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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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적 생태주의자의 삶과 글쓰기

연구소 쪽지

최근 우리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의해 구축되어왔던 정치 관행이나 사회적 관계 양식이 전면적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현상을 여기저기서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현실은,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큰 인물’이 없고 다양한 욕망들만 무질서하게 분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와 정반대로 이제야 비로소 민주주의적 기율과 감각이 정치와 일상 모두에 철저하게 스며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시대를 ‘인물 부재’의 상황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에 지난 시대처럼 커다랗게 사표로서 기억할 만한 거물급 존재가 없다는 다소 비관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평등과 자율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본격적으로 높여가는 과정임을 이해하는 것과 등가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자에 들어 독서 시장에 불어닥치고 있는 ‘평전’ 양식의 유행과 어느 정도의 성공은, 우리 시대의 인물 부재 현상에 그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다양하고도 치밀한 한 시대의 재구를 통해 한 시대를 견인했던 원동력을 경험하고 그것을 새로운 시대에 적용하려는 유추적인 지적 욕구가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 듯싶다.

 

물론 이를 두고 한 시대에 대한 과거 지향적인 복고 취향으로 몰아붙이는 시각도 존재하겠지만, 평전 양식만이 가지는 실증적 비평적 시각이 우리에게 기억할 만한 가치들을 새삼 경험케 하는 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양식을 통해 종요로운 현재적 경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평전 문학은 한 시대에 대한 미련으로 귀착하는 퇴행적 양식이 아니라, 한 시대를 견인했던 힘을 역사적으로 되살림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망각 관행과 싸우는 현재 진행형의 양식이라 할 것이다.

 

미국의 주류 저널리즘에 의해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바 있는 환경 운동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에 대한 중후한 전기인 <레이첼 카슨 평전>(원제는 ‘Rachel Carson-Witness for Nature’) 역시, 이 같은 평전의 현재 진행형적 속성을 가장 전형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이채로운 성과라 할 것이다.

 

레이첼카슨 평전

 

자신의 책 <침묵의 봄>으로 전 세계적인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바 있는 레이첼 카슨은, 이 평전을 통해 ‘과학 분야에 대한 글을 대중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전달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고, 나아가 과학과 글쓰기를 결합하여 환경을 옹호하고 보존하는 작가로 적극 묘사된다.

 

환경 역사학자인 저자 린다 리어(Linda Lear)는, 레이첼 카슨이 생명체의 보전을 위해 ‘증언’의 삶을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이 이중의 ‘증언’이 이 평전에는 다양하고도 풍부한, 어찌 보면 지루할 정도의 세목들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작금의 생태적 위기를 예견하고 증언하였으며, 그 치유에 앞장섰던 한 예언자적 생태주의자의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역자에 의해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로 붙여졌다. 언뜻 보아 서로 대척적이기조차 한 ‘시인’과 ‘과학자’의 인상적인 결합은, 레이첼을 묘사하고 규정하는 가장 적실하고도 특징적인 장점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원고와 치밀한 조사 작업을 거쳐 나온 이 책은, 환경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일깨운 과학자로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 인류에게 심어준 시인으로서, 그리고 20세기가 가장 주목한 인물로서의 레이첼 카슨의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커다란 이념적 기획에 이르기까지를 추적한 전기 문학인 것이다.

 

저자는 “무려 10년에 이르는, 그 짧지 않은 세월을 조사와 집필에 쏟아부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책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카슨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녀에 관해 쓴 역량 있고 주의 깊으면서도 치우침 없는 전기가 필요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재구성하고 있는 레이첼의 구체적 삶은 어떤 것인가.

 

레이첼의 어머니는 결혼 생활에 커다란 염증을 느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딸인 레이첼에게 커다란 기대와 보상 심리를 안고 산다.

 

어머니는 레이첼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자연’에 대해서도 여러 경험과 사색을 같이 즐겼다. 때로 어린 레이첼이 숲에서 무언가를 잡아오거나 들고 오면 어머니는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로 갖다 놓으라고 가르치곤 했다.

 

이 ‘원래 있던 자리’라는 관념은 어린 레이첼에게 평생의 길잡이가 되어 그녀의 생태적 의식의 확연한 구심력이 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펜실베이니아 여대에 입학할 무렵 레이첼은 이미 뚜렷한 목표와 비범한 목적의식을 가진 진지한 학생이었다. 어릴 적 체험들은 그녀에게 세세한 것을 포착하는 관찰력과 예리함을 안겨주었고, 훗날 글에서 다룰, 가까이에 살고 있는 작고 평범한 존재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레이첼이 야외 생활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거기에서 늘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얻기 때문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레이첼은 자신의 전공으로 자연과학을 택한다. 그녀는 물리적인 가난 때문에 지난한 노력을 해야 했고, 소망하던 교사의 꿈도 접어들였다. 게다가 레이첼은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조카들마저 떠맡아 부양하였는데, 그런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위로하고 지켜준 것은 그가 평생을 통해 만나고 토론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던 주위의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우정과 사랑으로 레이첼의 삶의 동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배우자의 경제적 심리적 지원 없이는 감당하기 벅찬 수의 가족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에 수반되는 고독을 이해하고 자신의 비전과 임무에 대한 의식을 키워주고 지지해줄 누군가의 정서적 교감이었다.”라는 묘사 속에 그 사정의 일단이 숨어 있는데, 특별히 4H운동가이자 자연주의자였던 도로시 프리먼과 나눴던 동성애에 가까운 깊은 우정이나 추리소설을 썼던 마리 로델 등 여성 지식인들과의 교유는 이 책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은 이제 관례로 자리잡은, 크리스마스이브의 편지”였는데, 저자가 소개하는 레이첼이 도로시의 생일에 보낸 편지의 일절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제 삶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함께 하지 않은 세월을 떠올리면 이상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세월을 아쉬워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중년에, 아마도 가장 절실할 때 우리 둘에게 이다지도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우정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놀랍고 감사하게 여길 따름입니다. -레이첼 카슨

