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의 고전사색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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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영웅소설과 판타지소설, 함께 놀자~

민들레

국문영웅소설과 판타지 소설

 

   고소설이 우리 문학사에서 본격적으로 발현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소설은 상층 문학 내지 주류 문학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어려웠다. 소설 내용이 불온하고 음란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미혹케 할 만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상류층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소설, 특히 국문소설은 여성 또는 하층 독자들의 독서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소설 독서를 천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 근대 이후로는 소설이 문학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소설 대 비소설 관점에서의 차별이 아니라, 소설 내부적 차별, 곧 순수소설 대 대중소설 관점에서의 차별이다. 대중소설이 순수소설에 비해 천박하고 통속적이며 다분히 자극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소설 내에서도 서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대중소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적절한 용어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장르소설’이라 지칭하는 무협소설, 판타지 소설, 인터넷 소설, 야설 등의 작품군이 바로 대중소설의 일부다. 여기서는 특히 판타지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판타지 소설은 근대 이전에 성행했던 국문 영웅소설과 여러 면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fantasy novel)’은 아직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변방 아니 이단적 성격의 하급 소설로 인식되곤 한다. 그렇기에 아직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정식 단어로 등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위키 백과사전에서는 “판타지를 장르로 하는, 혹은 시공간적 배경이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인 소설”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때 말하는 ‘상상의 세계’는 자연과학이나 기술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존재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상과학 소설에서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상상의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막상 판타지 소설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을 읽어볼라치면 옛날의 국문 영웅소설(영웅군담소설)의 서사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판타지 소설 중에서도 소위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에서 그런 요소가 두드러진다. 물론 국문 영웅소설과 유사한 서사 구조가 ‘양산형 판타지소설’만이 가진 주요 특징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특징을 ‘양산형 판타지소설’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양자 간의 유사성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준말인 ‘양판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양판소는 최근 발행되는 환상 문학계의 작품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에 박은 설정을 가진 소설을 칭한다. 대부분의 경우 서클 마법과 소드마스터라는 클래스가 등장하며, 주인공은 매우 강한 힘을 지녔다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양판소는 아마추어 작가의 글로, 낮은 완성도와 작품성을 보인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지탄을 받는 일이 잦다.(네이버 국어사전)

 

   위 설명대로라면 양산형 판타지 소설은 판에 박힌 설정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으로, 사건 전개나 인물의 행위가 유형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일정한 패턴(영웅의 일생 서사 구조)에 따라 서사가 전개되는 국문 영웅소설과 비교해 볼 때, 별반 다르지 않다. 더욱이 ‘양판소’는 비록 인기는 있지만 완성도와 작품성이 낮은 판타지 소설을 일컫는다. 즉, 재미 위주의 통속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일정한 패턴의 서사 구조와 영웅군담을 기본 스토리로 삼아 흥미 위주의 통속성을 추구하는 한편, 싸구려 종이를 사용해 저가로 책을 만들어 하층 독자를 위해 대량 생산해 보급하던 방각본 국문 영웅소설과 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산형 판타지 소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한국 판타지 소설의 전개는 1990년대 후반  PC통신상에서 연재되던 통신 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 통신 문학은 대부분 환상 문학과 매우 유사한 양태를 띠었는데, 이것이 책으로 출간되면서 특별히 ‘판타지 소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판타지 소설은 양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대중소설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014년 현재까지도 인터넷의 여러 사이트에서 자유로이 연재되고 있으며, 그중 인기 있는 작품은 책 출판으로 이어져 그 생명력을 유지해오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인기를 누리며 출판되고 있는 판타지 소설의 선두 주자가 바로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 된다. 판타지 소설은 대중의 인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판타지 소설과 국문 영웅소설이,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부정적 평가와 홀대를 받으면서도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은, 양쪽의 공통점이 당대 독자들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고소설 중 국문 영웅소설은 흔히 <<홍길동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국문 영웅소설은 흔히 두 계열로 나누는데, <<임진록>>, <<임경업전>>, <<박씨전>> 등처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배경으로 한 역사 영웅소설과 <<조웅전>>, <<유충렬전>>, <<소대성전>> 등 허구적 영웅과 사건을 창작해 만들어낸 창작 영웅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양쪽 다 예사 사람은 따를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영웅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되, 탁월한 능력을 십분 발휘해 고난을 극복하고 적대자(간신 등)를 물리치는 서사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전자는 국내의 역사적인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데 반해, 후자는 중국을 무대로 한 허구적 창작의 성격이 강하다.

