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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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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문학인 임화

신두원

*최근 교수신문에 연재중인 '근대 백년 논쟁의 사람들' 중 임화편에 쓴 글입니다.

 

우리 근대문학 100여 년의 역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임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190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3년 무렵 북한에서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그는 우선 대단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보성중학을 졸업 직전에 중퇴하고는 거리를 떠돌며 문학 수업을 하였고 카프에 가입한 후 영화배우로 활약했으며 스무살 무렵에 ‘우리 오빠와 화로’ 등의 이른바 단편서사시를 발표하여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갓 스물을 지난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공산당 재건운동에 가담했으며 일본에서 귀국한 후 20대 초반의 나이에 사회주의 문학인 단체 카프(KAPF)를 총지휘하는 서기장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폐결핵을 앓아 카프 맹원에 대한 일제 검거를 모면했고 자신의 손으로 카프 해산계를 제출했으며 1930년대 후반에는 활발한 문학평론으로 펼치는 한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문학사를 집필하는 가운데 학예사라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출판운동에 적극 종사했다. 해방 후에는 좌파와 중간파를 결합하여 조선문학가동맹이라는 조직을 결성하는 데 앞장섰고 그 이념으로 7,80년대 민족문학론의 원형에 해당하는 민족문학론을 제출했으며 다른 한편 남로당의 정치활동에도 가담하여 월북하였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끝내 ‘미제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북한에서 처형당함으로써 ‘소설 같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일생을 일별한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임화 문학의 문제성은, 정치와 문학의 연관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려 하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임화가, 우파들이 상투적으로 주장하듯이 단순히 문학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임화는 문학을 자신의 직업이자 필생의 ‘업’으로 삼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던 전문적인 문학인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이 시리즈에서 문학인으로 함께 다루어지는 이광수의 경우는 스스로도 고백하고 있듯이 정치가 본업이었고 문학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부업이었을 뿐이며, 이상의 경우는 총독부에서 퇴직한 이후에는 문학에 몰두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요절하고 말았기 때문에 문학을 자신의 ‘업’으로 삼아 일생을 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임화는 정치라는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았을 뿐이지 줄곧 문학을 위해 일생을 살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아니 역으로, 정치라는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을 위해 일생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시대는 올바른 문학을 위해서라도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이고, 또 그의 관점에 따르면 당대의 사회 현실에 대해, 따라서 당연히 정치에 대해 눈을 감고서는 올바른 문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에 올바르고 올바르지 못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는 일생 내내 ‘올바른 문학, 좋은 문학’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하여 시도 쓰고 단체 활동도 하고 평론도 하고 문학사도 집필하고 또 정치에 직접 몸담기도 했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문학은 ‘논쟁적’이기도 했다.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우선 실제로 그는 당시의 수많은 논쟁에 직접 참여하였고 그의 글 자체도 대단히 논쟁적으로 씌어졌다. 카프 시절의 아나키즘과의 논쟁, 대중화 논쟁, 볼셰비키화 논쟁 등을 비롯하여 김남천과의 작품 「물」을 둘러싼 논쟁, 김기림과의 시론 논쟁, 1930년대 후반 새로 등단한 신세대와이 세대 논쟁,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 논쟁에 이르기까지 그는 당시 우리 문학의 주요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직접적인 참여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그의 글 자체가 대단히 논쟁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리얼리즘론, 문학사론, 민족문학론 등 지금 읽더라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높은 수준의 문학이론을 생산해 내었는데, 어느 하나도 당시의 다른 평론가들과의 ‘논쟁적인 대화’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리얼리즘론은 당시 소개된 엥겔스의 발자크론이라든가 루카치의 소설론 등을 토대로 하고 있기는 하되 김남천의 고발문학론(및 당시 일본의 유물론 철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대화적 소통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산되지 못했을 것이며, 이식문학사론으로 유명한 문학사론은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명제로 대변되는 당시 프로문학에 대한 속류적인 비판들과 나아가 백철류의 국수주의적인 민족문화론에 대한 논쟁적인 대응 속에서 싹텄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제출한 민족문학론도 계급성과 당파성을 교조적으로 주장하는 북조선 이론가들과 맞서는 가운데 자신의 이론을 벼려나갔다.

 

그럼으로써 임화는 자기 이론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이식된’ 계급문학 이론(사회주의적 문예이론)을 단순하게 수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당시 우리 민족이 처했던 구체적 현실, ‘지금 이곳’의 문학사와 조응시켜서 변화시키고 나아가 타자와의 논쟁과 대화를 거치게 함으로써 결국 ‘자기화’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추상적인 사회주의이론을 민족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으로 발전시켜 낸 것, 달리 말하면 추상적인 보편이론을 현실의 특수성과 대질시켜 구체화하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의 문학이 논쟁적이라는 진술이 갖는 두 번째 의미는 ‘수용’과 관련해서다. 사실 임화가 이룩한 성취는 그동안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해와 편견 속에 수용되기 일쑤였다. 우리 문학이 서구 문학의 이식의 역사였다는 명제로 유명한 이식문학론에 대한 오해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오늘날에는 그의 이식문학론이 몰주체적인 이론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식민지 문화가 근대 문화의 이식을 통해 이식의 극복과 온전한 근대 문화의 수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체적인’ 함의를 갖는 것임이 널리 받아들여짐으로써 오해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반면 임화가 1940년 전후한 시기에 사상 전향을 하였다거나 친일의 길로 경사하였다는 오해는 아직 완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임화는 결코 일제 파시즘의 논리에 복속하거나 영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파시즘의 그물망으로부터 벗어나거나 혹은 은일(隱逸)하여서 지조를 지키기보다 파시즘과 직접 대면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치밀한 저항 논리를 발전시켜 나갔다.(졸고, 「변증법적 사유와 실천의 한 절정」, 󰡔민족문학사연구󰡕 38호 참조)

 

이러한 오해와 편견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양 편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곧 임화는 당시의 사회주의라는 보편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특수주의를 대질시켜 양 편향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이론을 생산하고자 애썼는데(임화 역시 두 편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음은 물론일 것이다.), 그것을 평가하는 우리의 ‘눈’ 역시 두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어느 때에는 보편주의라는 잣대로, 또 어느 때에는 특수주의라는 잣대로 기울어져 임화를 보았던 데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20세기에 막강한 힘을 발휘한 이 두 이념(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은 오늘날 현저하게 그 위력을 상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적이다. 20세기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그동안의’ 사회주의 이론도 파산을 맞이하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의 유산이 모조리 쓸모없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더욱더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모순과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인류 최대의 유산이 아닌가.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퇴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족주의 역시 국민국가 체제가 지속되는 한 생명력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임화가 남긴 유산은 그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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