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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의 <부산의 바깥> 11 : 죽림동 - 육지 위에 섬

mazzang 쪽지  

 

 

 

죽림동 - 육지 위에 섬

 

 

 

 

 

 

金 飛

 

 

 

 

 

 

 

 

 

 

   김해시청 바로 아래 자리한 죽림동이라는 마을은 흙빛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 같다. 언제나 국경 가까이에 흩어져야 했던 섬들의 운명처럼, 그곳은 부산이라는 지명을 지니고 있었지만 김해가 지척이기도 하다. 지도 위에서 살펴보니 네모나게 잘려진 평원 위에 다섯 개의 섬들은 낙동강을 끌어안으며 옹기종기 모였다.

이번에도 구포시장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마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 ‘분도증사도니 섬의 이름과 꼭 닮은 정류장들은 금세 먼지 가득한 평원을 가르며 바다를 드러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잘 닦인 넓은 도로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부산의 강동동 쪽으로 뻗은 다리는 어떤 무게라도 실어 나를 수 있을 만큼 우람했고, 보이지 않는 너머에 흐르고 있을 낙동강은 물결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바다의 섬에 사는 사람들에겐 섬사람 특유의 우직함이 있다고 하는데, 육지의 섬에 사는 이들에겐 어떤 힘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지. 혹시 나의 생이 알지 못하는 활력으로, 바다가 사라진 육지에도 낚싯대를 드리워 매일 펄떡이는 생명을 길어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바다 위를 걷는 듯, 나는 그렇게 천천히 도로를 가로질러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낡아 희미해진 간판과 널따랗게 잘 닦인 도로가 어색하게 뒤엉켜 어쩐지 첫인상은 불편했는데, 골목에 들어서니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의자가 나를 반겼다. 어느 집에선지 담장 너머까지 뻗어 나온 상록수는 머리 위로 물결치듯 일렁였고, 하나가 아니라 둘이 함께 나란히 기댄 작은 의자들은 혼자 온 내게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의자에 앉지 않고 의자를 마주 본 채로, 나는 한참이나 그렇게 쪼그려앉아 있었다. 담장 너머에선 익숙한 트로트 가락이 넘실대며 흘러나왔고 의자 위에서 흔들흔들 몸을 들썩이는 누군가를 나는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기시감이 떠올랐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니 뒷짐을 진 할머님 한 분이 나타났고, 조용히 인사를 건네니 온화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섬사람의 우직함은 아니었는데, 낯선 사람을 대하는 그 미소가 참으로 넉넉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펄떡이는 생활의 힘이었는데, 주름진 미소 하나 만으로 금세 그곳의 정경은 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디에서든 그렇게 인사를 드릴 때마다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건네받았던 것 같다. ‘낯선 사람이란 말의 불편함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 뿐, 어쩌면 지금도 너무 많은 이들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람으로 걷고 있는 내 허약한 몸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깃발이 펄럭이는 골목 끝으로 할머님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섰다. ‘낯섦은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아니며, ‘사람도 결국 그렇게 나와 닮은 누군가일 것이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나는 자꾸 어딘가로 올라서고 있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을 오르니, 마을 한가운데 등대처럼 솟은 것이 보였다. 굴뚝이었다. 사정없이 타오르는 것들을 제 몸으로 보듬어 날마다 뜨거워졌던 시간을 기억하는지, 찌르듯 솟은 그것은 온기의 때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을 홀로 견디며 얼마나 오래도록 그곳에 그렇게 버티고 섰던 건지.

더 이상 아무것도 태우지 못하는 굴뚝은 차갑게 식었지만, 나는 그 위에 깃발이라도 걸어주고 싶었다. 더 이상 연기를 뿜거나 뜨겁게 타오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검댕과 흙먼지로 뒤덮인 고독한 흉터는 그 어떤 문명의 화려함보다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쳐야 할 것 같았다. 당신의 뜨거움을, 당신의 펄럭임을, 당신의 외로움을, 우리 알고 있다고.

 

 

 

 

 

 

 

 

 

 

   그렇게 한참을 굴뚝 아래 앉아있다가 골목을 따라 더 위로 오르니, 금세 인가는 사라져버렸다. 마을 끄트머리에 나와 앉은 오래된 TV 하나는 길을 막은 불량배처럼 건들대는 듯했다. 가볍게 그것을 뛰어넘어 수풀이 우거진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나는 어느새 높다란 나무들이 우거지고 키가 큰 대나무들이 사방을 가로막은 산 속에 와 있었다. 그 너머에 김해 죽도 왜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곳을 등진 채 숲 속으로 난 길로 발길을 옮겼다.

   내가 걷고 싶은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여기 이 길이며,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물리치고 승리한 영웅이 아니라 무기력하고 소심한 나를 닮은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밭이랑으로 난 좁은 길을 가로질러, 나는 높이 솟은 대나무 담장을 따라 걸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내 곁으로, 한껏 몸을 세운 청청한 대나무 줄기들이 따가운 오후 햇살을 산산이 부수어내고 있었다. 눈부신 세상의 열기를 거역하는 대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너무 작은 절이 나타났고, 나무 담장을 다듬던 주민 한 분이 나타났고, 다시 또 잘 닦인 도로가 나타났지만, 나는 널따란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다시 마을 속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일어서지 못한 누군가를 내던진 두 개의 신발이 수풀 속에 드러누웠고, 발길질 같은 신발의 몸짓을 피해 걷다가 나는 그만 휘적거리며 발을 헛딛고 말았다. 발에 걸려 넘어지듯 나는 주저앉았고, 내 발목은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우린 어차피 그렇게 걸려 넘어지고 말지.

사람들 속에서 더욱 고독해지는 여기,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거기. 그래도 다시 또 일어서야 하지, 걸어가야 하지.

 

   절룩거리며 나는 작은 공원을 지나,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만든 계단은 높낮이가 제멋대로였고 부은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잔뜩 몸을 낮춘 가로등이 허술한 담장에 매달려 나를 내려봤고, 우렁찬 개의 울음소리가 야유하듯 쩌렁쩌렁 울렸다. 한 쪽 다리를 끌며, 허약하게 무너져내린 다짐들을 끌어안으며, 나는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인사하듯 나를 반기던 바로 그 의자 두 개.

 

 

 

 

 

 

 

 

 

   나는 더 이상 서있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는데, 나는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새하얀 비행운을 그리며 무언가 날아갔고 담장 너머에선 노랫가락조차 들려오지 않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다. 통증 때문이었다.

 

   갑자기, 몹시도 사람이 그리웠다.

 

   쪼그려앉아 나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텅 빈 내 곁에 와 앉을 사람이.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 사람이.

 

 

사진: iPhone 4S © 김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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