   흔히 창작 영웅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대개 귀족적 영웅소설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으로 설정된 영웅이 대개 고귀한 혈통을 지닌 채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유충렬전>>은 특히 ‘영웅의 일생 구조’를 가장 잘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① 덕성이 뛰어나고 부귀를 누리는 현직 고관의 외아들인 주인공이 ② 늦도록 자식이 없어 근심한 부모가 산천에 기도를 한 덕분에 태어났고, ③ 천상인의 하강이기에 비범한 기상을 지녔고, ④ 간신의 박해 때문에 죽을 고비에 이르렀다가, ⑤ 전직 고관이 구출, 양육자로 나서서 그 사람의 사위가 되고, 도승을 만나 술법을 배우는 행운도 얻은 다음, ⑥ 간신이 외적과 합세해 난을 일으켜 나라가 위기에 이르렀을 때, ⑦ 전란을 평정하고 고귀한 지위에 올라 다시 아내와 함께 부귀를 누린다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창작 영웅소설의 서사 구조는 초창기 무협과 정통 무협, 혹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불린 작품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웅의 일생 구조(①~⑦) 중 한두 가지 요소가 빠질 수는 있지만, 무협 1세대 소설, 그리고 최근의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서 그런 특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국문 영웅소설의 주인공은 남자만이 아니다. 영웅의 일생을 후대까지 이어온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주인공도 여자고, <<금방울전>>, <<숙향전>>, <<홍계월전>> 등 많은 고소설 작품에서 여성 영웅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여성 판타지 소설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소설들은 고귀한 출생의 여주인공이 적대적 인물들로 말미암아 천대받고 위기에 처하지만, 능력을 발휘하고 결국 멋진 남자와 결연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웅소설의 두 계열 중 하나인 역사 영웅소설의 흔적은 오늘날의 ‘역사대체 소설’과 닮아 있다. 역사대체소설은 어느 한 시점의 주인공이 과거로 넘어가서 역사를 바꾼다는 내용으로, 역사 군담소설과 마찬가지로 실제 역사를 바꾸는 내용이 주가 된다. 역사 군담소설인 <<박씨전>>과 역사대체소설에 해당하는 이우혁의 <<왜란 종결자>>를 비교해 보면, 두 작품의 유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작품은 실제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의 행적을 다루고 있으나, 역사적 사실과 달리 패배를 승리로 바꿔놓는다든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키 위해 일종의 변형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공통적이다. 예컨대,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조선을 쳐들어와 삼전도에서 인조 임금이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병자호란을 <<박씨전>>에서는 박씨 부인이 지략과 능력을 발휘해 만주족을 물리친 전란으로 바꿔놓는다. 그런가 하면 <<퇴마록>>의 저자로 더 유명한 이우혁의 <<왜란 종결자>>는 임진왜란을 기본 배경으로 삼아 역사적 고증을 거쳐 만든 작품인데, 이 역시 임진왜란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시각으로 펼쳐내 독자의 흥미를 크게 불러일으켰다. 즉 역사를 가정하여 사실과는 다른 결론을 소망하는 이들의 바람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창작 시대는 다르지만, 창작 심리 면이나 독자의 욕구를 대리 충족시켜 준다는 면에서 양자는 매우 닮아 있다.

