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박진영의 번역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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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안중근의 재구성 (1)─합이빈의 해주 청년 토마스

문자 수선공



 

지금부터 ​106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화요일 오전 9시 30분쯤... 합이빈(哈爾濱) 역 플랫폼에서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7발이 들어가 있는 브라우닝식 M1900 권총에서 6발이 발사되었고, 그중 3발이 표적에 명중했죠. ​나머지 1발을 쏘지 못한 청년이 러시아어로 부르짖었습니다. “까레야 우라(Корея ура)!”

 

북방의 하얼빈에서 한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러시아어로  “까레야 우라!”를 외친 청년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죠. 저격범은 해주 출신의 가톨릭교도 토마스, 서른 살 청년 안응칠.

 

안응칠의 암살 혹은 테러는 곧바로 전 세계로 타전되기 시작했고, ​이른바 안중근 정국이 펼쳐졌습니다. 한국에서 환호가 일어나고 일본 열도가 경악에 빠졌지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나 중국 따위도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유럽 대륙의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는 한바탕 난리법석이 일어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청일전쟁 승전국, 러일전쟁 승전국,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난 30년 동안 세 차례 전쟁을 일으키고 모두 승전을 거둔 제국의 노회한 정객이 쓰러졌으니 암만 백인종이라도 움찔할 만하죠. 벌써 델 만큼 데어 봤건만 다시 한 번 동아시아 지도가 바뀌고 태평양의 파도가 요동칠지도 모를 일......

현장 사진에서 5번으로 표시된 표적은 일본 초대 총리이자 추밀원 의장​이요 대한제국 초대 통감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 당시 68세. 저렇게 모자를 고쳐 쓴 지 몇 초 안 지나서 노인은 쓰러졌고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위쪽 첫 번째 사진​을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1년 전인 1908년 11월 1일에 열여덟 살 앳된 청년 최남선이 <소년>을 창간하면서 맨 앞에 권두 화보로 내건 사진 원판이올시다. [일본에 어(御)유학하옵시는 아(我) 황태자 전하와 태사(太師) 이등박문 공]입니다. 그러니까 모자 삐딱하게 쓴 저 노인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올습니다. http://bookgram.pe.kr/120105175525

 

위쪽 가운데 사진이 바로 저격범 안중근입니다. 안중근은 이듬해인 1910년 3월 26일 일본이 점령한 중국 땅 뤼순 감옥에서 식민지 신민이 아니라 대한제국 국민으로 처형당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다섯 달 뒤인 8월 29일에 한국은 식민지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10월 26일 의거부터 3월 26일 사형까지 다섯 달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이른바 안중근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안중근의 공판 전 과정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옥중에서 남긴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미완의 저술 <동양평화론>은 물론 글씨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물론 안중근이 남긴 글씨가 당대에 곧바도 공개된 것은 아니었는데, 수십여 점의 유묵이 뤼순 감옥의 일본인 간수와 통역을 통해 나중에 빛을 보았습니다. 자국의 초대 총리를 암살한 테러리스트 글씨나 사진을 쉽게 빼돌리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특히 공적이 큰 세 명의 일본인이 알려져 있는데 그들 각자는 식민지 시기 내내 안중근을 둘러싼 이런저런 에피소드에 끊임없이 휘말려 들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81452.html

어쨌거나 앞다퉈 글씨를 받았다는 말씀..... 그뿐이 아닙니다. 식민지로 떨어진 한국에서야 안중근​을 입에 올리기 어려웠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안중근의 사진을 넣은 엽서가 불티나게 팔려서 경찰이 단속하기도 했다는군요. 사진엽서를 꼭 일본에서만 사고팔리란 법은 없죠. 당연히 한국에서도 꽤 돌았을 겁니다.

안중근 노래​도 꽤 널리 불린 모양입니다. 미국에서야 말할 것도 없죠. 또 상하이에서는 안중근의 행적과 10월 26일의 역사적 장면을 무대에 올렸고, 조금 나중 일이기는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가 부인 덩잉차오를 만난 것도 안중근 연극을 연습하면서라 하는군요. 안중근 열기는 몽골, 베트남까지 퍼졌습니다.

 

예컨대 안중근의 재판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미국의 한인들이 제작, 배포한 엽서가 한 장 남아 있습니다. 위쪽 맨 오른쪽 사진인데, 안중근의 단지 도장은 색이 바래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안중근 사진이나 하얼빈 의거 관련 사진은 거의 일본에서 유행한 [흉악범 안중근] 관련 엽서죠. (그래서 이렇게 화질이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범죄자, 살인범 사진이라는 말인데...... 심지어 권총과 흉탄 사진까지....... 그렇다고 꼭 복수심에 불타 엽서를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아주 기묘한 심리 속에서 나온 산물이죠.

거참......​말하자면 안중근이 일으킨 한류 붐이라고 할 텐데..... 아마 복잡한 계보가 있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자세한 얘기는 제가 잘 알지 못하고...... 일단 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건 하얼빈 의거로부터 22년 뒤인 1931년의 일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양자로 들인 첫째아들 이토 히로쿠니 공작이 1931년 6월에 죽었습니다. 이토 히로쿠니가 1870년생이니까 안중근보다 아홉 살 위가 되는군요. 이런이런...... 이로 히로부미는 아들뻘에게 당했군요. 

그리고 이토 히로쿠니 공작의 둘째아들이 집을 나가 나고야의 아쓰타 신궁 안에서 나무에 목 매달아 자살한 것은 1931년 3월의 일입니다. 언론에서는 자살 동기를 밝힐 수 없다고 전하는군요.

사실 제가 시작하려는 이야기는......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과 손자가 한꺼번에 죽은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만.... 어쨌거나 1931년의 일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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