』은 소월의 <진달래꽃>이나 만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님’의 의미를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의미로 끌어내렸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물론 제가 ‘끌어내렸다’고 하지만, 그 의미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영원하다는 덕담을 유념할 때, 가장 높이 끌어올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고리끼의 『어머니』나 안나 제거스의 『제7의 십자가』를 지적하여 가족적인 사랑을 강조한 작품이기에 자연주의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민중연대성의 의미는 가족적 본성, 나아가 민족적 본성에서 우러나온다는 점을 확인하곤 합니다.

  그만치 『접시꽃 당신』은 가족이라는 보편적 사랑을 품어 더 큰 사랑으로 확대해 가는, 그러니까 역사와 가족사의 뿌리를 개인 실존의 깊이에까지 깊이 박은 시집인 셈이 아닌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시집의 제 4부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사실은 제 4부가 실천적인 교육시로서의 자리 매김한 대목이었는데.


  

  더러운 손의 기도

    지금은 깨끗한 손으로 기도드릴 수 없습니다.
    참 생명을 지키기 위해 피를 묻히고 선 사람들처럼
    저도 목숨의 끈 조여오는 것들을 끊어내기 위해
    양손에 피를 묻힌 채 기도드립니다.
    더러운 것들을 치우다 손에 더러운 것 묻힌 채
    저녁 종소리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흙투성이가 된 채 흙 위에 서서 기도드립니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내기 위해
    뻘 흙에 발을 디딘 채 기도드립니다.
    지금은 깨끗한 몸으로 기도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 가는 이 길에
    몸 비록 흙 묻고 더러운 것 닦지 못해 누추하지만
    지금은 이대로 기도드립니다.
                        ㅡ「지금은 이대로 기도드립니다」 전문


  네 번째 시집인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은 교육자로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부대끼면서 그 사랑의 폭과 진정성을 담은 시집이더군요.
  1부에 실린 <유치장 첫밤>이나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같은 몇 편이 옥중시는, 소위 옥중시는 주관적 감상의 토로에 빠지기 쉽다던 평자들의 견해를 건너 뛴 감동의 시편이었고요. <스승의 기도>나 <목감기>, <답장을 쓰며> 같은 교육현장시는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서정적으로 증폭해낸 시편이었죠. 때로는 이런 시들에 나열되는 자유니 정의니 하는 관념어투의 말부림이 되레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해보기도 했답니다. 그건 아마도 시인이 현실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겠죠.
  

  선생님의 시편 중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시집도 고백적 성격이 강한 서간체와 ‘~습니다’ 식의 존경어 문투로 인해, 시의 진정성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무척 강하더군요. 무척 마음에 와 닿으면서도 교술시의 약점이 되는 교훈적 성격과 형식이 전과는 다르게 무척 풀어져 있기에 시적인 응축미는 풀어져 있지 않나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평론가 김명인 선배님이 『울타리꽃』(미래사, 1991)의 해설 격인 “눈물의 사제, 도종환”에 쓰신 대로, 네 번째 교육시집은 『접시꽃 당신』의 감상성(저는 민중연대성을 토대로 한 감상성은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을 극복하고 민중연대성과 그 실천성은 더욱 증폭되었다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만.
 

   얼마 전에 선생님의 시선집 『울타리꽃』을 사서 감옥에 갇힌 이웃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이른바 비행청소년이라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인데 강간미수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요. 해서 선생님의 시집과 산문집을 차입해주려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다가 창피하게도 혼자 고개 숙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대목이었지요.

   지금 당신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올리는
   이 아이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달도 없는 밤 가을 숲 속에서 몇 밤을 지새고
   다섯 번째 도둑질을 하다 들킨 왼손을
   오른손의 칼을 내리긋고
   피 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ㅡ「돌아온 아이와 함께」에서 (강조는 인용자) 


   세상의 더러움에는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우리 자신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요.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선생님의 시에는 눈물이 흐르고, 가슴 아픈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대화법과도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항상 스스로 깨우치고 남과 대화하는 개방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 어울리며 부대끼고, 기득층과의 대화에서는 항상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고, 심지어 대우받지 못하는 지저분한 죄인들과 식탁을 함께 하며 그들의 대화 속에 파고 들어가 어울리셨죠.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은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명백한 것이겠죠.

