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훈의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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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의 동시대인 - 신두호,「지구촌」 작품평

양재훈

햇빛 속을 걸었어

정오를 지나

지구인의 심정으로

이곳의 대기는 나의 신체에 적합하지 않다

호흡기 계통에 무리를 느끼며

 

햇빛이란 뭘까

일자를 떠올려도 빛나는 건 없었어

존재란 잘 구워진 빵과 같아서

신체가 주어지면

영혼은 곧 부드럽게 스며들 텐데

버터가 녹아들듯이

 

열기가 필요할 거야

태양이 일종의 장소라고 믿는다면

뿜어져 나오는 광선을 햇빛이라고 부른다면

신체와 영혼을 구원하는 오븐이라는

불길한

 

일기예보는 어제를 잊어가며 지속되겠지

지구 곳곳에선 동식물들이 자라나고

마지막으로 감기는

동시대적인 눈들

 

처음으로 종이 울리겠지만

솟아오르는 로켓을 보면 언제나 우울해져

모든 것을 남겨두고

지구에서 벗어나려

 

빛을 떠안고 있을 때

영을 센 이후에 시작된 것들은

여전히 영을 기다리겠지

하나씩

손가락을 접으며

 

대기권으로 운석이 낙하하고 있다

불타오르는 잔해들을 관찰하며

 

 - 신두호, 「지구촌 전문

 

 

   정체불명의 한 존재가 있다. 그는 정오를 지나 햇빛 속을 걷고 있다. ‘지구인의 심정으로 걷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지구인이 아닌 존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구 위를 걷고 있지만 지구에 속하지는 않는 자라면 어떤 존재라는 것인가? 외계인일까? 혹은 유령이나 신과 같은 존재일까? 하지만 제목이 지구촌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 시의 화자가 외계인이라면 이 땅을 지구이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 유령이나 신과 같은 존재라면 지구보다는 땅, 지구인보다는 인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외계인도, 유령이나 신과 같은 존재도 아니라면 자기가 지구인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이 시의 화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지구촌/지구인과의 이질성을 호소하는 화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구인이 아닌 자에 대한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세미나에서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 그래서 이런 뜻에서 비시대적인/비현실적인 자1)라고 말한 바 있다. 아감벤이 말하는 동시대인은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시대와 불화하며 스스로를 그 시대와의 어떤 단절이나 위상차 속에 위치시키는 자를 의미한다.

 

   「지구촌의 화자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지구라는 공간 안에 어쩔 수 없이 속하지만 지구와 불화하며 지구와의 위상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존재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구인이되 지구인 안에 있는 지구인보다 더한, 또는 지구인이 되지 못한 X로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제목으로 쓰인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이 지구화(globalization)2)를 찬미하는 뜻을 포함하는 단어임을 생각한다면 이 시의 화자는 지구화를 통해 재편된 지구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지구인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말하자면 대지(the Earth) 위의 모든 곳이 하나의 시스템 아래 통합되어 3차원 좌표의 숫자들로 표현되는 추상적 공간이 되는 지구(Globe) 위에 이전의 세계(World) 속에 존재하던 자신의 장소를 박탈당한 자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지구인의 심정으로 걸을 수 있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이곳의 대기가 자신의 신체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적합하지 않은 대기 앞에서 화자는 호흡기 계통에 무리를 느끼고 있다. 이는 세계화가 그의 존재의 최저층에 있는 몸 자체의 수준에서부터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체의 재편을 요구하는 지구화 앞에 고통 받는 자라고 한다면 이제 그는 그다지 멀리 있는 존재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명퇴자나 실업자, 혹은 ()취업 준비생일 수도 있고 어쩌면 청년 백수거나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 중 누군가는 열거된 목록에 속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언제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에 떨고 있거나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외면하며 어떤 강박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우리와 가장 멀리 있는 존재처럼 보였던 화자는 실은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존재, 어쩌면 우리 자신이기도 한 존재였던 셈이다.

 

   자기를 구성하는 것의 최저층에 있는 몸의 수준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속에서도 화자는 지구인의 심정으로 햇빛 속을 걷는다. 걸으면서 그는 햇빛이란 뭘까를 생각한다. 이 질문은 곧 일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햇빛에서 일자가 연상되는 것은 대지에 빛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양이 곧잘 신적인 존재로 격상되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연상법이다. 그러나 일자를 떠올려도 빛나는 건 없. 그에게 지구화 시대의 생존을 도와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촌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지닌 화자는 신체가 주어지면 / 영혼은 곧 부드럽게 스며들것이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한 본능에 따라 신체의 재편을 요구하는 지구화의 물결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제를 잊어가며 지속되는 일기예보와 같다. 그러한 진화의 결과에 따라 지구 곳곳에선 동식물들이 자라나겠지만 동시대적인 눈들은 감겨 버릴 것이다. 따라서 구원이 신체를 재편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지구촌에서 살아남는 일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오븐 속처럼 불길하다.

 

   「지구촌의 화자는 지구인의 심정을 가지고 햇빛 속을 걸었던 적이 있지만 그때도 그는 지구인의 신체를 갖지는 못했었다. 그의 정신은 지구촌에 거하고 있어도 그의 몸은 지구화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욕망을 거스르면서 지속되는 충동의 저항이라고 하면 어떨까? 지젝은 바로 그러한 충동의 고집스러운 지속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저항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3) 그의 생각이 맞다면, 지구촌은 지금 이 거스를 수 없는 지구화의 시대에 그와 불화하는 동시대인의 육체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을 통해 너무나도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1) 조르조 아감벤, 양창렬 역, 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 난장, 2010, 71.

  2)‘globalization’을 옮겨 쓸 때는 세계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구화라고 쓰는 것은 지구(globe)와 세계(world) 사이의 의미 차이를 살리기 위함이다.

  3) 슬라보예 지젝, 조형준 역, 헤겔 레스토랑, 새물결, 2013, 196.

 

 

 

* 이 글은  현대시』 7월호에 실린 현대시추천작품평입니다.

 


신동흔 2014.09.30. 6:18 pm 

덕분에 좋은 시 알게 되네요..

슬픈 일은, 우리에게 이미, 신체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

마당 2014.10.01. 9:30 am 

양재훈 선생님 반갑습니다.
햇빛을 베이컨식으로 살뜰히 발라가며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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