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의 고전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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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창의성에 관한 단상(短想)

연구소 쪽지

고전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창의성에 관한 단상(短想)

 

1.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애쓸 뿐이다.” 이 말 속에 교육의 목적과 방법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교육이란 학생을 가르치는 것 외에 앎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동시에 포함한다. 환경이 교육의 내용과 목적을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환경이 고정적일 수 있을까? 반드시라고 말할 순 없지만, 상황에 따라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방법론적 모색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배울 수 있는 환경의 변화는 좋든 싫든 기존의 방법론과 대립하거나 조화를 꾀하게 된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하고 무수한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때에 교육의 패러다임이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라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는 소위 이해인문학에서 표현인문학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문자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적 관점이 아니라, 가능한 매체와 그것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 현상까지 아울러 다루려는 문화적 관점에서 새로운 방법론이 모색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 교육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현실을 돌아보면 그동안 문학연구 또는 문학교육은 근본적으로 문자를 떨쳐버리지 못해 왔다. 디지털 미디어가 생활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문학을 둘러싼 사회문화적인 조건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요즘에도 문학 교육은 여전히 문자또는 문자성이 만들어 낸 편협한 사유의 틀 안에서 강력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고전문학 교육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고전문학 연구와 교육의 내용과 속성상 변화에 둔감하고 보수적 측면이 더 강력하게 작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고전문학 교육이라고 해서 문자문화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노력이 미흡하거나 불철저해서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력은 가상하나, 여전히 시대와 상황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서 표현하려 하기보다, 문학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데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여기서 다시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왜 요즘처럼 디지털 사회문화에서 아날로그 사회문화의 산물인 고전문학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가?” 그것은 문학에 앞서 古典이 갖는 창의력과 소통, 아니 가치지향성에 있다. 고전문학 교육은 문자와 자구의 의미를 알아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도 여전히 길어 올릴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문자에 앞서 인간을 긍정하고, 어렵지 않고 쉬운, 그러면서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며, 또한 그렇게 해서 찾아낸 가치를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활동이 고전문학 교육의 본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의식을 어떻게 교육을 매개로 실천할 수 있을까? 디지털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연구자나 교수·학습자들이 여전히 계몽의 합리주의라는 기존의 틀에 얽매여 고전작품을 이해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

 

잘 알다시피 연암 박지원이 그의 제자격인 초정 박제가의 문집 󰡔초정집(楚亭集)󰡕에 서문을 써 준 일이 있다. 바로 초정집서(楚亭集序). 연암의 글쓰기론과 문학론이 오롯이 드러나 있어 일찍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고전산문 중 명문이라 할 것이다.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중략) ! 옛 것을 모범으로 삼는 사람은 옛 자취에 구애되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創新)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 리이다. 진실로 법고(法古)’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創新)’하면서도 능히 전아(典 雅)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다.

 

그런데 문집의 서문 첫 문장이 뜬금없이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로 시작된다. 서문치고는 파격 중의 파격이다. 그리고 이후로 당대의 글쓰기 풍조를 비판한다. 고문을 숭상하던 이들은 옛 글을 모범으로 삼아 그것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 데 열중하는 반면, 공안파로 대표되는 새로운 글쓰기 주체들은 자신들의 글이 살아있는 글이라며 격식에 벗어난 작문을 거리낌 없이 추구하는 실태를 균형감 있게 모두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법고창신(法古創新)’론을 내놓고 있다. ‘法古創新’. 이것은 法古而創新, 법고(옛 것을 본받음)‘하면서창신(새로운 것을 창조함)할 줄 아는 사고, 달리 말해 법고해서창신할 수 있는 상대적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내되 법도가 있게 하자는 논리를 글쓰기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정한 법고창신적일 수밖에 없고, 진정한 창신법고와 연결된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그 다음에 연암은 법고창신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읽은 이가 있었으니 공명선(公明宣)이 바로 그요,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짓는 이가 있었으니 회음후(淮陰侯)가 바로 그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공명 선이 증자(曾子)에게 배울 때 3년 동안이나 책을 읽지 않기에 증자가 그 까닭을 물었 더니, “제가 선생님께서 집에 계실 때나 손님을 응접하실 때나 조정에 계실 때를 보면 서 그 처신을 배우려고 하였으나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아 무 것도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 문하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배수진(背水陣)은 병법에 보이지 않으니, 여러 장수들이 불복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회음후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데, 단 지 그대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뿐이다. 병법에 그러지 않았던가?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 그러므로 무턱대고 배우지는 아니하는 것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혼자 살던 노() 나라의 남자요, 아궁이를 늘려 아궁이를 줄인 계략을 이 어 받은 것은 변통할 줄 안 우승경(虞升卿)이었다.