   이제는 우리가 못박힐 차례입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어 우리 대신 그 분을 못박아 가시게 했듯
   이제는 우리가 못박혀 매달릴 차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피 흘릴 차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앞서서 피 흘리며 갔듯이
                                ㅡ「나의 십자가」에서


  세상 사람들 하나 하나가 이런 순교자적 자세로 살아간다면, 더러운 손을 부여잡은 ‘더러운 손의 기도’를 드린다면, 세상은 향기 그윽한 푸른 숲일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큽니다. 우리는 이런 차례를 외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숲을 이룰 푸른 나무에게

   얼마 전에 문우(文友)들과 모여서 선배님들의 시를 생각하다가 자기를 갱신한 선배님들을 꼽아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도종환 선배님도 입에 올랐죠. 다만 선배님의 시가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보여준 내용과 형식간의 치열한 긴장감이 요즘 들어 다소 풀어지지 않았나 후배들은 걱정했답니다. 기도시나 서간체의 형식이 고백성과 진솔성의 미덕을 갖추고 있거니와 낭송하기엔 매우 적절하지만, 철저한 절제 없이 씌어질 때 또 하나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또한 그런 투가 자꾸 반복될 때 호소력의 무게 또한 가벼이 여김 받지 않을까, 삶의 현장에서 발을 떼지 않으려는 치열함 만치 더욱 긴장된 안간힘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바라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정형화된 기도시, 가령 라이너 마리아 릴케 투의 형식이 되레 어떤 독자에겐 반감을 줄 우려도 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윤재철 시인은 ‘아직은 양심과 선행의 차원에 많이 머물러 있고 또한 일상의 절실한 체험들이 자칫 관념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처리되면서 치열성을 잃고 있다’(<양심적인 교사에서 교육노동자로>에서)라고 비평했지만, 이는 기도시가 비신자를 포함한 대중의 정서에는 닿아 있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겠죠. 이런 점을 극복하는 문제는 크리스찬 문인에게 공통된 숙제이기도 하구요.
  

   “내가 뛰어넘어야 할 것은 바로 내 작품입니다”(『울타리꽃』, 서문에서)라고 선생님이 말하신 대로 이제는 정말로 선생님 자신 스스로가 자기 갱신해야 할 산맥으로 가로놓여 있습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선생님께서 그 산맥을 넘고 스스로 거대한 산맥으로 조국의 산하를 푸르게 일구시리라 확신해봅니다.
   

   참, 이태 전이던가. 편지를 보낼 참에 형님으로 써야 할지, 선배님으로 써야 할지, 어떻게 쓸까 고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한번 이렇게 불렀으므로 / 영원히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선생님’(<선생님께>에서)이란 시 구절처럼, ‘희망의 꽃을 피우는 선생님’으로 쓰고자 합니다.
   꽃샘추위가 제법 코끝에 맵찬 늦겨울날, 절절한 영혼의 노래로 상처 많은 푸른 나무들에게 봄의 훈훈한 숨결을 불어넣으시리라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1992년 2월 7일 샐녘
                                                            김응교 드림


김응교, 『살림』(한국신학연구소, 1992. 3. /제 40호), 106쪽 ~115쪽.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시의 탄생' 연재를 시작하며 : 목차 [4]
시냇물 2010.05.01. 2887
22 시의 탄생 5 : 메타포, 은유가 말하기를
시냇물 2011.07.12. 2657
21 시의 탄생 4 : 만요슈와 일본 현대문학
시냇물 2011.01.12. 2045
20 [인문숲길3] 경계에 피는 꽃 [1]
시냇물 2010.09.20. 2227
19 [인문숲길2] 백석, 윤동주, 전태일 [2]
시냇물 2010.08.27. 4056
18 [인문숲길1]사상의 리베로, 데리다 [4]
시냇물 2010.08.06. 2639
17 시의 탄생 3 : 그게 나를 건드렸어, 톡톡 [3]
시냇물 2010.07.29. 2173
16 시의 탄생 2 : 암시의 힘 [2]
시냇물 2010.07.16. 2404
15 시의 탄생 1 :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김응교 2010.07.09. 2163
14 [인문숲길.7] 역사란 무엇인가, 영화<변호인>
시냇물 2014.01.17. 1686
13 [인문숲길.6] 희미한 메시아적 힘, 발터 벤야민과 함…
시냇물 2013.04.24. 1098
12 시의 탄생 15 : 괄호의 탄생 ㅡ김기택 시집 『갈라진…
시냇물 2013.03.04. 1501
11 시의 탄생14 : 결핍을 넘어선 충만ㅡ 고은 신작시
시냇물 2013.03.04. 1038
10 시의 탄생13 : 후쿠오카 형무소 윤동주에 대한 응답
시냇물 2013.01.08. 1234
시의 탄생12 : 희망의 꽃을 피우는 선생님
시냇물 2012.07.01. 1581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