   대체역사형 소설은 어떤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시 세분된다. 중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의 경우, 서양형과 동양형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형은 전형적인 서구 중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를 의미한다. 기사와 영주, 왕이 등장하고, 환상적인 요소로서 마법과 여러 종족들이 등장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동양형 판타지 소설은 무협소설이 대표적이다. 무협소설은 주로 남송 시절이나 명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명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홍무제부터 건문제, 그리고 영락제에 이르는 중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무협소설의 역사를 보면, 1960~1980년대 초까지는 중국 번역물을 번안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일반적으로 ‘정통무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일본에서 창작한 사무라이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무협소설이 새롭게 국내에 들어오면서 마니아 독자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무협소설은 그 강렬함과 잔인함이 여타 소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나라 무협소설의 역사는 외국 무협소설을 번역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1980~1990년대는 ‘기정무협’의 시대라 일컬어진다. 기정무협은 두 가지인데, ‘기정(奇正)무협’이 있고 ‘기정(奇情)무협’이 있다. 전자는 ‘정통무협’과 유사한 것으로 정통무협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쓴 소설’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기정(奇正)무협은 ‘역사적으로 있을 법하거나 구전되어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무협소설을 말한다. 후자의 기정(奇情)무협은 남녀 간의 애정을 주제로 쓴 무협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기정무협이라 하면 ‘남녀상열지사’에 중점을 둔 무협소설을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통무협’이 무협의 범주 안에서 통용되는 말이라면, 문학이란 범주에서 ‘무협소설’은 ‘기정(奇正)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것이다.

   1990년대에는 ‘신무협’ 시대라 할 수 있다. ‘신무협’이란 용대운의 <<태극문>>(1994), 좌백의 <<대도오>>(1995)로 시작된 무협소설의 새로운 형태를 의미한다. 이 시기를 흔히 ‘무협소설의 2세대’라 부르기도 하는데, 과도한 과장으로 포장된 전 세대 무협소설의 기틀을 반성하고, 이를 타파하고자 지나친 과장보다 현실에 집중하고, 특정 소재나 개인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이후로는 기정무협 시대까지 탈피하지 못했던 의고적인 문체와 작가의 소설 개입 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판타지 소설이 대거 등장해 ‘3세대 무협소설’의 시대를 이루었다. 무협과 판타지를 별개 갈래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무협을 판타지 소설의 하위 갈래로 둘 수 있다. 그것은 무협소설에서 나타나는 환상성이 결국은 판타지 소설의 정의에서 말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을 환상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모든 소설로 범주화할 수 있다면, 무협 역시 이에 포함된다.

   한편, 서양형과 동양형 판타지 소설이 공존하면서 둘을 한 가지로 합치고자 하는 시도도 나타났다. 그것을 소위 ‘퓨전형 판타지 소설’이라고 부르는데, 소설 속 주인공이 특정한 계기로 시공을 뛰어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퓨전형 판타지 소설이 등장한 배경에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반드시 중세의 서양인이나 중국인이어야만 하는가?’라는 고민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전동조의 󰡔묵향󰡕을 퓨전 판타지 소설의 그 시초로 본다. 이후 퓨전형 판타지는 현대를 사는 주인공이 특별한 계기나 인연으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후로는 현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 등장하게 된다.

   현대적 세계관을 그려낸 작품들은 게임형과 SF형으로 나눌 수 있다. <<구운몽>>을 시초로 한 몽자류 소설은 환몽(幻夢) 구조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판타지 소설 중에서도 ‘게임 소설’이 그와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게임 소설’은 주인공이 미래의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한 게임을 하는 것을 소설의 주된 서사로 삼고 있다. 게임 중독자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팔란티어)>>을 필두로 이러한 성격의 소설 작품들에서는 현대와 가상현실이라는 일종의 꿈을 넘나들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프롤로그’ 편과 제1권 제1장 ‘그림자 동굴’ 편의 일부를 들어 본다.

 

5월 19일 월요일, 팔란티어, 카자드 어느 곳

 

“가일! 윌!”

고함 소리는 사방을 둘러싼 어둠을 향해 수백 수천의 메아리로 번지며 사라져갔다. 보로미어는 대답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으나, 한 걸음 물러섰던 정적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다시 그의 주위로 조여들어다.

‘빌어먹을 두칸 녀석!’

로미어는 속으로 안내를 맡았던 레인저(Ranger)를 저주했다. 간단한 퀘스트(Quest)라는 녀석의 말만 믿고 카자드 쿰을 떠나온 게 겨우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길눈도 밝고 경험도 꽤나 있어 보여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웬걸, 그림자의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절대로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된다는 <그림자의 방>으로 캐러밴(Caravan)을 안내한 것이다. 각자의 그림자에게 공격당해 혼비백산한 대원들이 횃불을 꺼뜨리고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은 벌써 한 시간 전의 일이다.