 

그 우정과 감사의 마음이 그녀를 올곧게 서게 하는 원천적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 펴낸 책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기억 속에 묻히게 된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펴낸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그녀를 ‘과학’과 ‘바다’라는 두 영역을 통합한 문제적 작가로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게 된다. 과학적 예리함과 문학적 심미성이 그녀가 다른 어떤 작가나 과학자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그녀는 바다에서, 새의 노랫소리에서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발견했다. 이러한 경이와 신비를 위해,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보전을 위해 나선 그녀의 증언은 끝내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고야 말았다.”라고 저자는 묘사하고 있는데, 이처럼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몸이 다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현장 조사의 힘으로 그는 ‘글쓰는 과학자’의 뚜렷한 상(像)을 대중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바다에 관한 책을 읽어왔고, 바다를 꿈꾸어왔고,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곤 했었다. 그녀가 쓴 시의 은유들,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의 이미지들에는 하나같이 바다의 편린을 담고 있었다. ‘눈부신 비전’은 처음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었다. 4년 전 작가가 되려 했을 때와 똑같이 굳은 결의로 이제 레이첼은 과학자가 되려 하고 있었다.”라는 역설의 묘사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로서의 이력은 애초의 예측대로 학문적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다가 삶의 목적에 단서가 되어주리라는 비전은 여전히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해양학은 그녀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었고, 지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풍요롭고 신비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라는 저자의 전언은 레이첼의 가장 중요한 마음의 수심을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다.

 

 

레이첼 카슨

레이첼 카슨

 

이러한 저자의 부지런하고도 치밀한 섭렵 의지는 훗날 레이첼이 디디티 반대 운동에 헌신하고 생태적 위기 상황을 온 세상에 증언하고 고발하기까지 삶으로 이어지면서 그녀의 삶을 완성해간다.

 

저자는 수백 명과의 인터뷰, 편지, 일기 등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쓰고 있는데, “카슨이 보기에 자연주의적인 글쓰기와 대중적인 과학 글쓰기는 인간을 구제하는 매개 수단이었다. 자연 세계의 신비와 경이로움에 다가가려는 시도는,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녀의 과학적 지식과 작가적 역량은 이제 “미래를 위한 더 나은 문명을 지향”하는 임무와 결합되기 시작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저자의 핵심적 전언을 간취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생명들에 대한 가없는 애정을 바탕으로 레이첼 카슨은, 과학자의 눈으로 찾아낸 자연의 경이로움을 시인의 언어로 들려주었다.

 

결국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라는 작가이자 생태주의자이자 과학자였던 여성의 삶을 풍부한 디테일로 재구성한 눈부신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역자는 레이첼 카슨의 삶을 “과학 분야에 대한 글을 대중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작가로서의 삶”이었다고 정리하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레이첼 카슨이 원래부터 활동적인 기질의 사람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생명의 숨결에 귀 기울이고 그 은밀한 속삭임과 즐거운 놀이들을 글로 풀어낸 수줍음 많은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이첼이 어린 시절에 자연을 가까이 하게 된 연원으로부터, 문학을 전공했다가 과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과학의 세계에 빠져드는 과정, 해양 생물학과 만나고 자연 보호 운동을 시작하는 과정 등을 묘사한 것은 ‘예언자적 생태주의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저자는 책의 모두에서 레이첼이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는 증언의 삶을 살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그 증언의 현장을 직접 묘사하고 나서, 그 ‘용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역추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묘사의 한 부분이다.

 

카슨은 침묵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메인 주 해안의 조수 웅덩이와 신비스러운 동굴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아무리 작은 피조물일지라도 무자비한 해양의 조류에 맞서 비록 덧없을망정 집요하게 삶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한밤중 바위투성이 해변 위로 기어오르는 고독한 게, 너무나 가녀리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는 날쌘 그 게들의 인상적인 광경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곤 했다. 그 모든 생명체들이 위험에 빠지고, 급기야 인간의 삶마저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녀는 더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관망할 수 없었다. 그녀를 상원 청문회장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 사명감이었다.

 

그녀의 삶의 마지막 부분에 있었던 이 법정 증언의 위대한 순간이야말로 그녀를 우리 시대에 우뚝 재생시키고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을 훼손시키고 위협하는 근원적인 위기에 이처럼 용기 있게 증언하고 치유하려는 그녀의 생태적 삶은, 그래서 철학과 예언이 빈곤한 우리 시대에 충실하게 대안적 사유와 행동 방식을 시사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삶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시대의 이슈가 점화된 순간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 점화된 불이 인류의 내면을 밝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갱신과 극복의 과정이 있었는가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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