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박진영의 번역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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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엘리엇의 <황무지>를 번역한 영문학자 이인수

문자 수선공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읊은 엘리엇을 번역한 이인수는 대체 누구일까요?

이인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저도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주워​ 담은 이야기에 의존하겠습니다. 그래서 연도나 세부적인 대목은 거의 정확하지 않습니다. 상세한 기록은 나중에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건 발로 뛰어다니면서 유족을 만나고 오랫동안 서류를 뒤적거려야 해서......

런던 유학생 이인수

이인수는 1916년생으로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습니다. 보성전문학교를 마친 이인수는 1933년경에 영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보성전문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애니 블라인드 여사가 주선했다고 합니다. 이인수가 들어간 곳은 UCL 즉 런던 대학 영문과입니다.

영국 유학을 떠난 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전공도 잘 모르겠군요. 이걸 확인하려면 (1) 보성전문학교 즉 지금의 고려대 기록을 뒤지거나 (2) 런던 대학에 수소문하거나 (3) 유족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일단 좀 미뤄 둡니다. 다만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는 곧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인수가 영국에서 돌아온 것은 ​1940년 여름경입니다. 아마 대학원을 다니다 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이죠. 바야흐로 영미 귀축과 대일본 제국이 한판 붙는 판에 런던에 앉아서 한가롭게 영문학이나 공부할 만한 상황이 안 되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마운트유니언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던 설정식도 돌아와야 했죠. 아니, 쫓겨와야 했죠. 적성국 일본의 국민이니까요.

이인수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런던 대학의 교수진 가운데 한 사람은 레이먼드 윌슨 챔버(1874~1942) 교수입니다. 나이 차는 꽤 나지만 펨브로크 대학 톨킨(1892~1973) 교수의 친구로도 알려진 영문학자입니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톨킨.... 맞습니다.

고려대 영문학과의 이인수와 김종길

해방된 뒤 이인수는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합니다. 1946년 고려대 영문학과 창설 교수진 가운데 한 분인 거죠. 1948년에 경성제대 영문과 출신의 임학수, 이호근이 부임하고요. 또 건국 직후인 1948년 12월부터 1949년 7월까지 잠깐이지만 <The Seoul Times> 주필을 맡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이인수는 나이 서른의 젊은 영문학자였기 때문에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미처 그럴 틈도 없었죠. 제가 살펴본 바로는 해방기에 몇 편의 시 번역이 눈에 띄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바로 엘리엇의 <황무지>입니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1935년에 이미 시인 박용철이 번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만 번역되었더랬죠. 이인수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원작은 430여 행이 되는 장시이므로 한꺼번에 번역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인수가 <황무지​>를 번역한 것은 1948년 12월.... 발표된 것은 잡지 1949년 1월호입니다. 이인수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당시 고려대 영문학과 학생 김치규, 훗날의 시인 김종길이 사실상 공역이라 할 만큼 번역을 도왔습니다.

시인 김종길은 ​이인수보다 열 살 아래인 1926년생으로 경북 안동 출신입니다. 김종길은 원래 혜화전문학교 즉 지금의 동국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1947년 가을에 고려대 영문학과로 편입한 학생입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이인수 교수에게서 영문학을 배우기 위해...... 이건 김종길 시인을 비롯한 여럿의 회고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일화입니다. 이때 김종길은 막 등단한 때였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탄생한 번역이 바로 <황무지>인 겁니다.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이듬해인 1950년에 한국전쟁이 터지죠. 하필 오늘이 바로 한국전쟁이 터진 날이로군요. 65주년...... 아직 끝나지 않은 내전......

고려대 교수 이인수는 피난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동료 교수 임학수 역시 피난을 못 떠났다가 갖은 고생을 다 겪죠. ​그나마 임학수는 양반인 것이...... 어쨌거나 살아남았거든요. 비록 실종일지라도..... 월북인지 납북인지조차 오리무중일지라도......

잠깐 임학수 얘기로 빠져 볼까요?

​임학수가 1911년생이니까 이인수보다 오히려 다섯 살 위군요. 이인수는 1946년에, 임학수는 1948년에 고려대에 부임했지만요. 한국전쟁이 터진 뒤에 임학수도 피난을 못 떠났습니다. 이승만이 때려 부수고 도망간 한강 철교를 못 건넌 거죠.