동굴 안에 있다던 보물은 관두고라도, 일단 살아나가려면 캐러밴을 다시 모으는 일이 제일 급했다. 혼자서는 이 동굴 안에서 단 두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보로미어는 등 뒤의 벽을 더듬으며 북쪽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나아가자 앞쪽에서 어른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보로미어가 방패를 끌어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불빛을 향해 다가가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거기 누구냐?”

보로미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로미어”

그의 대답에 불빛이 급히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씨이, 어디 있었어?”

청백색 구체를 올려놓은 손바닥에 이어 파랗게 질린 윌의 앳된 얼굴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대부분의 위저드(Wizard)들이 그렇듯 가벼운 가죽 갑피 위에 두터운 감색 두건 망토만 걸친 차림이었다. 보로미어는 칼을 칼집에 꽂으면서 물었다.

“너 다친 곳은 없어? 다른 사람들은?”

“모, 모르겠어. 다, 다친 곳은 없는데, 카일이나 라, 라비안, 두칸 모두 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진정해, 이 멍청한 위저드야. 왜 이렇게 떨고 난리야? 퀘스트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중략)

 

삐익!

익숙한 동기화 해제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5월 20일 00:50

접속을 해제하시겠습니까?

물론이었다.

 

오늘의 내용을 갈무리하시겠습니까?

 

역시 물론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접속이 끊어지자, 원철은 머리에서 멀티 세트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 52분, 자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시스템을 끄고 문을 연 다음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크게 기지개를 켜자, 등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며 뿌듯한 만족감이 뒷골로 뻗쳐올라 왔다.

아슬아슬은 했지만 화끈한 하루였다.(<<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 중에서)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판타지 소설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은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를 개척한 소설로 평가받는 만큼, 게임 소설의 성격과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후반부에서 인터넷 게임 접속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 원철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 앞부분까지는 인터넷 게임 세계를 무대로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 속으로 들어가 마치 독자가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서술자가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여기서 위에서 보이는 ‘위저드’, ‘레인저’와 같은 어휘들은 모두 ‘팔란티어’라는 인터넷 게임 안에서 나눠진 네 가지 계급을 가리킨다.

   이처럼 이 소설은 가상현실과 현실을 교차로 진행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또 다른 인격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을 흥미 위주로 속도감 있게 서술해나가고 있다. 소설은 송 의원이라는 정치가가 백주 대낮 교회 앞에서 경호원들을 뚫고 달려온 한 대학생에게 검으로 살해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장욱 형사는 이 대학생과 게임 ‘팔란티어(Palantir)’의 관계를 깨닫고, 심리학자 헬레나 김과 함께 이 게임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된 작품인데, 서사 구조뿐 아니라 사건 위주의 스토리에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말하기 기법, 곧 구어적 표현을 적극 활용해 단숨에 한 권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마력 내지 흡인력이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작가 김민영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다. 의사로서 관심 영역과 연결 지어 가상현실에 대한 인간 정신의 부적응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펼쳐 보인 것이다. 지식인 작가가 통속성과 상업성을 고려한 흥미 본위의 소설을 인터넷 게임 세계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를 통해 걸출한 이야기 작품을 창출해낸 것이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이런 작가의 이력을 볼 때, 통속성이 강한 국문 영웅소설을 지은 원작자 역시 당대 꽤나 배운 지식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퓨전소설 중에도 현대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 무협과 판타지 세상으로 넘어가는 설정을 한 작품이 있다. 이러한 작품 역시 주인공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몽자류 소설과 서사 전개의 원리가 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SF형’은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특정한 계기로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과거를 바꾼다는 내용의 소설을 일컫는다. SF형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이 판타지 유형은 과학적이기보다는 마법과 같은 환상적인 요소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공상과학소설과는 다르다. SF형 소설의 주인공은 대다수가 고등학생, 또는 청년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주요 독자가 그 또래이기 때문이다. 주로 무능력한 주인공이 어느 날 어떤 사건을 겪고 과거로 돌아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에게 복수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영화 ‘포비든 킹덤(Forbidden Kingdom)’의 내용과도 흡사하다. 이 영화에서는 쿵푸를 좋아하나 유약했던 미국의 한 소년이 우연한 계기로 중국 무술계로 공간 이동해 두 스승(이연걸, 성룡)에게 무술을 익히고 다시 현대로 돌아와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당당히 물리치고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소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처럼 SF형 소설은 현재의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으로 나타난 것으로 최근 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SF형 소설은 현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특히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은 주목을 요한다. 하지만 그 해결 과정에서 환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점은 판타지 소설이 지닌 고유한 내적 논리이면서 특징이자 한계라 할 것이다. 이는 고전 영웅소설이 당시 독자들에게 미친 영향력과 소설 자체의 효능, 그리고 그 한계와도 유사한 것이다.