 

여기서 연암은 법고창신의 실례로 독서를 잘한 공명선(公明宣) 이야기,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배수(背水)의 진()을 쳤던 이야기, 노나라의 어떤 남자가 성현으로 칭송받던 유하혜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취했던 이야기, 그리고 아궁이 수를 줄이는 손빈의 전술을 역이용한 우승경(虞升卿) 이야기, 이렇게 4편의 전고를 언급하고 있다. 무슨 까닭인가?

역사에서 독서를 잘한 인물로 연암은 증자의 제자였던 공명선(公明宣)을 꼽았다. 공명선은 3년간 증자 옆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았노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책으로 독서한 것이 아니라, 스승의 집 안팎에서의 공적·사적 몸가짐과 언행에서 배움을 얻고자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책 밖에서도 얼마든지 진리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닫고 자연과 세상에서 온몸으로 배우고자 한 이였기에 연암은 그를 일러 독서를 잘한 이라 평한 것이리라.

공명선이 독서를 잘한 이라면 글을 잘 쓴 이는 중국 한()나라를 일으킨 유방의 부하장수로 유명한 한신(韓信)이다. 연암은 한신의 위대한 독서법을 그 유명한 배수진(背水陣)에서 찾았다. 정작 배수진은 당시 어느 병법에도 보이지 않는 전법이라 졸병들과 부하 장군들이 의아해했다. 그러나 결국 물을 등지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한신의 군대는 죽기 살기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 승리의 비결을 묻는 부하장수들에게 한신이 이렇게 말했다. “병법서에 이르지 않았던가. 죽을 땅에 들어간 다음에야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한신은 당당하다. 자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병법서에 있는 것을 응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고해서 창신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집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잠을 재워주기를 청하는 이웃집 과부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노나라의 한 남자 이야기로 이어진다. 거절을 당한 과부는 당시 노나라의 현자인 유하혜가 동일한 일이 있었을 때에 옆집 과부를 재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소문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당신은 왜 유별나게 구느냐고 따지자,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유하혜는 성인 군자라 한 여자와 함께 있어도 모두 그의 인품을 믿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만, 나는 유하혜와 다른 사람이고, 그처럼 현자로 칭송받지 못하는 범부에 불과하므로 동일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조롱을 퍼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대를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이런 전고를 두고 연암은 그 노나라 남자야말로 줏대 있고, 가히 제대로 배운 인물이라며 칭송해 마지않고 있다. 그대로 현자(賢者)를 흉내 내려 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를 알고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것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암이 제나라 장수였던 손빈이 위나라의 방연 군대와 전투를 벌일 때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첫날에는 10만개였던 아궁이를 이튿날엔 5만 개로, 셋째 날엔 3만 개로 줄여 마치 겁을 먹고 도망간 것처럼 꾸며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들었다가 결국 승리를 거둔 예로 연결된다. 그것은 우승경(虞升卿)이 북방 오랑캐와 싸울 때 병력이 열세에 놓였지만 손빈의 경우와 반대로 구원병이 온 것처럼 아궁이 수를 늘려 상대방을 겁먹게 한 후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고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연암이 말하는 진정한 법고창신의 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창신(創新)하기 위해서는 소위 지변(知變)’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변은 과거의 텍스트들이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창작의 밑거름으로 활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창의성이 문제다. 그런데 연암은 초정집서의 말미에 창신을 한답시고 재주를 부릴진대 차라리 법고를 하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하면서 행여 양자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법고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조언까지 잊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사고가 필요한 데, 불가피할 경우 새로움을 추구한답시고 방방 뜨기보다 차라리 답답하단 소리를 듣더라도 근본을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 표명은 일차적으로 연암이 서문을 써 준 상대방, 곧 제자격의 박제가를 향해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었지만, 그의 문학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홍대용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암이 박제가에 관해 지나치게 날카로우며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니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걱정하던 그 마음을 박제가 문집 서문에서 직접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이가 어디 박제가뿐이겠는가? 글을 쓴답시고 옛 글을 모방하는 데 급급한 것도 문제이지만, 박제가처럼 기교에 치우치거나 새로운 시각만을 추구한답시고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도 삼가야 할 것이다.

