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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의 <부산의 바깥> 07 : 괘법동-모두가 여행자들

mazzang 쪽지  

 

 

 

괘법동-모두가 여행자들

 

 

金 飛

 

 

 

  도시에 이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부산에 가 닿는 길도 여럿이다. 아무리 많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부산에 가 닿겠지만, 그 모든 길들은 서로 다른 표정으로 우리들을 안내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목적지는 부산이지만, 우리가 떠나온 여행으로 가 닿고자하는 곳은 부산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쳐버린 길 위에, 지금 걷고 있는 이 걸음 아래, 내일 모두가 헤매게 될 어딘가에, 이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행을 시작했지만, 이것은 목적지에 가 닿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떠났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여행이며, 길을 잃었다면 여행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괘법동은 노포동과 함께 부산으로 들어오는 관문들 중 하나이다. 노포동에는 노포버스터미널이, 괘법동에는 사상버스터미널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괘법동에는 김해 쪽으로 이어진 사상 경전철 역에 지하철역은 물론이고 기차역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부산의 입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그곳을 목적지로 정해놓고도, 그러나 나는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이 작업을 통해 더듬게 될 '소외'라는 의미와 가장 동떨어져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을 꾸리며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소외란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있는 분주함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소외가 때로는 더욱 아프게 사무친다.

 

  소외는 내가 없는 곳에 있으며,

  또한 내가 지나쳐버린 곳에 있다.

 

  이번에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지인과 함께였다. 그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이었으며, 내게는 지금도 여전히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에 또 다른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으니, 그래서 나는 마치 여행자의 안내라도 받는 듯 마음이 설레었다.

  우리는 사상 기차역 뒤편을 목적지로 정해놓고, 경전철 역 앞에서 만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자동차들로 북적이던 광장의 소음은, 골목에 접어들어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여전히 분주한 광장의 풍경이 골목의 끄트머리에 생생했는데, 이미 나는 다른 세계 안에 서 있었다. 그곳과 여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드리운 것만 같았다. 단지 가벼운 몇 걸음만으로도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벽. 도로 위 빗물 웅덩이 속에 고인 조각난 마을 풍경은 그러한 나의 판타지를 증명해주는 듯했다.

 

 

 

 

 

 

  골목에 들어서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놀라운 광경은 계속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굴이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것만 같은 삼각형의 낮은 굴은 무거운 신호등을 이고 수줍게 드러났다. 빨간 불이 켜진 굴속에, 그리고 '사람은 출입금지' 라는 푯말을 단 굴 속에 겁 없이 들어서며, 나는 탄성을 질렀다. 여기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가 먼저 앞서 걸었는데, 굴속에서 울려 퍼지는 내 탄성이 신기해 내 걸음은 자꾸 느려졌다.

 

 

 

 

 

 

  굴을 나오니 머리 위에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행자인 그는 잠시 동안 기차소리를 듣고 서 있었다. 그 소리가 좋다고 말했다. 오래도록 그 소리가 그리웠다고. 그 기차가 가 닿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그 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우리는 작은 굴이 떠받치고 있던 철로를 따라 걸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개가 우리 뒤를 쫓아왔고, 흰 러닝셔츠를 입은 마을 분이 개를 따라 나왔다. 커다란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를 보고 그는 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웃으며 '.' 하고 말았다. 반가운 개의 꼬리짓만으로 내 대답은 이미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괘법동의 끄트머리인 능인사 쪽으로 걷는데, 길은 자꾸 산 쪽으로 올라갔다. 조금씩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드니, 또 다시 마술처럼 다른 모양의 굴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조금 더 높고 넓은 굴이었다. 여전히 신호등을 머리에 인 채였다. 오고 가는 자동차를 살피며 굴을 지나가니, 이번에는 마을이 아니라 온통 나무들뿐인 산자락이 펼쳐졌다. 그저 열 걸음 남짓한 굴을 지났을 뿐인데, 세상은 또 다시 온통 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어차피 하나로 이어진 세계였을 텐데, 작고 좁은 굴 하나를 지나서 나는 이미 다른 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큰 도로로 이어지는 능인사로 가던 길을 되돌아, 우리는 다시 굴을 지나 마을 쪽으로 향했다. 지척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을은 고요했다. 골목으로 올라가는 계단 끄트머리에 작은 석불을 따라 오르니, 뒤에서 누군가 따라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머리를 높이 말아 올린 중년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그 위쪽 절에 기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으니,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대며 그녀는 정겨운 포즈를 취해주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 마을 쪽으로 걸었다. 겨우 굴 두 개를 지났고 환하게 웃어주는 주민들을 만났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운 소리를 토해내며 또 한 번 기차가 지나갔다. 멀리서 광장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골목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난 밭을 일구는 노인 부부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무릎이 아픈지 할머니는 자주 무릎을 짚었고, 무심한 할아버지는 모른 척 가지런히 이랑을 내고 있었다. 동행과 나는 한참을 그 앞에서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씨를 뿌리고 키웠을 초록 채소들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또 다시 이랑을 내고 씨를 뿌리시는 구나. 지나온 시간만으로도 오늘이 버거우실 텐데, 또 다시 미래를 키우는 몸짓은 어떤 의미인 건지.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촬영에도 망가져버린 마을 한 가운데서 묵묵히 밭을 일구던 주민 한 분이 생각났다. 반갑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서 걸으며 나는 자꾸 고개가 꺾였다.

