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협동조합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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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연구노동자의 삶과 실천, 그리고 협동조합 -삶과 앎, 노동의 일치를 위해 / 최병구

연구소 쪽지

'문학의 아침' 목요일 코너로 <인문학협동조합 늬우스>가 신설되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인문학협동조합의 여러 소식과 활동을 연구소 회원분들께 소개할 예정이며, 이를 계기로 민족문학사연구소와 인문학협동조합 간의 협업관계가 지속-발전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회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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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연구노동자의 삶과 실천, 그리고 협동조합

-삶과 앎, 노동의 일치를 위해

최병구

 

1. 대학제도 안에서의 삶과 불안

 

20132.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3월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니, 정확히 7년 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친 것이다. 7년의 시간 동안 현대문학 분과 간사를 시작으로 학생회장, 조교까지 학과의 거의 모든 일을 했다. 연구프로젝트의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박사과정 때는 서울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한 마디로 그 누구보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살아 왔다. 석사 과정을 다닐 때는 그저 공부가 재미있었고, 박사 과정에 진학해서는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지만, 열심히, 잘만 하면 뒷일은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02월 박사수료생의 신분이 되고, 나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우선 연구자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학교의 정책상 박사학위 미소지자는 원천적으로 강의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끌어 줄 다른 학교의 선배가 있었던 상황도 아니었기에, 내가 했던 공부를 활용하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두 번째로 박사학위논문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연구공간이 없었다. 학교에서 대학원생들을 위해 마련해 준 연구실은 이미 후배들로 넘쳐나고 있었으며, 매번 도서관에 노트북과 많은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아를 투여할 수 있는 연구강의모두가 불가능한 상황은, 지난 시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글의 서두에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한 이유는 인문학 연구자의 식상한 어려움과 고통을 하소연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서울 시내의 이름 있는 사립대학을 졸업한 나의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 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수료하고 한 학기가 지나서 운 좋게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으며, 대학 바깥의 연구소에서 연구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자마자 손쉽게 강의와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연구자도 있지만, 이 모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로지 인문학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내가 어느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느냐에 따라 연구자로서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 제도가 연구()를 결정한다. 오늘날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 명제에는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과 기업, 그리고 국가의 삼각구도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인문학 연구 문화와 제도가 나의 미래를 이미 결정해버렸다는 사실, 나아가 나의 신체와 정신이 그러한 제도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좀 의아했다. ‘인문학 위기에 대한 진단과 성찰이 시작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한 것일까. 학문후속세대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화가 일상이 되어 버린 현재를 돌아볼 때, 그 동안 이루어진 인문학 위기 선언과 이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들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물어보자. 교수들의 주도로 반복되는 인문학 선언문이 대체 인문학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2006년 인문학 위기 선언 이후, 대학 바깥에서 인문학 강좌가 붐을 이루었으며, 기업들은 앞 다투어 인문학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이 인문학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글은 본격적으로 불안정 연구노동자의 삶을 시작한 나의 관점에서, 지극히 편향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으로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사태를 해결하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진단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본의 내부에 인문학을 더욱 뿌리내리게 만들었다. 따라서 인문학이라는 추상적 보편의 논리를 반복하기보다는 편향적 입장에서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글의 관점이 모든 불안정 연구노동자들을 포괄한다고 하기 어렵다. 앞서도 언급한 바, 나의 환경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수많은 연구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로부터 인문학의 위기와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이 글은 인문학협동조합<연구환경 정책위원회>에서 지난 6개월 동안 함께 읽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자료를 검토할수록 복잡하고 지난한 문제의 심각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분석보다는 사태를 돌파 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인문학협동조합이라는 출발점에 서게 되기까지 나의 경험과 문제의식의 일부만을 다룬,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에 불과할 뿐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정 연구노동자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함께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2. 노동하는 영혼, 대학의 88만원 세대

 

무한경쟁의 체제-BK21,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오늘날 인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제도(system)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직업으로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안의 타협점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를 규율하는 제도는 학진체제이다. 19991BK사업과 함께 시작한 학진 체제는 불과 10년 남짓 한 시간에 연구자들의 신체를 장악해버렸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신체는 생산시스템에 규율되었지만, 영혼(정신)은 유보되거나 방치되었다. 신체가 지배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이 힘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진 체제 아래서 신체와 영혼은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밀착되어 있다. 시스템에 정복된 영혼은 불안을 느끼고 신체를 옭아맨다. 연구자로서 살아남는 다는 것은 체제로부터 떨어져나가서는 안 된다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의 신체를 규율하는 과정이다. 이는 생존()과 직결되는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그렇게 우리는 논문을 생산하고 국가가 요구하는 연구계획서를 작성한다.

학진 체제가 만들어 낸 장단점을 정리하는 것은 별도의 지면을 필요로 하는 광대한 작업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불안정 연구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과 관련된 것으로 논의의 초점을 한정하기로 한다. ‘선택과 집중1999BK사업의 제1원칙으로 처음 등장한 이후,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BK사업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당시 제2원칙으로 제시된 것은 창의적 학문후속세대 양성이었다. 한 마디로 선택된 대학원생들만을 후속세대로 양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석박사과정 시기부터 경쟁을 조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 진다.