 

3.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창의성문제로 되돌아가도록 하자. 흔히 글쓰기 교육에서 창의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실제로 글쓰기에서 창의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인가? 교육현장에서 창의적 사고와 글쓰기의 상관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정작 글쓰기에 필요로 하는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짚어 볼 일이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빈번히 사용되어 온 예 중 하나가 콜럼버스의 달걀이야기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후 축하연이 벌어졌는데 콜럼버스가 한 일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며 평가절하하려는 이가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콜럼버스는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 없이 달걀을 세워보라고 주문했고,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달걀의 한쪽을 조금 깨뜨려 달걀을 세워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이다. 글쓰기 교사는 이 이야기를 가져와 누구나 처음 시도하는 것이 어렵지, 사실 어떤 일이든 하고 나서 보면 쉽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창의적 사고 하에 글을 쓸 것을 주문한다. 문제는 창조적 발상을 운운하며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만 가지고 설명하다 보니 오히려 학생들에게 식상한 이야기로 다가가기 쉽다는 것이다. 오히려 창조적 사고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과정 여하를 떠나 분명한 것은 콜럼버스의 생각 자체가 창의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이 이루어낸 성과 자체가 창의적이었다는 데 있다.

어떤 면에서 창의성은 새로운 시선을 찾아내는 능력과도 같다. 따라서 루트번스타인은 발견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했다. , 모든 사람이 똑같이 보는 것이라도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발견이자 창의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통찰력 또는 직관, 아니 느낌이라는 것을 통해 발현되곤 한다. 우리 생활과 경험 속에서도 종종 맛보곤 하는 바로 그러한 직관과 느낌을 통해서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중국 한()나라 원제(元帝) 시절의 절세미인이 쓴 한시가 오랫동안 회자되어 온다.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이 흉노왕 호한야(胡韓捓)의 왕비가 되어 오랑캐 땅에 가 살게 된 왕소군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쓴 한시 중 다음 구절이 특히 유명하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네.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몸은 오랑캐족의 왕비로서 이국 만리에 와 있지만, 마음은 늘 고국에 가 있었기에 꽃과 풀이 만발한 봄날이 되었어도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라는 그녀의 심정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는 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 꽤나 짓는 지식인이라면 왕소군의 이 시구 정도는 입에 달고 다닐 만큼 유명하다.

그런데 조선시대 어느 지방의 원님이 향시(鄕試)를 치르는데, 과제(科題)胡地無花草를 내걸고 과문(科文)을 짓도록 한 적이 있었다. 글공부한 선비들이라면 이것이 왕소군이 지은 시구의 하나임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모두들 왕소군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며 열심히 적어 답안지를 제출했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에 장원을 차지한 답안은 다름 아니라 과제(科題)와 동일한 胡地無花草를 네 번이나 반복해서 적은 5언 절구시 형태의 것이었다. ‘胡地無花草의 뜻이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네정도가 되므로, 이것을 네 번 반복해 썼다면 당연히 이렇게 새길 수밖에 없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네

 

만약 시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황당하겠는가? 그런데 이 시가 장원으로 뽑혔다. 누구나 이렇게 해석하기 쉽건만, 이 답안을 장원으로 택한 원님은 이 시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시구(詩句) 중간에 우리식으로 토를 달아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 “胡地에는 無花草라는 일반적 해석으로 토를 달고 해석하는 데 그쳤다면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네.”라는, 아무런 감흥도, 울림도 없는 탄식 소리만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동일한 시구마다 토를 달리 달아 해석하면 사뭇 시의 느낌과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胡地無花草라 하나 (왕소군이 읊은 시에)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다고 하나

胡地엔들 無花草? 오랑캐 땅엔들 화초가 없을 소냐?

胡地無花草랴마는 어찌[=] 땅에 화초가 없을까마는

胡地無花草라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네.

