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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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자의 혼잣말 - 전태일 40주기에

許弛

 

자살을 하기엔 나는 너무 가진 게 많았다. 아니 가지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리고 운명의 지침이 딸깍 소리를 내며 “다른 선택이 없다, 지금이 바로 죽을 때다”라고 내게 이르는 말을 불행(다행)히도 듣지 못했다. 그랬다면 아마도 “이 잔을 제게서 치워 주소서, 하지만 꼭 받아야 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운운하면서 그 지침에 순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결정적일 때 아주 조금 몸을 틀어 운명의 화살을 피해 왔다고 말해야 한다. 이 말을 과거시제로 쓰는 것은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에 기회를 놓치고 나면 자살도 어정쩡해 진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아남는가가 더 중요해 진다. 물론 생의 최종 심급에 이르면 누구의 삶이든 부끄럽게 살아남은 것으로 낙착이 될 테지만. (사실은 여기에도 비겁의 더러운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리하여 내게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은 생애에 걸친 열패감의 대상으로 남는다. 심지어 나는 채 스무 살도 되지 못한 청소년들이 아파트 옥상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떠난 운동화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것은 열패감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연민이나 그들을 그렇게 만든 세상에 대한 노여움은, 그들에 대한 나의 근원적인 열패감보다 항상 조금 늦게 찾아온다. 하물며 더 크고 무거운 의미를 지닌, 자기 희생으로서의 자살을 감행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런 죽음들이 있다. 나와 동시대의, 그리하여 어쩌면 내가 그들 대신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던, 지난 30년 동안 나를 괴롭혀 온 수많은 그런 죽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열사라 불리었고, 어떤 이들은 그런 호칭조차 얻지 못하고 이제는 기억 저편에 묻혀 버렸지만, 나는 그들이 살아온 모든 과거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모든 미래가 한 점으로 압축되어 블랙홀처럼 절대의 비중을 가진 영점으로 화하는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왔다. 살다 보면, 운명의 희롱에 엮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죽음 외의 선택이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죽음 외에 다른 선택이 너무나 많고, 그런다고 해서 아무도 비겁하다거나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는데도, 뚜벅뚜벅 죽음의 길을 선택한, 그리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을 영원한 부끄러움의 연옥 속에 가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숨이 막혀오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지독한 결단으로 이끌었을까. 살아야 할 그 수많은 이유들을 다 꺾어버리고 그들을 자결로 이끈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과 사의 경계를 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그 엄청난 삶의 원심력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비밀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맨 앞줄에 전태일이 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나보다 꼭 10년 먼저 태어나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스물 세 살의 젊은 목숨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때 나는 그저 새카맣게 탄 얼굴로 매일 공이나 차러 다니던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기 때문에 신문에 나온 그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그 후 한참 세월이 흘러 내 머리가 더 여물어지고 이 세상은 이대로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맞서 싸워 바꿔야 할 어떤 것이며, 그 싸움은 때로는 누군가의, 더 많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생은 나의 몫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깨닫게 된 이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싸움에서 나를 희생하지 못했다. 행동과 도피와 검거와 고문과 투옥은 있었지만 나는 그때마다 늘 불순한 ‘여유’가 있었다. 어떤 궁경 속에서도 나의 패는 늘 한 두 개쯤은 더 남아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전태일과 같은 생사를 건 궁극적 고독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두 사람의 영웅적 희생의 시대가 아니라 세력과 세력 간의 본격적 대결의 국면이므로 그런 고독과 몸서리쳐지는 최후의 희생 없이도 이 싸움은 해볼 만한 것이라는 간교한 운산을, 내 마음 한 자락에서 전태일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마다 마치 주문처럼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그러면서 나는 한 살씩 두 살씩 나이를 먹어갔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모든 것을 던져 맞바꿨으되 여전히 애처로울 정도로 작은, 승리 아닌 승리의 보잘 것 없는 전리품들을 착복하는 대열에 슬그머니 끼어들고 있었다.

그 대신에, 그 비겁과 간교의 흔적들마다 나는 한편으로는 궤변에 다름없는 유사과학의 논리를, 다른 한편으로는 수사학으로 분식된 값싼 감상과 우울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 내 정체를 알아채고 나의 죄를 추궁할 때마다 어떤 때는 냉철한 논객의 포즈로, 어떤 때는 비극적 시인의 포즈로 그 위기를 빠져나왔다. 그것은 늘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처럼 은폐와 변명이 반복되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삶은 평온해졌고 이젠 누구도 내 앞에 나타나 네 정체를 밝히라고 추궁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도 지치고 늙었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이젠 내가, 나의 그 궤변의 과학과 우울의 수사학이,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내가 내 자신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할 때가 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부터 여전히 쫓겨 다니는가? 이젠 이 짐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치 거짓 포즈가 골격이 되고, 가면이 맨얼굴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내가 지어왔던 표정과 몸짓을 내 자신과 구별해 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빚진 자의 표정과 몸짓이었다. 잘못된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잘못된 세상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내 잘못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이 세상을 방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못된 세상을 고치기 위해 자기를 희생했다면 그 순간 다른 사람들은 전부 그에게 빚을 진 것이 된다. 이 사실을 몰랐다면 한 생애가 평화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빚을 졌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론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그 순간부터 영원한 채무자의 길을 나서게 된다. 그 빚을 갚지 않으면 해방은 없다. 그리고 그 빚은 자신의 전 실존을 건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왜냐하면 누군가 이미 자기의 전 실존을 걸었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바로 나에게 이런 부채감과 열패감과 부끄러움의 낙인을 찍은 존재이다. 그리고 내 생애에 걸친 거대한 숙제이다. 무엇이 전태일을 영원한 채권자로 만들었고 나를 영원한 채무자로 만들었을까. 인간의 위대함과 비루함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영웅의 길과 타락한 주인공의 길은 생의 어디쯤에서 갈라지는 것일까.

 

* 오랜만입니다. 건강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 김응교 형의 청탁으로 <테러리스트>에 [그가 나를 전태일이라 불렀다]라는 글을 억지로 써서 보냈는데 그 앞머리 부분을 면피용으로 올리는 겁니다.


joyman 2010.11.10. 3:12 pm 

공감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이제는 김명인 선생처럼 진정으로(수사적 포즈가 아니라)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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