BK사업은 참여대학원생에게 매달 일정한 금액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학생 선택의 기준도 문제이지만, 어떤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더라도 학생들 사이의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문제는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경쟁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대학원 중심대학 육성이라는 BK사업의 목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사실이다. BK사업이 대학원 규모를 중시하여 사업단을 선정하고 평가지표에 이를 반영하는 것에 맞추어, 각 대학들은 대학원 신입생을 무차별적으로 뽑는다. 우리는 20명이 넘는 대학원 수업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선택된 대학원생들은 논문 생산의 정치를 일찍부터 몸으로 익히게 된다. BK참여 대학원생으로서 발표하는 논문편수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로 인식되고, 이는 다시 으로 환산되어 지급된다. 이럴수록 인문학적 성찰과 반성의 글쓰기는 점점 요원한 일이 되어버린다. 오늘날 19991BK사업이 대학 입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책으로 시작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11년부터 실시되기 시작한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2BK평가 결과, 문제점으로 지적 된 대학원생 재정지원의 하나로 시행된 것이다.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그대로 이어 받아서 매년 박사과정 신입생을 선별하여 월 25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박사후연구원의 인건비와 동일한 규모의 지원이 박사과정생에게는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외형적으로 볼 때, 박사과정 2년 동안 안정적으로 학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다는 점은 환영할 만 한 일이다. 그러나 인문학 분야에서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이 세계수준의 우수 박사 양성 체제 구축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선정된 학생들은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기보다는 주변의 지인들에게만 조용히 이야기하는 광경은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고, 지원된 장학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둥, 고가의 전자기기를 샀다는 둥의 이야기는 재미처럼 회자되고 있다. 또한 대학 단위에서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선정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은 소수 대학 중심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학생 선택의 기준이 영어 실력이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BK21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대학에 진학하여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대학원에서 인문학 전공을 이수해야 하는 대학원생보다, BK21 사업이나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의 혜택을 받은 대학원생의 연구역량이 우수하다고 말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연구 환경은 선택받은 후자의 대학원생을 우수한 연구역량을 가진 존재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선택되지 못한 대학원생은 연구자로서 자기의 역량을 의심하며 자책하거나 제도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의 역량이란 많은 경우 논문 편수이거나 영어 실력이다. 그럴수록 동료와 나를 비교하며 고립된다. 제도는 대학원생들의 내면을 장악하고 개별화된 존재로 고착시킨다. 이때 느끼는 외로움은 인문학, 혹은 글쓰기의 숙명으로 자위된다.

 

시간강사의 세대갈등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할 때가 되면 더 큰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시간강사를 둘러싼 문제는 오래되었고 그 만큼 풀기에 지난한 과제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시간강사의 연이은 죽음은 시간강사의 연구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2011년부터 시작된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1년에 1200만원을 지원함으로써, 미약하나마 시간강사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의 신청 자격이 박사학위소지자, ‘최근 2년 이내 시간강사경력이 있는 자라고 명시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업은 박사수료생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박사수료생과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이 대학에서 강의를 맡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을 포함한다. 강의를 받기 위해 학교나 학회에서 인적네트워크를 잘 쌓아야 함은 물론이고 학교마다 공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강사-풀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모교 출신 선배가 전국의 각 대학에 전임교수로 나가 있는 연구자들의 경우이다. 이 경우 박사수료생, 혹은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후속세대가 강의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2006인문학의 위기선언 이후 급격하게 확장된 교양교육, 특히 글쓰기 강좌로 인해 ()문학 전공자들의 밥그릇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교의 사정에 따라 진입장벽의 높이는 다르다.

따라서 대부분의 박사과정 수료생들은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3~4년의 시간을 그야말로 버티는수밖에는 없다. 연구자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회의하며 불안감 속에서 박사학위논문은 미루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자신의 학문적 아젠다를 구상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준비해야 할 시기는 그렇게 지나가 버린다. 당연히 현실적으로 논문 편수는 그다지 쌓을 시간이 없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2012년 말 극심한 반대로 1년 유예되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강사법의 핵심은 9학점 이상 강의를 맡는 시간강사들에게 대학에서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이 법의 핵심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부의 강사들에게 교원으로서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학들은 강의전담교수’, ‘겸임교수등 비정규직 교수 등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사수료생의 신분에서 강의경력을 쌓지 못하고, 게다가 논문 편수도 없는 연구자들은 어느 곳 하나 원서를 집어넣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글쓰기 강의전담의 필수요소인 강의경력조차 준비되지 못한 연구자들은 불안정한 연구노동자로 전락한다.

