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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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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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과 가치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안경환 교수의 <조영래 평전>

유성호(한양대)


최근 우리 독서 시장의 주류 양식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평전일 것이다. ‘평전’이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문제적 개인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하면서도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개입시키는, 사실과 허구의 접점에서 완성되는 양식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평전은 작가의 비평적 해석과 평가가 매개될 수밖에 없는 인물 비평 양식이고, 대중들은 잘 씌어진 평전을 통해 한 시대의 사상, 철학, 역사를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적 인물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평적 해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읽어볼 <조영래 평전>(강) 역시, 혹독했던 역사의 중심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한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가 결여하고 있는 종요로운 가치에 대해 경험케 하는 평전 문학으로서의 고유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사람은 일찍이 평전 문학의 고전이 되어버린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기도 했던 조영래 변호사다. 엄혹했던 군사 정권 시절, 익명으로 출간되어야 했던 <전태일 평전>의 저자를 대상으로 이제는 당당하게 평전을 읽을 수 있으니, 아마도 그 시절과 우리 시대의 상거(相距)는 감각적으로 보아도 너무도 멀기만 하다.

그 시간적 거리감 속에서 우리는 법철학자 안경환 교수가 지인으로서, 후배로서, 증언자로서 기록하고 있는 조영래 변호사의 모습을 통해 지식인이 왜소화되고 기능화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분위기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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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의 삶을 다룬 사료콘텐츠의 동영상 캡처(http://archives.kdemo.or.kr/contents/People.jsp)





조영래는 경상북도 청송 출신으로서,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196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로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의 주도적 인물로, 그리고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였으나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뒤 법정에 세워진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그 뒤 1년 6개월 만에 만기 출소하였으나, 다시 ‘민청학련 사건’ 주모자로 분류되어 수배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수배 상태에서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였는데 이 책은 처음에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이처럼 서울법대 수석 입학생의 이미지와 철저하게 시대의 억압과 불의에 맞선 저항적 인물의 이미지는 한 인물의 육체 안에 스스럼없이 통합된다. 이 평전의 가치는 바로 한 인물의 탁월함과 한 시대의 양심이 만나 결합되는 풍경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는 재능이 탁월할수록 자기 개발에만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요즘 세태에 대한 경종이기도 한데, 이른바 ‘공적 가치’에 헌신하는 지식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풍경을 통해 그 같은 전언(傳言)은 이루어진다.

그는 ‘서울의 봄’ 이후 사법연수원에 재입학하였고 변호사 개업도 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인권 운동은 비합법의 공간에서 합법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시민공익법률상담소’를 열었고, 대우 어패럴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큰 사건을 맡아 이른바 ‘인권 변호사’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공동체적 기억 속에 그가 <전태일 평전>의 숨은 저자라는 사실은 매우 깊은 심층을 이루고 있다. 그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타를 주었다고 고백하던 청년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한 <전태일 평전>, 그는 우리 시대의 선구적 평전 작가로서 그 책의 결론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맺는다.


이 결함투성이의 책자에, 전태일에 곤란한 약간의 진실이라도 담겨 있다면, 당신이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 사는 어떤 인종․계층․신조․사상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전태일은 반드시 당신에게로 가서 당신의 심장을 두들기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소리칠 것이다.


 이러한 고백은 이번 <조영래 평전>에도 족히 적용될 법한 것이다. 말하자면 안경환 교수도 <조영래 평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겸사(謙辭)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평단에서 이미 문학과 법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면서 중후한 에세이를 쓰곤 했던 안경환 교수에게 사실 평전 집필은 적격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조영래와 자신 사이의 ‘적절한 거리’라는 개념으로 평전 집필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저자의 ‘머리말’은 그 거리감의 실체가 그리 단순하지 않았음을 무겁게 전해준다.


 그와 절친했던 분들의 평가대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법학자로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쌓아왔다는 점에 용기를 얻어 감히 평전의 저술에 나선 것이 거의 5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당초부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과중한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항상 가슴이 답답했다. 조영래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처럼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열등감이 집필의 진도를 늦추었고, 그저 덮어두고 싶었던 아픈 기억을 애써 되살려야 하는 부담도 져야만 했다. 어쨌든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저술이나마 한동안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을 드러내어 참고와 비판의 자료로 제공하고자 한다.