 

 

 

 

 

 

  인적이 사라져버린 도로를 벗어나 걷다가 또 다시 세 번째 굴을 만났을 때, 이미 내 머릿속은 몽롱해져 있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것만 같았다. 이번에 만난 굴은 너무 작았다. 그렇게 작은 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작고 낮은 굴이라고 하더라도 하다못해 서너 사람쯤은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보통인데, 그것은 정수리가 닿을락말락할 정도의 낮은 한 가운데로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것만 같은 크기였다. 나란히 걷지도 못하고 앞뒤로 걸어 굴속에 들어서니, '사람'이 아닌 한 '마리'가 된 것만 같았다. 결코 누구에게도 헤아려질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생물들처럼 우리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굴속을 걸었다. 천천히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멀리 우리가 들어선 굴의 입구가 허공 속에 매달려 있었다. 분명히 좀 전에 우리가 들어섰던 곳이었는데, 그곳은 그저 너무 멀고 아득하기만 했다.

 

  내 뒤에 걷고 있던 그는 돌아서서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보았다. 삶이라는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그는 너무 작아져버린 그곳을 보며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손톱만한 시간의 구멍은 여기까지 와버린 우리들에게 어떤 숨을 불어넣으려는 것일까. 몇 걸음 앞에 우리들을 맞이할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그대로 주저앉고만 싶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곳에 갇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나를 눕히고 싶은 어리석은 욕망은 자꾸만 내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작은 굴을 나와 다시 마을 속으로 접어들자,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더욱 분주하고 시끄러워졌다. 재건축이 지정된 상가 건물 셔터 위에 위험을 알리는 붉은 글자와 표식들은 선뜩했지만 우리는 묵묵히 그 앞을 지나쳐 갔다. 모퉁이 좌판에 모여 계신 주민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카메라를 들었다가 욕설과 다름없는 호통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또 다시 마을 안 쪽으로 골목을 거슬러 올라갔다.

시간을 가르치듯, 굴을 지날 때마다 다른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또 다시 우리 앞에 네 번째 굴이 나타났을 때, 이제 나는 설레지도, 두려워하지도, 그렇다고 그 앞에서 망설이거나 물러서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굴속을 지나갔다. 또 다시 다섯 번째 굴이 나타났고 굴 밖으로 휘어진 길은 가팔랐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없이 그 길을 걸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따라갔을 때, 모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의 언덕 위에 아이들은 맨발로 뛰고 구르며 마음껏 웃고 있었다. 차마 들어서지 못한 바깥에서, 나는 연신 '예쁘다, 예쁘다!' 중얼거렸다. 몇 개의 굴을 지나왔든 지나게 되든, 그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쉬어갈 수 있는 비현실적 시간이 우리 앞에 나타나주기를 바라면서.

 

  그 날 저녁, 그는 그의 여행을 떠났고

  나도 나의 여행으로 돌아왔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Thanks to 조덕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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