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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의 <부산의 바깥> 04 : 감만동-사람을 따라 길을 찾다

mazzang 쪽지  

 

사람을 따라 길을 찾다

 

 

金 飛

 

 

 

 

 

  부산의 남쪽에 위치한 감만동의 위성 지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감만동 고지대에 이원 맨션너머의 한 블록이 마치 섬처럼 도드라진다. 모든 다른 블록의 집들은 네모반듯하게 나뉘어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데, 그곳의 집들은 뒤엉켜 아무렇게나 서로의 어깨에 몸을 끼워 넣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붕의 모양 자체가 아예 다르다. 다른 곳의 집들엔 대부분 네모반듯한 옥상이 하늘로 열려있지만, 섬처럼 도드라진 그 블록의 집들은 시간의 때로 뒤덮인 낡은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세계 속에 또 다른 세계처럼 그 곳의 집들은 어떤 경계로부터 밀려났거나 혹은 물러서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동행과 함께여서, 우리는 이원 맨션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천천히 언덕 위로 걸어 올랐다. 언덕은 기어오르기라도 해야할 것처럼 경사가 깊었다. 유독 그 블록의 골목은 좁고 꼬불꼬불 이어졌는데, 그래서 모든 골목은 모퉁이로 가로막혀 그 너머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낡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담벼락은 그곳에 흘러간 시간이 조금은 달랐으리란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원래는 함께한 동행과 같이 골목을 돌며 사진을 담을 생각이었지만 애초부터 나란히 걸을 수 없는 골목은 우리들을 앞뒤로 걷게 했다. 번번이 눈앞을 가로막는 모퉁이 때문에 잠시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섰다가 고개를 들면 동행의 모습은 금세 어느 모퉁이 뒤로 사라져, 그마저도 가능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를 따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없음'이라고 적힌 글자는 무뚝뚝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디 있어요?' 집들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를 수는 없었다. 사연 많은 이야기라도 전하려는 듯 나는 조용히 속닥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 모퉁이 너머에서 그의 기척이 들리기라도 한 것 같아 쫓아가면 골목은 갑자기 끊겨버렸다.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와 그의 기척을 찾으려고 하면 나는 좀 전에 내가 들어섰던 모퉁이가 아닌 다른 곳에 서 있었다. 길은 많았는데,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사방으로 길은 열려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의 인기척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가 나를 부르기를 기다리면서, 속삭이듯 '어디 있어요?' 다시 또 그를 부르면서. 그가 없는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그렇게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어쩌면 서로 다른 시간의 모퉁이를 돌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서성거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서로를 찾아 돌아다니기만 하다간 또 다시 엇갈리고 말 것만 같아, 이 블록의 맨 위쪽 언덕 꼭대기 길목에서 만나도록 하자 그렇게 약속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니 비로소 무작위로 뻗은 골목들에 대한 조급함은 덜했다. 골목을 가로막으며 나타나는 모퉁이도, 갑작스럽게 끊겨버린 막다른 길 앞에서도 나는 훨씬 더 담담해졌다. 그리고 골목 곳곳의 풍경은 더욱 또렷하게 내게 다가왔다.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시멘트 담장 너머에 누군가의 필요로 가져다 놓았을 그릇과 컵이 나란했고, 펄럭이는 마른 이불은 마음껏 나부끼며 화려하고 웅장한 항구의 풍경을 감싸고 있었다. 거대한 시멘트 교각을 자랑하는 부산항대교를 푸르게 싹이 자란 작은 텃밭이 내려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토록 화려한 세계를 운반하는 튼튼한 대교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발아래 나란히 키를 키운 초록의 싹들이 나는 참 고마웠다.

 

 

 

 

 

 

 

 

 

 

 

 

 

 

 

 

  골목을 여러 번 거슬러 올라 거의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공용 화장실 건물이 나타났다. 요즘은 한 집에 두 개 혹은 세 개씩 자리한 것이 화장실이라는데, 인간의 평등함을 일깨우는 그곳마저 불평등하게 나뉘어진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니 옛 기억을 떠올리는 그곳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함께 사는 정을 키울 수 있으니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빤한 이야기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모두에게 잊혀진 시간의 쓸쓸한 바깥 풍경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아간다면 근사하게 석양이 지는 모습이라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여기에 사시는 분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을까? 얼마나 아름다우냐, 큰 소리로 웃으며 일상의 무게를 가볍게 털어버리고 계실까? 동행과 약속했던 골목 맨 위까지 올라가면서 자꾸 숨이 가빠왔다. 부실한 몸 탓인지 부대낀 마음 탓인지 발걸음은 자꾸 무거워졌다.

  마침내 블록의 맨 꼭대기 골목에 다다랐는데 어디에도 동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산 쪽으로 드리운 철제 담장을 고치고 있었을 뿐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느냐 물으니 그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이미 다시 골목을 가로질러 내려갔다고 했다. 그도 이렇게 나를 찾아 여기에서 서성거렸으며, 낮은 소리로 '어디 있어요?' 나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히 많은 길들을 헤매다가 우리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불러줄 사람이 없다면, 불러야할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그렇게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결국 올라갔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오는데 넓게 자리한 공터의 담벼락에 근사한 그림이 나를 배웅했다. 오렌지빛 석양이 항구 너머로 지는 풍경이었다. 외지의 예술가가 그려놓았을 그림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곳에 존재했을 가장 찬란했던 풍경의 기록이어서 나는 참 고마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말라 부탁이라도 하듯, 옛날 사진 한 장처럼 화려하고 근사하게 자리한 그 곳의 어느 저녁은 흐릿해져가는 그들의 현재를 위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올라갔던 골목을 다시 거슬러 내려오니,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불러주었던 고마운 사람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번쩍 들어주었고, 그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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