 

판타지 소설의 유통 방식

 

   판타지 소설은 내용 뿐 아니라 유통 방식 면에서도 조선 후기에 나타난 국문 영웅소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 후기인 18세기 중반에 이미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 성행했다. 이때 세책점을 통해 국문소설 책을 빌려다 보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했다. 당시에는 인쇄 기술이 빈약했기에 전문 필사자를 두어서 세책본 소설이란 것을 만들어 책을 대여해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여기서 취급하던 소설책은 대개 국문소설이면서 분량이 길고 여러 가문의 결합과 갈등을 다룬 장편소설들로서 통속적 성격이 강한 국문 영웅소설은 아니었다. 다만 국문 영웅소설이 성행하게 된 19세기에도 이런 세책점이 성행했고, 취급 품목이 늘어나면서 세책점에서 국문 영웅소설도 함께 취급하게 된 것이다.

   초기 무협소설의 유통 방식 역시 도서 대여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유사했다. 물론 서점에서 구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여점에서 빌려서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세책본 소설과 마찬가지로 대여점에서 빌려주는 소설들도 책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여점 소설책은 책 표지를 비닐로 싼다든지 책에 커다란 철심을 꽂았는데, 이는 과거에 세책본 소설의 표지에 기름을 먹이거나 삼베 천을 대 튼튼하게 만들거나 오침안정법(구멍을 다섯 군데 뚫어 끈으로 엮는 방법)으로 책을 고정하던 방식과 유사하다. 독자들의 행태 역시 닮은 구석이 많다. 대여한 판타지 소설의 책장을 들쳐보면 낙서나 그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과거에 세책본 소설 속에 욕설과 음화, 각종 낙서 글이 적혀 있던 것과 닮았다.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의 유통에도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대여점이나 서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책들을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게 되면서 큰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판타지 소설은 인터넷이 보급된 초창기에 나우누리, 하이텔 같은 온라인 PC통신 매체에 󰡔드래곤 라자󰡕와 같은 작품들이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협소설이 인터넷상에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소설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이를 중심으로 고정 독자(마니아 독자)들도 생겨났다. 현재 대표적인 소설 커뮤니티로는 ‘문피아’, ‘조아라’, ‘모기판타지’ 등이 있는데, 이들 사이트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작품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으로 출판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이 인기를 끌자, P2P와 웹 하드 사이트 운영자들이 고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전문적으로 책을 베껴 쓸 사람을 고용하여 이들 작품을 한글 메모장을 이용해 필사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시대 세책점에서 전문 필사자를 고용해 책을 필사하게 한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아니면 영화 <음란서생>에서 황가네 유기그릇 가게 안쪽에서 소설책을 베껴 쓰던 필사장이를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행위가 불법임에도 ‘텍스트본 소설’이라고 하여 많은 소설이 이런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필사 단계를 지나 스캐너, 필름이 필요 없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현재 인터넷 소설 유통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한글 메모장에 한 자 한 자 베껴 써내려가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스캐너로 출력하여 올리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스캔본 소설’이라고 부를 만한 이 소설들은 과거 방각본 소설에 견줄 만하다. 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전자책(e-book)은 바로 방각본 소설 다음에 나타난 ‘인쇄본 소설’, 곧 활자로 조판하여 찍어내던 활자본 소설에 비견할 만하다.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의 주 독자층은 남자 청소년이며, 이들은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가 있지 못하다. 따라서 서점에서 책을 직접 사 보기보다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 방법을 더 선호했다. 또는 또래 친구들과 각기 다른 종류의 소설을 빌린 후 서로 바꾸어 보는 방식으로 책을 읽기도 했다. 이런 독서 및 향유 방식은 세책점에서 여성들과 하층민이 책을 빌려다가 서로 바꿔가며 읽거나 집 안에 있던 가재도구나 장식품까지 전당 잡혀가며 경쟁적으로 빌려다 보던 과거의 세책본 소설 독자들의 독서 방식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로 보건대, 세월이 흐르고, 사회와 환경은 획기적으로 변했지만, 독서 및 유통 방식과 향유 양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계속 반복 순환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유통 방식과 향유 양상뿐 아니라 저작권 개념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기에 고소설의 이본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소설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었던 까닭에 작가는 그 이름을 밝히길 꺼렸고, 당연히 소설의 내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따라서 독자들이 소설을 마음대로 수정하고 필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작권 개념이 분명한 오늘날에도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이들 작가들도 여느 문학 작가처럼 대놓고 자기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필명을 쓰고자 한다. 그리고 작품의 성격상, 독자는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 하기보다 작품의 내용이 어떠한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불법 다운로드를 마구 행함으로써 개인 창작물을 공용처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 작가들은 대개 겸업을 하며 살아간다.

