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협동조합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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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인문학협동조합원이 되었나 / 강부원

연구소 쪽지

나는 왜 인문학협동조합원이 되었나

 

강부원



   ‘세월호 참사라는 끔찍한 비극은 새삼 내가 국가의 엄연한 구성원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예비군이나 민방위, 주민세와 소득세와 같은 강제적 외력에 복종하는 이외에는 개인의 자격과 가치를 최대화하여 살고자 애써왔다. 나름의 경계선을 긋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위력은 임의로 설치해 놓은 마음의 경계를 너무 쉽게 침범한다. 변화를 바라는 정치적 태도를 가졌을지라도 생활의 안정을 희구하는 개인의 복잡한 내면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 속수무책이다.

   나라 전체가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혼돈과 절망 속에서 얼른 뛰쳐나오기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 비참과 곤혹들에 편승해 나태를 생활화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라 자위하기도 한다. 무참한 수준의 유착과 비리가 드러날수록, 무능하며 뻔뻔하기까지 한 윗대가리들의 모습이 날 것으로 까발려질수록 수렁은 더 깊고 어두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훨훨 타오르는 횃불이 되게 할 선동능력마저 없다. 사태 뒤에 숨어 겨우 살아가는 미개한 존재가 될 것만 같아 두렵다. 그러나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과정에 깊이 생각하는 일이 우리의 직업인 이상 어떤 사태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연구자의 숙명이자 사명이다.

    이제 대충 수습하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악랄한 수구의 문법이 지독하게 저주스럽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사태에 휩쓸려 모든 것을 내팽겨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때일수록 다르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차이는 효과적으로 분별되기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조금 덜 비겁하고, 약간 더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자기 태도를 조정한다. 섣부르게 단죄와 심판을 들먹이지 않고, 스스로 먼저 성찰하는 체 하며, 일상의 대열에 세련되게 복귀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게 될까봐 또 다시 두렵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우리 조합이 입은 피해가 상당하다. 몇 달을 애써 성사시킨 사업과 계획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마음 한편이 켕기지만 형편상 꼭 해야만 했던 정부 산하기관과 연계된 사업도 유야무야 되었고, 부러 찾아가며 협업을 자청했던 기업 강연도 연기되었다. 그나마 지속되기로 결정된 몇 건의 사업들마저 예산이 축소되고, 일정이 변경되었다. 먹을 것은 줄어들고 처리해야 할 일은 다시 늘어났다.

   조합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강의만 얻어가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검열하며 조심스럽게 지원했던 많은 조합원들도 낭패를 보았다. 세 시간짜리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며칠을 고생하던 노력도 제값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앞서 일을 만들었던 사람도 꼴이 우스워졌고, 뒤에서 발을 맞춰준 사람들도 겸연쩍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서로를 타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풀이 죽어버린 공교로운 상황이다. 원망보다 민망이 앞선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놓쳐버린 일들이 아깝고 속상하다. 갑작스럽게 맞아버린 참담한 평화불편한 휴식도 마뜩찮다. 국가적 재난과 고통 앞에 나의 이런 태도는 지극히 속되고 볼썽사납다. 차라리 나는 이런 이중적 태도가 우리 조합의 사정과 불안정 연구노동자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다소 과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인문학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원 과정생이거나 박사과정을 마친 뒤 시간강사 직을 견뎌내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소 안정적인 교원 지위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상당수 있다. 형편이 다르면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내가 조합의 선두에서 일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우리 조합원들의 대다수는 지나치게 금욕적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 수입을 가지고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간다. 그럼에도 일에 대한 욕심을 보이기보다 양보를 먼저 내민다. 물론 이런 태도를 순수한 덕성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출발선이 다르고, 여력의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또 제 전공과 제 분야 아닌 것에 대한 겸양을 오랜 연구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했을 것이다. 윤리 이전에 깜냥이 활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의 소지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어 뵌다. 조합원들이 인문학협동조합의 정체에 대해 각자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기대하는 바가 모두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직업적 연대로서 적절한 수입을 기대하며 조합 활동에 참여하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대학과 그 주변의 기형적 연구 환경의 척박한 풍토를 개선하고자하는 정치적 태도로서 조합의 일원으로 가담하기도 했다. 인문학협동조합이 한국사회의 비정상적인 인문학 장에서 모종의 건강한 움직임을 보여줄 것을 희망하며 출자금을 건네고 후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그저 한 발 걸쳐둔 채 정체모를 빚을 탕감하듯 월조합비를 납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는 인문학 연구를 둘러싼 저간의 사정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내 또래의 연구자들 중 몇 년 안에 당당히 정규직 교수 자리를 얻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망상과도 같은 그 꿈을 완전히 등져버린 사람 역시 별로 없다.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바로 이 막연한 낙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명민하게 사태의 방향을 직시해야 한다. 논문쓰기에 투신해 자기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거나, 밖을 좀 더 탐색해 다른 길을 택하는 방법도 있다.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뒤에도 어찌할 수 없을 때에는 비정상적 관행에 몸을 슬쩍 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로 추려낼 수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더군다나 생활은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거나, 결혼을 해, 덜컥 아이라도 낳게 되면 생활은 생계가 되고,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해서 논문과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훌륭한 연구자가 되기에 어쩌면 우리는 거의 모두 자격미달이다. 더 비참한 것은 이런 표준적인 생활을 거의 포기하고 공부에 몰두하는 동료들마저 스스로 희망이 없다고,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황송하게도 국가의 인문학 연구 지원 사업에 당첨되지 않고서는 별 도리가 없다. 여기서도 특정 자격이 요구되고 치열한 경쟁은 필수적이다. 자격이 없어, 능력이 미치지 못해, 혹은 운이 나빠 국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난망하게도 강의글쓰기는 우리 생활을 지탱하는 두 축이 될 수밖에 없다. 직업 혹은 생계라 부르기에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도 사실이 그러한 경우가 허다하다.