북한은 물밀듯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 서울을 점령해 버렸고요. 이때부터 서울은 적치가 됩니다. 즉 적군 인민군의 점령 지역이 된 거죠. 적치 90일...... 여기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적어도 석 달 뒤 9월 28일 이른바 서울 수복 때까지요.

만 석 달 뒤에 다시 서울을 탈환해서 돌아온 사람들을 도강파, 즉 강을 건넌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럼 남은 사람들 즉 잔재민은 비도강파가 돼죠. 적치에서 북괴에 부역하​면서 살아남은 사람 취급을 당합니다. 서울 수복 뒤에 도강파가 제일 먼저 손댄 일은 서울에 3개월 동안 남아 있던 비도강파를 잡아다 족치는 겁니다. 남아 있는 동안 적군에 부역했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임학수......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 이인수...... 별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 임학수와 이인수 모두 하마터면 그 3개월 동안 죽거나 북으로 끌려갈 뻔했거든요. 30대 건아들이었기 때문에 의용군으로 북으로 끌려가다가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도망 내려온 거죠. 그렇게 목숨 걸고 살아남았건만.......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아니, 상상할 수밖에 없죠. 지금 생존해 있는 분들도 그때 일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인수의 최후

자, 문제는...... 임학수는 ​다시 서너 달을 더 버티며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인수는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왜냐고요?

이인수는 목숨을 걸고 남한에 남았지만 적치 기간, 인민군 점령 기간 동안 번역이나 통역, 또는 영어 방송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걸 딱 두 글자로 줄이면....... 아주 무시무시한 말이 됩니다. 부역이거든요.

결국 이인수는 서울 수복 뒤에 군에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넘겨졌습니다. 이때 군법회의란 아마 재판이라 보기 어려울 겁니다. 이인수의 부역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고 탄원서도 넣었습니다. 이인수를 아껴 고려대에 초빙해 온 인촌 김성수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넣은 탄원서가 국방장관 신성모, 대통령 이승만에게까지 무사히 잘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성모와 이승만 모두 이인수를 구해 줄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특히 신성모...... 신성모 역시 런던 유학생 출신이건만......

결국 이인수는 1950년 11월 7일에 교외 어딘가에서 총살되었습니다.  

​신성모는 1920년대에 런던에 있는 킹 에드워드 7세 해양 대학에서 유학한 뒤 영국 상선 회사에서 일등항해사로 일한 뱃사람입니다. 딱히 이인수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시가 하나 눈에 띕니다. <만인보>의 작가 고은이 바라본 이인수의 초상입니다. 고은의 <만인보> 중 한 편입니다.

이인수

고은

 

인문은 야만의 도구가 된다

인문은 제물이다

식민지 시대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전공의 수재 이인수

해방 후

그가 돌아왔다

고려대 영문학부의 자랑이었다

 

목포의 한 영어 교사가

그를 보러

이틀 동안 열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

한국 영문학의 자랑이었다

면도 자국이 서늘하였다

입에는 과묵을 매달아 두었다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다

학교와 집 사이를 오고갔다

전쟁이 났다

피난을 하지 못했다

인공 3개월간

월북했던 김동석이 내려왔다

그의 강권으로

대 미군 영어방송을 했다

변영태도 이인수의 영어를 따르지 못했다

 

수복 후

그가 검거되었다

고려대 김성수도

이승만에게 청원했다

여러 사람이

구명 활동을 했다

 

신성모가 눈치 빠르게 처형해 버렸다

 

영국 시절

이인수는 화려한 연구자였고

신성모는 거친 파도 선장이었다

늘 이인수가 원수였다 그때부터

키 작은 신성모가

키 큰 이인수를 없애 버렸다 기어코

─ 고은, 《만인보​》 17, 창비, 2004, 74~75면.

​고은 시의 진실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치 않습니다. 김동석의 만행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아야 하고요. 다만 허투루 나온 시는 분명 아니겠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찬찬히 추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문학자 이인수, <황무지>의 번역가 ​이인수는 영영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이인수가 겨우 34세 때의 일입니다.

이인수의 자녀는 각각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퇴임했습니다. (따님은 좀 불확실합니다만 두 영문학자는 이름 대면 거의 아실 만한 분들이죠.) 이인수의 유고를 모은 《Cloud Cuckoo Land: The Voice of Korea》는 2008년에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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