   판매 부수를 올려야 하는 작가는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양산형 판타지 소설은 철저히 청소년 독자를 주 독자층으로 잡고 창작되었다. 절대적으로 강한 주인공을 뜻하는 ‘먼치킨(원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난쟁이들을 일컫는 말로, 특별히 힘이 센 주인공이 등장하는 판타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한 이들 소설은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 중에서도 질 낮은 소설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아직도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은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다. 청소년 시절에 읽는 불량 만화 정도로 인식되곤 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 작품의 일부만 보고 전체 무협소설 또는 판타지 소설을 판단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아예 읽어보지도 않고 선입견을 갖고 평가한 탓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독자층만이 향유하고 마는 작품이 아니라 다수가 공감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역사대체소설 중에서 전자책으로도 출판되고 사이트 ‘조아라’에서 유료로 연재된 바 있는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 같은 작품은 작품성이 충분하며, 판타지 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창작영웅형 판타지 소설 중에서 중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하얀 로냐프의 강>>이나 <<군림천하>>, 그리고 게임 판타지 중에서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같은 작품들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그렇지만 판타지 소설 중에서 이른바 ‘양판소’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더는 흥미를 느끼지 못할 만큼, 유사한 서사 구조의 반복과 낮은 주제 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선별해 읽을 필요가 있다. 소설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들 말한다. 아니 ‘위기’라는 거창한 말을 동원할 필요 없이 순수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설렘을 선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과 달리 작품과 독자가 유리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개인의 관념에 치우쳐 일상생활에서 공감하고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것이 흥미롭고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기 때문인데, 순수소설에서 그것을 느끼기 어렵다. 그 역할을 영화나 드라마가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에 대중소설은 여전히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치우쳐 작품 수준이 낮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독자에게 감동과 재미, 그리고 유익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소설에 영상을 접목하고,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상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문자 중심의 미학만으로는 요즘처럼 디지털 사회의 다양한 감각과 표현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순 없을까?


윤정안 2014.04.10. 4:30 pm 

저는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아침 막장 드라마와 가정소설의 구조가 이토록 흡사할 수 있을까,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순한 서사는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민들레 2014.04.15. 4:49 pm 

서사의 역사 역시 '반복과 차이'의 특성을 지니고 있겠죠. 요즘 TV 드라마 시청률과 인기요소를 분석하면 조선후기 대하장편소설의 흥미 요인과 상당 부분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요즘 관련 연구 논문도 나오고 있는 것이겠죠. 서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선악의 기준만큼이나 시대와 사회의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에서 자유할 수 있는 사고, 누워 있는 사유를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제를 함께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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