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박진영의 번역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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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엘리트 시인 임학수의 패착

문자 수선공



 

스물여덟 살의 임학수...... 경성제일고보와 경성제대 영문과를 나온 최고의 엘리트이자 신예 시인이요 여학교 풋내기 선생님 임학수......

임학수가 어쩌다 <황군위문 조선문단 사절>​에 끼게 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문단 중역급인 소설가 김동인, 비평가 박영희와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자면 경성제대 선배이자 문단과 출판계 중진이요 지도자나 다름없는 최재서의 대타라 해도 좋겠죠. 어차피 <황군위문작가단>의 주동자 가운데 하나가 최재서니까요. 그래도 시인이라는 자격이 필요했다면 또 다른 주동자 임화도 있건만 왜 하필 임학수냐고요.

하기야 전쟁 마당에 그런 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게다가 위문 사절 규모나 비용이나 위문품으로 보아도 그다지 성의 있는 완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못해 마련한 행사에 임화나 최재서 정도 어른이 그럼 내가 가리? 하면 할 수 없는 노릇인 거죠. 원래 세상사가 그런 거잖아요? 만사가 꼭 필연으로만 굴러 가는 건 아니죠.

좀 우스꽝스럽게 쓰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황군위문 조선문단 사절> 3인의 전선 위문은 시원찮은 요식 행위에 틀림없었습니다. 문단 대표랍시고 마지못해 나서기는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건 뭐, 참전은 아니고 종군도 못 되며, 그렇다고 최전선 시찰은커녕 제대로 된 위문이 될 리도 없는...... 그냥 고위 공무원 해외 연수입니다. 총독부나 군부 반응이 떨떠름했던 것은 당연지사. 그렇다고 국내 반응이 열렬해서 선전 선동에 써먹을 만한 것도 아니고......

중일전쟁의 최전선으로 떠난답시고 호들갑 떨 때에는 출정식 비스무레한 환송회도 열고 조센진구(조선신사)도 참배하고 플랫폼에서 사진도 찍었더랬습니다. 그다음부터야 별 관심이 없어졌죠. 돌아올 때에도 환영식은 했습니다. 플랫폼에서 사진도 한 장 박았습니다.

정작 문단의​ 환영 행사는 두 주일이나 지난 뒤인 5월 27일 토요일 저녁 6시 30분에 열렸습니다. 작가와 출판사 사장님들 30여 명이 시내 일급 요릿집 아서원에 모였습니다. 참석자가 벌써 반토막 났군요. 사회는 김기진, 김동환과 이하윤이 환영사를 맡았습니다. 처음 조직될 때 이광수가 얼굴 마담이 되고 최재서, 임화, 이태준이 앞장섰던 일에 비하면 역시 격이 낮아졌고요.

게다가 조선 문단을 대표하는 3인의 사절 중 하나인 김동인은 평양에 머물고 있다면서 참석도 못 했습니다. 딸랑 3명 갔는데 1명 빠지면 사진 안 나오죠.

진짜 문제는 얼마 뒤에 벌어졌습니다.

한 달도 못 채우고 봄날에 전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돌아온 위문...... ​그해 가을 임학수가 최재서의 인문사에서 《전선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20일 뒤에는 박영희도 박문서관에서 《전선 기행》을 냈고요. 그 무렵이라면 7월에 출판된 ​전선문학의 백미 《보리와 병정》이 석 달 만에 20판을 돌파하면서 선풍을 일으킨 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939년 9월과 10월에 중일전쟁을 대변하는 3대 전선문학이 완비된 셈이죠.

자, 김동인은 왜 빠졌냐...... 하면...... 몸이 아파서​......

한 달 동안이나 전선에 다녀왔으면 뭔가 써 내야 하지 않느냐는 압박에 김동인은 중도에 기절하는 바람에 기억을 몽땅 잃었다고 버텼습니다. 얼핏 봐도 상당히 비실비실한 상태의 중년 아저씨 김동인은 실제로 건강이 안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환영 모임에도 그래서 못 나왔던 것 같고요.

김동인이 그저 핑계를 대고 버틴 건지 실제로 몸이 아팠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저 3대 전쟁 기념 문학에서 빠진 것은 틀림없죠.

 

사실 3명의 문단 대표가 전선까지 다녀왔다면 뭔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마땅한 법이죠. 애초에 그러려고 조직된 ​위문단이니까요. 가장 충실한 보고서를 제출한 건 박영희의 기행문입니다. 그래도 시인으로 갔으니까 시로 화답하되 상당히 에둘러서 돌아간 건 임학수입니다. 끝까지 버티고 안 내놓은 건 김동인...... 이렇게 된 거죠.

아, 《보리와 병정》​이요? 일본인 히노 아시헤이의 《보리와 병정》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르타주입니다. 전선을 시찰하거나 위문한 게 아니라 실제로 종군한 기록으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죠. 그걸 한국어로 번역한 건 조선총독부 경무국 관료, 왕년의 도서과 검열관 니시무라 신타로입니다. 한국에서 신문이든 잡지든 책이든 팸플릿이든 찍어 내려면 이 양반 손 안 거치고는 불가능하죠. 이게 또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돼서 석 달 만에 20판을 돌파할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총탄 사이에서 헤매 본 적도 없고 전선 구경조차 며칠 해 보지 못한 박영희와 임학수의 전선문학은 《보리와 병정》의 실감이랄까 치열함과는 견줄 바가 아닙니다. 특히 시로 표현한 임학수의 경우에는 무진장 낭만화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일전쟁이건만 여전히 남의 나라 불구경......

그렇다 치더라도...... 자랑스레 완장을 찰 ​일은 결코 아니죠. 이미 전향으로, 친일로 욕을 먹을 만큼 먹은 박영희라면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직 젊은 임학수는 조금 더 버텼어야 마땅하죠. 정 안 되면 김동인처럼 앓는 시늉이라도 하든가...... 임화와 최재서를 비롯한 문단 선배들이 어련히 알아서 감싸 주지 않을라고요.

​젊은 시인이 친일 완장을 찬 게 불만스러워 하는 이야기는 아니올시다. 요컨대 임학수가 걸어온 그전의 경력이나 그 후에 밟아 간 행적을 보더라도 못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치명적인 패착이라는 말은 아마 임학수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할 말이 아닌가 싶어서요.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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