 

동일한 한시일지라도 토를 중간에 어떻게 매기고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작품은 전연 새로운 차원의 시로 재탄생하게 된다. 과연 장원한 선비가 이렇게 토를 달고 해석하기를 바라고 답안을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는 심정으로 과제를 내리 연속 반복해 쓰고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후자처럼 토를 달고 해석을 시도한 원님의 시각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정작 이 시가 의미 있는 걸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작품 자체가 참신하거나 새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읽어내는 시선이 참신하고 새로웠기 때문인 것이다. 창의성이란 새로운 시선을 찾는 능력의 다름 아닌 것이다.

 

4.

 

결국 창의성의 유무는 구체적 결과물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구체적 성과물이 없는 사람이 창의적일 수는 있어도, ‘창의적인 인물이라고 인정받기는 어렵다. 요리를 만들 때, 아무리 재료가 좋고 물의 양과 끓이는 시간 등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훌륭한 맛을 내는 것은 좋은 재료와 조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기막힌 조합에 달려 있다. 어떻게, 어떤 비율로 섞고 요리하느냐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으로 연결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조합은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느낌과 감으로 승부가 난다. 그러므로 창의성은 구체적 실천과 성과물을 통해 드러나며, 그것은 어느 정도 소위 과 느낌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창의성은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이 가능성만으론 부족하다. 앞서 언급했듯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창의적 아이디어의 문제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아이디어가 현실화되고 구체화될 수 있도록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성공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 때 비로소 창의성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도,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독자들을 글로써 설득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창의적 글쓰기란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선으로, 절묘한 조합으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파생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글을 의미한다.

눈은 지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처럼 자주 보는 것은 지식적으로 안다고 판단하고 익숙함에 가려 새롭게 바라보기 어렵다. 친숙하게 알고 나날이 경험하던 것을 뒤집어 생각하고, 새삼스럽게 문젯거리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절묘한 조합이란 바로 각기 따로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의문도 없던 것을 함께 관련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곧 발상의 전환이고, 창의성의 출발이다.

만약 “2와 둘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학생에게 던졌다고 치자. 2와 둘이 무엇인지는 초등학생들도 안다. 그러나 2와 둘이 어떻게 다른가? 라고 물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냐하면 2와 둘을 각각 따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자의 관계를 같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사고의 단순한 조합이지만, 위대한 창조의 출발이 여기서 시작된다. 2와 둘을 포괄하는 공통의 원리나 이해의 틀을 찾는다면 이를 확장시켜 학문의 원리를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 경우, 사실 앎의 문제로 국한시키자면 초등학생과 석학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석학은 수없이 익숙한 현상과 사실의 파편들을 창조적 발상으로 관계 짓고, 절묘하게 조합해 내 이를 학문 일반의 문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반성은 구체성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고, 가해성(可解性)은 신비성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의 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5.

다시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창의적인 사고의 시작은 어디에서 오는가? 창의적 사고의 시작은 느낌에서 온다. 소위 ()’이 작동해야 된다. “왠지 이것인 것 같다.”라는 식의 느낌에서 비롯된다. 아인슈타인도 창의성은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인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의 기반이자 원천이다. 물론 정작 이러한 느낌과 직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창의성을 보여주는 사람들 자신들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편으로 신비성의 심장부에 있는 것이 가해성(可解性)’이라는 주네트의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느낌과 직관은 외부적 자극에서 온다. 그것은 익숙함보다 새로움에 의해 꿈틀거리는 ()’와 같다. 그러므로 자극에 반응하기 쉽도록,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오감과 몸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가? 싱거운 말일 수 있으나, 무엇을 하든 하면 된다. 여기서 이라는 의미는 마치 귀머거리가 상대방과 이야기하기 위해 상대의 입 모양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아니 장님이 걸어가기 위해 귀를 기울여 온갖 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것과 같다.(연암의 일야구도하기(一夜求渡河記)도 바로 듣고자 한 이야기의 한 예라 할 것이다.) 여행자가 처음 여행하는 곳에서 눈앞에 펼쳐진 각양의 풍광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과도 같다.

