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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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내 인생

許弛

 

나는 1960년대 초반 영남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꾼이 되거나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집안일을 돕다가 일찍 시집들을 가 버리거나 했지만, 나는 달랐다.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 초등학교 6년 내내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았던 나를 아버지는 도청소재지로 유학을 보냈다. 거기서도 최상위권을 거뜬히 유지했던 나는 비록 평준화가 되었지만 다행히 지역 최고의 명문고에 배정받고 마침내 무난히 한국 최고의 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그러나 나의 대학시절은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집권하던 80년대 초반이었고 내가 다닌 대학은 학생운동의 총본산이었다. 나도 비록 감옥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교내시위에도 꽤 여러 번 참여하였고 그러다가 종종 며칠씩 유치장에서 구류살이도 경험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형사들이 고향집에 더러 드나드는 일도 생겼다. 보다 못한 아버지와 형은 그를 강제로 군에 입대시켰다. 내가 제대하던 해인 1987년을 고비로 세상은 웬만큼 제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잠시 주춤했던 승승장구의 길을 다시 걸어갔고 졸업 후 2년 만에 행정고시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그의 고향마을에는 플래카드가 붙었고 노부모가 기꺼이 돼지 한 마리를 잡았음은 물론이다.

중앙부처의 5급 사무관 시절 나는 중매를 통해 명문여대 출신의 서울내기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의 창창한 장래를 높이 산 처가의 섭섭지 않은 지원 덕분에 나는 결혼 수년 만에 중형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게다가 공직사회에서 내 학연과 지연은 너무나 공고한 것이어서 나는 늘 승진서열의 앞자리에 섰다. 이사관으로까지 승진을 거듭하는 동안 그 학연과 지연, 그리고 약간의 운동권 경력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는 영남정권에서도 호남정권에서도 늘 전도가 양양한 고위 관료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그 동안 나의 아내는 정말 헌신적인 내조를 하였다. 식을 줄 모르는 부동산 경기를 타고 굳이 위험한 투기를 하지 않더라도 분양권 전매를 비롯해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았고 대학 동문들과의 교류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좋은 정보가 철철 넘쳐났다. 그렇게 재산을 불리는 한편 그녀는 아들과 딸을 모두 좋은 학군의 좋은 학교에 입학시켰고 좋은 대학에 합격시켜 아버지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그 과정에서 누구나 다 하는 몇 차례의 위장전입을 했을 뿐이었고 그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공무에 바빴던 나는 아내의 그러한 알뜰한 내조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동료들의 부인들도 모두 그랬으니까.

마침내 마지막 기회가 왔다. 다시 보수영남정권이 집권을 했고 중앙부처의 고위직에 있던 나에게 지역 선배로부터 ‘정치적’ 제의가 왔다. 나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고 예의 성실한 자세로 그 임무에 충실하여 첫 개각에서 차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제 드디어 장관직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나는 낙하산으로 장관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내 성실한 공직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당연히 주어지는 자리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난관이 닥쳤다. 하마평이 오르자마자 언론과 야당에서 나의 장관임용이 부당하다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니 나 자신이 어느새 대놓고 대표적인 비리 공직자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억울했다.내가 나서서 한 일이 아니라 전부 아내가 한 일이었고, 모든 중산층들이 재산증식과 자녀교육을 위해 거치게 마련인 통상적인 절차들이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도 쓰지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엄청난 사회적 비난 속에  내 발목에 쇠고랑처럼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이었다.

이게 왜 죄가 되는가? 이렇게 국민적 관습과 위배되는 법조항이 있었단 말인가? 왜 평소엔 사문화되다시피 한 법이 유독 인사청문회 때만 기세등등하게 살아나는가? 대통령도 나를 부동산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저 야당의원도 사실은 나와 똑같이 재산을 늘리고 애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경우 그저 버티는 게 최고다. 나는 성실하게 일했고 성실하게 주어진 기회를 이용했으며 성실한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후회한다’는 취지의 말 몇 마디로 이 불편한 통과제의를 잘 넘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버티기로 작정하니 그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장관이 된단 말인가.



許弛 2010.08.25. 4:40 pm 

두 개의 글을 써 놓고 하나는 <시사인>에 보내고 하나는 이 자리에 실어야 하는 이 부담감! 어제부터 오늘까지의 이 정신적 과부하!

시냇물 2010.08.27. 8:28 pm 

정신적 과부하 상태인 상황에서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렇게 머리에 찬 물 끼얹는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해야 할 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러한 상황을 글로 써야 하는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빌어먹을 현실이 선배님을 과부하로 올려 놓았을 거 같습니다.(쓰실 글 첫 단락 주어가?)...이제 조금 선선한 기운이 돕니다. 휴일 편히 쉬시고요.

장경남 2010.08.26. 4:49 pm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 상황... 청문회에 나온 인사들의 언행... 참 답답합니다. 선생님 글 쓰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으니...

김영 2010.09.04. 11:47 am 

한국사회 주류층의 성장사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군요. 도와 덕이 사라지면, 권세와 돈과 명예를 향한 질주밖에 남지 않지요. 당사자는 왜 나만 탓하느냐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저 낮은 곳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많은 이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해서 그런 뻔뻔스러운 변명을 하는 것이겠지요. 공정한 사회를 외치면서 자기 딸을 특채해 놓고 뻔뻔스럽게 '장관 딸이라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변명하는 저들의 후안무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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