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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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許弛

 

바야흐로 짐승의 시간이다. 그것도 들개들의 시간이다.

  우리 모두 사람의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신이 누구든, 이 땅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든, 이 물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사 당신이 개인적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한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당신이 속한 집단, 혹은 사회가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짐승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면, 그 논리에 저항하지 않는(못하는) 당신 역시 탐욕과 비열함으로 가득한 한 마리 들개로 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이,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당신만 제정신이라고?

  나는 타고난 낙관주의자이고, 발붙인 곳이 어디든 그곳을 즐기며 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지만, 요즘의 한국사회에 대해선 정말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고개를 든다. 한국사회가 그악스러운 천민자본주의의 아비투스로 가득한 시장사회가 되어버린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그나마 민주적 사회윤리가 거지반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오던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에는 그래도 살아볼만한 희망의 언턱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아니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난 3년 동안 그 희망의 불씨는 여지없이 짓밟혀져 왔다. 지난 3년 동안 민주주의는 능욕당하고 희롱당하고 조리돌려 만천하의 우스개가 되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우리 마음속의 들개들은 그나마 겨우 쓰고 있던 양의 머리가죽마저 거추장스러워하며 벗어던져 버렸다.

  그것은 애초에 부동산과 주식을 지키려고 장사꾼 출신을 ‘경제대통령’이랍시고 뽑을 때부터 준비된 사태였을 것이다. 경제 민주화 없는 정치 민주화, 신자유주의에 목숨을 건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형용모순이고, 지난 10년의 ‘민주정부’란 일종의 내용과 형식이 맞지 않는 억지춘향이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와 사회가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윤리학에 몽땅 빠져 있는데 정치만의 민주화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란 얼마나 허황한 말인가. 이명박정권의 등장으로 비로소 한국사회는 그 내용과 형식이 제대로 부합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에게 안전이 입증되지 않은 외국산 고기를 먹이겠다고 나서고, 국민을 폭도로 몰아 산 채로 불태워 죽이고, 알량한 토건수익을 위해 강줄기를 도륙을 내고, 국민들을 대포알받이로 내몰 기세로 전쟁을 선동하고....결국 자본과 시장의 영원한 안녕을 위해 국가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탓하지 말고 재주껏 능력껏 살아남으란 뜻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이 지옥 같고 정글 같은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일관성 있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태생적 기원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외세의 등을 업고 동족상잔의 내전을 치르면서 만든 나라 대한민국, 이 나라에 ‘인간의 얼굴’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 다른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무리 최악의 나라로 전락했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이 성스럽지 못한 기원은 지워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하면 할수록, 인간의 얼굴과 마음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른바 '건국주체'들의 추악한 본질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원에 젖줄을 댄 이른바 대한민국 보수세력은 민주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한사코 거부한다. 국민을 영원한 통치대상으로 노예화하고 겁주고 말 안 들으면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만이 그들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인간과 생명이 질식하는 들개의 시간은 아주 행복한 시간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아주 잘 굴러가고 있다. 당신이 당신의 몸속에 들어앉은 짐승의 심장을 들어내지 않는 한, 한국사회는 당신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회이다. 욕망하는 대로 거침없이 이웃을 짓밟고 집값과 주식값을 걱정하고 어떻게든 루저로 전락하지 말고 무엇보다 절대 뒤돌아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살 각오가 되어 있는 한, 이곳은 당신들의 천국이다.

  민주주의? 갓댐이다. 그것은 단지 어쩔 수 없이 이 오욕의 땅에 태어났지만 이곳을 조국이라고, 나의 터전이라 여기고 어떻게든 여기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 숨 쉬고 살아남기를 원하는 아주 극소수의 불순세력들, 혹은 ‘빨갱이’들이 꾸는 허황한 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 이 글은 <시사인> 신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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