그렇다. 창의성이란 모든 것에 잘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의 다름 아니다.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게 느껴지도록 경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몰입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행할 때 감격하고 경탄하기 쉽다. 또한 무엇이든 거꾸로 생각하려고 할 때 그것 역시 경이로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언제나 자신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을 찾으려 하고, 상대를 놀라게 하려고 마음먹는다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연암은 이러한 진리를 잘 깨닫고 있었던 작가이자 창조자였다. 그 사실을 󰡔열하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열하일기󰡕를 펼쳐보라. 연암이 사절단 수행원 자격으로 처음 북경을 말 타고 나아간다. 그런데 가면서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입을 쫙 벌리고 감탄하고 깊이 사색한 내용을 곧바로 적어둔다. 그렇게 해서 󰡔열하일기󰡕가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열하일기󰡕는 연암이 어린아이처럼 보고, 듣고, 관찰한 일기이자 경탄과 사유의 모음집인 것이다. 감탄한 내용을 실증적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세히 보여주고, 설명하고자 하는 그의 시선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소위 잘 보고 관찰하고자 한 흔적이 농후하다. 게다가 비판적 의식도 살아 있다. 이처럼 연암의 그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살아 있는 촉수가 느껴지는 듯하다. 글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초정집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정집서에서 연암은 첫 문장부터 파격적이고, 충격적 요법을 사용한다. 일반적 서문 글과 달리 글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라는, 정말 황당하고 엉뚱한 질문이 우리의 무딘 이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연암의 글쓰기 전략이자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한 요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이후에 전개되는 법고창신론과 여러 사례들 역시 공을 들여 설계한 창의성의 성과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6.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망은 본능적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목도(目睹)하는 바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는 스토리가 넘쳐나고 이야기 짓는 능력이 전방위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말하기·쓰기의 표현인문학이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글쓰기에서도 말 되고’ ‘잘 설계된설득적 이야기가 요청된다. 그렇다면 결국 삶의 여러 경우의 수로부터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생산해 내고 이를 말로, 또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논술과 같은 논리적 글쓰기만이 설득을 목적으로 한다고 여겨선 안 된다. 논술의 언어가 지시적 용법, 또는 전달적 기능에 기댄다고 여겨 논술에서 언어의 정서적, 감화적 측면을 배제해야 한다며 규범적 처방을 내리는 데는 문제가 있다. 모든 글에는 서사와 서정을 담으려 하고, 거기에는 상상과 논리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삶의 의미를 포착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글쓰기가 지향하는 이상적 종착역일진대, 비록 감동을 목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논리적 언어 용법으로도 충분히 독자를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우리는 왜 고전산문을 배워야 하는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힘들고 고된 노동인 글쓰기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이성과 감성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7.

 

과거의 것이 현재의 것이 될 수 있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료의 복원이 그 하나요, 자료의 원형을 토대로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거나 변형시키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복원된 과거는 현재와 소통할 수 있다. 또한 현대 감각에 맞게 변형시킨 것도 현재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현재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을 과거의 문화유산에서 가져와 새롭게 인식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 이런 경우처럼 고전문학이 현재와 매개하는 방법이 중요한데, 교육이 그 몫을 차지할 수 있다. 오히려 교육의 역할은 나날이 다대(多大)해져만 간다. 중등교육 국어과에서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문화유산은 단연 고전문학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에서의 고전문학 교육이 국민적 교양으로 결정되는 현실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소중하다.

우선적으로 고전문학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거는 자세가 필요하다. 질문은 존재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자 새로운 사유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에 서서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유산인 고전문학을 국어교육에서 학습해야 하는 이유가 고전문학이 자체가 바로 현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질문 덩어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현재의 글과 새로운 사유 역시 미래의 고전문학과 유산이 된다. 이러한 상대적 인식에서 당대의 시대정신과 표현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 바로 연암을 비롯해 신문체를 추구하던 실학자들이었다. 새로움을 추구하던 이들의 근간에는 변화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사용하는 글자는 공유하지만, 그것을 자기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 인식할 줄 아는 창의적 정신이 있을 때 새로운 글쓰기가 가능하고 그것이 새로운 사유와 상호작용하며 이 시대의 사유를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이 세상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실()을 어떤 시선으로 사유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고문(古文)이 될 수도 있고, 금문(今文)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지금 우리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고전문학 교육의 주체인 연구자와 교사, 그리고 학생, 이 삼자가 함께 그 사이 어디쯤에선가 분명한 시선 처리를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이리저리 곁눈질만 하고 있는 형국은 아닌가? 고전문학과 교육의 만남을 고민할 때, 창의성과 창의적 교육 주체를 먼저 떠올려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당 2013.06.03. 4:14 pm 

이민희 선생님 글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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