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박진영의 번역가열전

926

프린트하기

[17-1] 엘리엇의 <황무지>를 번역한 영문학자 이인수

문자 수선공



 

온 나라가 낙타 때문에 흉흉한 마당에 뜬금없이 표절 이야기가 불거진 바람에 잠시나마 전 국민이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불상사가 겹치고 말았습니다.

​표절 문제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시인 T. S. 엘리엇입니다. 엘리엇의 대표작이요 20세기를 상징하는 <황무지>는 동시대 무명 시인의 시를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게다가 표절을 두고 멋진 명언을 남긴 것도 엘리엇입니다.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고, 성숙한 시인은 베낀다. 못난 시인은 자기가 가져온 것에 먹칠을 하고, 훌륭한 시인은 가져온 것을 더 좋게 만들거나 적어도 색다르게 만든다.

엘리엇의 <황무지>를 결단코 읽어 본 적이 없더라도 첫 시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

황폐한 땅에서도 라일락은 크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으면서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쳐 준다.

​한국에서만, 한국인에게만 4월이 잔인한 줄 알았기 때문에 설마 저 구절이 우리 것이 아니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역시 번역은 위대할진저......

 

●     ●     ●     ●    

 

​엘리엇의 <황무지>를 처음 번역한 것은 1935년 시인 박용철입니다. 다만 장시 가운데 일부만 번역되었고, 박용철은 요절했습니다.

430여 행에 달하는 장시 <황무지>의 전모가 완역된 것은 1949년 1월 고려대 영문학과 이인수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1948년에 ​엘리엇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새삼 1922년 작품인 <황무지>가 눈길을 끌게 된 것이죠. 물론 번역가는 노벨 문학상 때문에 번역한 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만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서른세 살의 젊은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이인수의 머리말입니다.

역자의 말

 

1922년에 발표되자마자 끊임없는 절찬과 지나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온 이 장편시는 20대 엘리엇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현대 영시의 모나리자이다. 영문학의 낡은 형식을 깨트리고 김빠진 낭만의 언어와 감정을 청산하였다는 것만이 이 작품의 공적은 아니려니와 그 짙은 율조와 섬세한 뉘앙스로 말미암아 난숙한 서구 중산 문화의 붕괴를 경고하고 슬퍼하는 작가의 만가적(輓歌的) 시재(詩才)는 마치 희랍 신화의 오르페우스와도 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가진 것이라 인용과 암시로 표현된 많은 어구와 고사를 세밀히 해설치 않고는 차라리 이해에 곤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비판적 해설도 중요하려니와 원문을 고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아 보는 것도 의미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시작(詩作) 생애에 있어서 여러 번 발전적 해소를 한 엘리엇인 만큼 이 작품이 그의 최고봉이라는 것도 아니요 현대 영시가 이로써 종결을 지은 것도 아니요 금년도 노벨 문학상을 그가 받게 되었다는 뉴스 가치를 위해서 새삼스레 <황무지>를 소개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현대 영시가 이런 과정도 밟은 일이 있었다는 것과 팔일오를 지나 3년 반이나 되는 남조선의 오늘의 정신적, 심리적 분위기가 차라리 40년 전 <황무지>의 현대성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이유와 그리고 조선 현대시에 다소라도 양식이 됨 직도 하다는 신념에서 이 장편시를 번역해 본 것이다. 430줄 나마 되는 원시의 뜻과 줄에 충실하도록 우리말로 역()했을 따름이니 조선시로서 어색한 점은 독자 제현이 고쳐서 읽으시기 바란다.

끝으로 이 시를 번역한 수고의 절반은 고려대학교 영문과 학생 김치규(종길) 에 돌려야 함을 여기서 독자에게 밝혀 드리고자 한다. 비록 공역이라는 표시는 군의 겸손이 허락지 않으리나 이태 동안 한 교실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필자는 언제나 군의 말에 대한 감각과 시적 통찰력에 놀랐던 것이고 이 번역문에도 도처에 군의 말솜씨가 숨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바이다.

 

194812

고려대 영문학과 김치규(종길) 학생이라......​ 김치규=김종길? 맞습니다. 바로 <성탄제>로 유명한 시인 김종길의 본명이 김치규입니다. 여기에도 뭔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대체 ​<황무지>의 번역가 이인수는 누구일까요?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79 [18-5] 안중근의 재구성 (5)─되돌아오는 안중근
2015.12.02. 928
78 [18-4] 안중근의 재구성 (4)─안중근의 번뇌
2015.12.02. 533
77 [18-3] 안중근의 재구성 (3)─번역된 안중근
2015.12.02. 510
76 [18-2] 안중근의 재구성 (2)─안중근의 1931년
2015.12.01. 612
75 [18-1] 안중근의 재구성 (1)─합이빈의 해주 청년 토…
2015.12.01. 599
74 [17-2] 엘리엇의 <황무지>를 번역한 영문학자 이인수
2015.06.26. 1133
[17-1] 엘리엇의 <황무지>를 번역한 영문학자 이인수
2015.06.26. 927
72 세계 최초의 어린이날과 소파 방정환
2015.05.01. 1175
71 [16-7] 사회주의 체제의 영문학 번역가
2015.04.14. 964
70 [16-6] 번역가로서 임학수와 해외문학파의 허실
2015.04.14. 895
69 [16-5] 해방기의 부역 시인
2015.04.13. 761
68 [16-4] 서정시가 무너진 시대의 번역가
2015.04.10. 735
67 [16-3] 중일전쟁과 영국의 청년 시인들
2015.04.09. 1051
66 [16-2] 엘리트 시인 임학수의 패착
2015.04.08. 893
65 [16-1] 전선으로 떠난 안경잡이 시인
2015.04.07. 1091


1 /2 / 3 / 4 / 5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