결국 선택과 집중의 원칙은 후속세대간의 갈등과 세대 간 갈등을 부채질하는 결정적인 원리이다. 학문장의 88만원 세대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다. 물론 선택된 일부 대학원생은 여유롭게 석박사과정을 마친 뒤, 충분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고 강의전담교수 자리를 쉽게 잡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되는 존재는 소수이다. 대다수 후속세대들은 이러한 시스템의 구조를 섬세하고 파악하지 못한 채, (비전임)교수가 되기 위한 몇 프로의 기대에 온 몸을 던진다. 불안과 자괴감에 몸을 떨면서도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자기의 무능함을 탓하며 밤을 새우며 연구 실적과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재의 체재는 세대 간 경쟁까지 유발시킨다. 이는 곧 밥그릇싸움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달려갈 우려가 크다.

선후배 동료 연구자를 적으로 상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 나의 영혼이 잠식당한 채 타율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이러한 인식을 공유한 연구자들이 모여 인문학협동조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3. 또 다른 공동체를 상상하며: 인문학협동조합의 사례를 중심으로

 

2, 인문학협동조합 출범을 위해 대학원생, 시간강사, 그리고 우리를 지원해주는 전임교수들이 처음으로 모였다. 그 후 5차에 걸친 준비모임과 발기인대회, 창립총회를 거쳐서 10월 말 현재. 설립등기를 앞두고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난 8개월의 시간동안 인문학자들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연이어 제출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기업화된 대학의 역사와 인문학 글쓰기의 문제, 학문후속세대의 어려움, 학진 체제에 대한 논의들이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체제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만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와중에 박사학위를 받은 어떤 연구자는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한 현실에 직면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소수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국문학 연구자들은 모임을 통해, 불안정 연구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한 바 있었다. 더 이상 실천하지 않고 개탄만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낀 국문학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인문학협동조합의 출범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일단 강사법의 시행으로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결정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박사학위 미소지자였던 일부 조합원들은 2013년도 강의배정에서 제외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강사법의 문제는 실천의 계기였을 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불안과 분노가 협동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을 내 손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음은 창립 선언문의 일부이다.

 

인문학은 삶과 앎, 노동을 만나게 하는 힘입니다.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만나고 대화하는 실천들이야말로 인문학의 본질입니다.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모색하려는 생활인이라면 누구든 인문학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인문학은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자본의 확대만 꾀하는 체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을 비판해온 그간의 논담에서 뼈저리게 확인한 것은 실천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우리 인문학협동조합은 공부와 삶의 불일치를 협동적 활동으로써 극복하고, 시민들과 인문학의 공유를 통해 서로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고, 인문학자와 인문학 공간들의 네트워크가 되고 싶습니다.

 

연구자로서 나의 삶, 즉 연구노동자로서의 삶과 인문학적 앎의 불일치는 점점 비대해져 간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처절하게 지적된 바와 같이, 그것에는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의 기업화와 연구자들을 규율하는 국가제도가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성찰과 비판은 대학의 ()전임교수들에 의해서만 발화되는 것일까. 다시 말해 후속세대는 왜, 늘 불안정한 상태를 토로만 하는 존재로 등장할까?

여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한계이다. 대학에 자기의 터전을 잡고 있는 이상 대학에 대한 비판과 그 외부를 상상하고, 무엇보다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 후속세대의 경우에는 연구자의 이러한 기본적인 한계와 함께 제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제도의 한 축을 이루는 지도교수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세 번째는 지금 당장만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네 번째는 전선 구축의 어려움이다. 과거 대학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시기에는 비교적 적과 동지를 구분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지금의 후속세대들은 나의 적이 누구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 글의 관심사는 세 번째와 네 번째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가 교수가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동료는 없다. 물론 교수를 꿈꾸지만 그것은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되물어봐야 하는 것은 내가 공부하는 인문학의 가치와 지향이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삶과 앎, 노동의 공생을 꿈꾼다. ‘인문학협동조합이 결합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대학 내부에서만 생산되고 버려지는 인문학을 넘어서 대중들과 호흡하고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인문학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긴요하게 요청되는 것은 나의 글을 동료조차 읽지 않는다는 자조가 아니라 모두가 협동하며 기존의 제도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인문학을 기획하고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재로서 기능하며 더 나은 앎과 삶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연구노동의 가치에 대한 대가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최근 강사법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재의 제도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으로 인문학협동조합의 <연구환경 정책위원회>, 2000년 이후 대학제도의 변화에 따른 연구 환경의 구체적인 현실을 조사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작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수많은 불안정 연구노동자들의 지속적인 경제활동과 그에 맞는 합리적인 보수를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창출기획하고자 한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인적물적인 면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젊은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조직이라 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으로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 혹은 조직들과 연합하며 천천히 나아가고자 한다. 비단 연구자 집단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인문학의 가치에 공감하는 그 누구와도 연대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자기모순적인 사태를 직시하고 연합하는 일이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올해 논문 편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대학 내부에서 자본에 종속당한 신체를 뒤바꾸기란 쉽지 않다. 더 솔직히 말해, 대학 바깥으로 나가서 실천가가 될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그럼에도 대학에 속한 연구자로서의 자기모순과 마주하며, 대학의 안팎을 매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지속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하는 연구와 삶의 일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 변명하면서 말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 2013년 하반기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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