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박진영의 번역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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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어린이날과 소파 방정환

문자 수선공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날이 전 세계 어디에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뜻밖일지 모르지만 영국, 프랑스, 미국의 달력에는 어린이날이 없다. 캐나다의 어린이날은 1990년대에 만들어졌고, 남미의 여러 나라도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산타클로스로 널리 알려진 성 니콜라스의 날인 126일로 대신한다. 아프리카 지역은 대부분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이 겹친다.

 

군 입대 기념행사에서 유래한 스위스의 어린이날인 81일은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축제다. 터키의 어린이날인 423일은 의회가 처음 열린 국가 주권의 날이다. 인도는 네루 수상의 생일인 1114일이 어린이날이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55일이지만 단오절 풍습을 따른 것이다. 또 이날은 남자 아이들을 위한 날이고, 여자 아이들의 명절은 33일에 따로 갖는다.

 

그럼 어린이날은 어느 나라에서 처음 만들었을까? 바로 우리나라다. 192251일 천도교 소년회에서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고, 전국적인 기념일이 된 것은 이듬해인 192351일부터다. 이날은 도쿄 유학생을 중심으로 색동회가 창립된 날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터키에서 어린이날이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터키는 독립전쟁 끝에 1923년에 건국되었는데 어린이날은 1927년부터 정해졌다.

 

올해로 93회를 맞은 우리 어린이날은 처음인 것 못지않게 의미도 남다르다. 어린이날이 아예 없거나 날짜가 제각각인 것도 마뜩잖지만 외국의 어린이날은 대개 독립 기념일이나 정부 수립일과 같은 정치적 경축일, 성탄절과 같은 종교적 축제일, 혹은 일본처럼 전통 민속을 끌어다 억지로 곁붙인 날이다. 오롯이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의 날을 만들어 별스럽게 기념하는 것은 애오라지 우리나라뿐이다.

 

  소파 방정환과 《사랑의 선물》

 

어린이라는 예쁜 말, 어린이가 주인공인 뜻깊은 날을 만든 것은 소파 방정환이다. 어린이들이 반길 멋진 선물도 방정환이 손수 장만했다. 19227월에 나온 《사랑의 선물》이다. 안데르센, 그림 형제, 샤를 페로,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세계 명작 동화 10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삽화를 곁들여 《사랑의 선물》로 내놓으면서 방정환은 짤막한 인사말을 건넸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이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사랑의 선물》을 마중물로 삼아 방정환은 더 큰 선물을 꿈꾸었다. 이듬해인 19233월에 드디어 잡지 〈어린이〉가 창간된 것이다. 스물네 살의 청년 방정환이 바라는 세상은 아무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나라였다. 자연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가 고스란히 노래가 되는 곳, 뛰노는 모습 그대로 자연의 모습이자 하늘의 그림자가 되는 땅이 과연 있을까?

 

죄 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사랑의 선물》을 안겨 주고 〈어린이〉 편집에 팔을 걷어붙인 방정환은 방방곡곡을 누비며 순회강연, 아동극, 동화 구연, 소년회 조직, 문화운동에 나섰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되 잠시도 어린이들과 떨어지지 않은 나날이었다. 안타깝게도 방정환을 소파 할아버지나 뚱보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절은 오지 않았다. 고작 서른두 살 한창때인 19317월에 갑자기 쓰러진 방정환은 그대로 어린이들 가슴속에 영원한 동무로 남았다.

 

 

■ 사진 설명

─ 방정환의 어린 시절과 일본 유학 시절의 모습. 특히 어린 시절 사진은 알려지지 않은 사진. 편집된 이미지.

─ 안석영의 캐리커처 일부. 편집된 이미지.

─ 방정환, 《사랑의 선물》, 개벽사, 1922; 1928(11판). 한국현대문학관 소장 및 제공.

─ 방정환 육필 : 처음 공개되는 육필 사진. 편집된 이미지. 방정환의 묘비명으로 쓰인 말은 <동심여선(童心如仙)>인데, 생전에 남긴 글 <동심시선(童心是仙)>. 어린이의 마음이 곧 신선이다.

 

─ 이미지 제공 : 소명출판, 케포이북스, 한국현대문학관.

─ 염희경, 《소파 방정환과 근대 아동문학》, 경진출판, 2014, 권두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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