   강의를 얻는 과정은 가히 모욕적이다. 학기 시작 전에 먼저 연락이 오는 성은을 기다려야 하거나, 강사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과 힘 혹은 연줄이 있어야 한다. 더욱 최악인 것은 아직 미숙하고 설익은 연구자에게 그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가 될 공산이 높다. 겨우 강의를 얻어낸다 하더라도 첩첩산중이다. 겨우 한 달에 기십만 원을 받기위해 몇 달을 준비해 수업을 진행해야 하고 학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전시하고 갱신해야 한다. ‘글값역시 참담하다. 몇날 며칠을 할애해 글을 쓰면 오만 원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실어주는 것으로 영광으로 삼아야 할 때도 있다. 어쩌다 기십 만원을 받기도 하는데 제대로 정산되는 경우는 손에 꼽힐 지경이다. 제 돈을 내고 출판을 해야 하거나, 인세를 대신해 제가 쓴 책을 제가 사야 하는 경우도 많다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밖으로혹은 포스트 대학을 겨냥하는 인문학협동조합은 도전이고 결단일 수밖에 없다. 조합이라는 형식은 연구 노동과 활동에 정당한 가치를 보전해 주자는 목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사야 각기 다르겠지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지금 대학 밖의 다양한 장소에서 시민들과 만나고(강좌개발위원회), 농촌 구성원들과 협력하기도 하며(도농위원회), 재기발랄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고(미디어개발위원회), 인문학 정책과 연구 환경의 모순과 문제점을 파헤치기도 한다(연구환경정책위원회). 물론 조합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도 하며 서로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생활의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 함께 모여 소질을 계발하고 신나게 놀기도 한다(교육복지위원회).

   나름 구색을 갖추고 활동하고 있지만 신경 써야 할 대목도 많고, 잘 안 되는 것도 적지 않다. 몇몇 열성분자들의 힘에 기대 조합의 사업들을 지탱해 나가는 측면이 없다고 말하면 그것도 거짓이다. 그것은 또 조합원의 위계 문제로 작동해 조합원 사이의 간극을 더욱 넓혀나가는 부작용이 되기도 한다. 인문학이라는 보통명사를 고유명화 하기에는 매우 조악할 정도로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특정 학교와 소수 전공이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조합이 앞으로 더 개방돼야 하고 북적여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또 이 와중에 진짜 인문학가짜 인문학도 구별해야 하고, 내가 선택하고 몸담을 일의 정치성과 사회성 역시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 이미 자리를 보전한 선생들과 영민한 동료들의 애매한 시선도 상대해야 한다.

   때때로 너무나 고단하고 피로해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지만, 내가 인문학협동조합을 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명하다. 나는 고색창연한 운동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 위기와 절망 앞에서 그 거대한 흐름에 속절없이 몸을 내맡기기보다 어떻게든 한 번 더 기회를 만들고, 다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려 한다. 인문학협동조합은 그 중 한 방편이고 또 중요한 거점이다. 뜻이 모여 힘이 되고, 힘이 모이면 변화한다. 나는 이 간명한 진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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