 물론 조 변호사 1주기를 맞아 유고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는 없습니다-조영래 변호사가 남긴 글 모음>(1991, 창비)이 간행되었고, 2주기에는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1992, 까치)이 출간되었지만, 이 평전은 조영래의 삶이 가지는 이 같은 의미와 가치를 집대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1990년 12월 12일 타계 직후 만들어진 추모 모임을 중심으로 매년 추모 모임이 이루어졌고, 조영래의 역사성을 새기는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10주기인 2000년에는 ‘서울대 법대 공익․인권법 센터’에서 국제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2004년 4월 19일에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에 조영래 기념홀이 만들어져서 시대를 건너 젊은 후학들이 조영래라는 시대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게다가 이번 평전 간행으로 조영래는 합법 공간 안으로 들어와 한 시대의 정신적 표지(標識)로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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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첫째는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늘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4․19와 5․16, 한일회담, 유신 독재,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 등 조영래의 사회적 실천과 고스란히 겹치는 30여 년간의 한국 현대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리하면서 그 시대적 흐름 속에서 조영래의 생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저자는 조영래의 삶에서 서울대학교 법대가 차지하는 자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법대의 학생운동에 대한 탐사는 물론 ‘고시파’와 ‘비고시파’로 나뉘어 있던 서울대학교 법대 학생들의 풍속, 성향, 가치관, 지향 등을 풍부한 경험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학교 법대가 가지는 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때 ‘육법당(陸法黨)’이라는 오명을 썼을 정도로 권력 지향적이었던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 지식인들의 정신적 ‘그늘’을 날카롭고도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다는 점은 지식인의 자기 반성적 측면에서 소중한 진술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저자는 인권 변호사로서의 활동을 조영래의 삶에서 핵심으로 보고 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망원동 수재 사건’ ‘여성 조기 정년제 사건’ 등에 대한 변론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열정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열정과 꿈이 너무도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완으로 남게 된 것을 깊이 아쉬워한다.

또한 안경환 교수는 조영래 변호사가 가지고 있던 인간적 국량(局量), 이를테면 열정과 재능 외에도 그 특유의 진중함, 겸손함 등을 경험적으로 들려주면서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을 향해 고언을 쏟아놓는다. 특히 최근 우리 시대의 극단적인 보수 논객으로 활동적인 조갑제(아무래도 ‘전기(前期)’ 조갑제라고 해야 할 듯하다.)와의 교유를 사례로 들고 있다.


조영래의 통합력을 배양해낸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는 폭넓은 교우와 인간관계라는 점이다. 특히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즐겨 만났다. <월간조선>을 통해 한 시대의 논객으로 활동했던 조갑제와는 1985년부터 교류했다. (…) 조갑제는 ‘재사, 전략가, 전술가’ 또는 ‘투사’라는 조영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적절치 않다면서 ‘운동권적’ 시각을 단호하게 배척한다. 조영래는 겸손, 신중, 균형감각의 덕목을 갖춘 지식인으로서 동양 고전에 대한 이해, 문장에 배인 폭넓은 교양, 진지한 설득의 자세를 시종 견지하였기에 공격당하는 사람도 사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조갑제는 말한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똘레랑스’나 ‘타자와의 소통’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조영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균형 잡인 지식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간취하게 된다. 이러한 면모가 저자 특유의 객관적 서술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 하지만 저자도 조영래의 삶을 통해 자신의 지난 날을 겹쳐놓고 있기도 하다. 가령 에필로그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러하다.


한때 우리는 모두 이상주의자였다. 열정과 이상 때문에 목청 돋우어 외쳤고 가슴을 치고 울었다. 걸핏하면 죽음을 생각했고, 시시로 세상의 종말을 들먹거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의 염원 중 극히 일부분만 이루어진다손 치더라도 역사는 엄연히 진보하는 것이 아닌가. 수없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는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고 앞으로 더욱 크게 진보할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 없이도 우리는 살아왔고, 많은 것을 이룰 수가 있었다. 오늘 우리가 먼저 떠난 그의 삶을 아련한 그리움 속에 되새길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믿음과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영래의 삶과 죽음에는 이행되지 못한 저자 안경환 교수의 꿈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그것을 낭만적 미화로 부추기지 않고 성숙한 시선으로 조명한 덕분에 안경환 교수의 <조영래 평전>은 조영래에 대한 무조건적 높임이나 신비화에 빠지지 않고 조영래의 삶과 조영래의 시대를 차분하게 객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평전 문학으로서 당연히 이루어야 할 미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001년 출간된 박상률 시인의 아동용 평전 <조영래>(사계절)에서는 “성장기까지 항상 따라다니던 가난과 보리개떡, 들과 산을 좋아하고, 장군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던 황소고집쟁이 소년 조영래. 반 친구가 못 낸 수업료를 자신의 수업료로 대신 내주던 사춘기 시절의 조영래. 판사, 검사라는 안정된 길을 마다하고 평생을 가난한 이웃과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한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통해 이웃 사랑과 인권 존중의 정신을 배워본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유년 시절에 대한 각별한 기억과 함께 안경환 교수의 <조영래 평전>은 쉽게 망각되곤 하는 우리 시대의 선구자적 지식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아직 봉인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과 가치를 경험케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가 큰 인물이 부재한 시대라고 믿고 있다. 그 한 원인이 우리 사회가 인물을 키우기보다는 클 만하면 흠집 드러내기를 통해 거꾸러뜨리는 사디즘(sadism)의 정치 관행에 익숙해 있다는 데 있다. 아마 그 어떤 위인이 살아온다 해도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존경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난 날을 잊고 현실적 이해 관계나 이미지 정치에 의해 거대한 ‘망각’ 속에 빠진다. 또한 망각을 부추기는 힘 또한 적지 않음을 우리는 최근 강도 높게 경험하고 있다.

조영래의 삶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이 같은 ‘망각’과 힘겹게 싸우는 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작지 않은 책무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이 아니었던가. 그 열정이, 한 시대의 ‘기억’을 한낱 권력 지향적 추문으로 만들려고 하는 최근의 폭력적 담론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열정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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