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1763

프린트하기

망언과 실언

許弛

   ‘망언(妄言)’이라는 말이 두드러지게 회자되고 있다. 한때는 주로 일본의 보수정객들의 식민지 침략과 관련한 아전인수적 발언들을 주로 일컬었는데 이제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과장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말들이 ‘망언록’에 등재되고 있다. 물론 어떤 말이 망언이 되고 안 되고는 상대적이다. 어떤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천하에 흉측한 망언으로 받아들여지는 말이 다른 사회구성원에게는 촌철살인의 명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상식적으로도 저게 꼭 망언 소리를 들어야 할까 하는 경우, 즉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망언으로 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계급, 계층, 출신, 지역, 학력, 성별, 정치적 입장 등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세계관,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말이 망언으로 규정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른바 사회상규라든가, 상식이라든가, 혹은 인륜이라든가 하는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보편적 규준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기 마련이고 대개 이런 규준에 비추어볼 때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 발언은 ‘망언’의 반열에 오르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망언의 자격을 다 갖추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이 망언이 되기 위해서는 그 발언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 의해 공적이거나 그에 준하는 자리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그 발언으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상처를 받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개인보다는 집단인데 특정한 개인에게 피해나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망언이라기보다는 인신공격이나 명예훼손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망언은 실언(失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두 경우 나머지는 모두 같지만 실언은 무의식중에 나온 발언이며 망언은 의식된 발언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물론 의식적으로 망언을 해 놓고 실언이라고 잡아떼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중에 나온 실언이 결과적으로 망언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두 발언의 차이는 두부 자르듯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의식적 발언인가 무의식적 발언인가는 조금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면 많은 차이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망언에 관한 이상의 개념적 정리를 바탕에 두고 가장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경찰청장 후보자라는 인사의 ‘망언’에 관해 고찰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가 지난 3월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단 팀장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행한 발언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대략 세 가지, 각종 집회,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법질서 파괴세력이라고 지칭한 발언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 사유가 전날 밝혀진 차명계좌 때문이라는 발언, 그리고 천안함 희생장병 유족들의 애통한 몸짓과 절규를 동물의 울부짖음에 비유한 발언이 그것이다. 우선 그의 이 세 가지 발언들은 모두 사회상규, 혹은 상식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망언’으로서의 일차 조건이 충족되며, 그가 현직 서울경찰청장이라는 공인이고 그 발언이 강연이라는 공적 자리에서 행해진 점에서 두 번째 조건도 충족이 되며, 그로 인해 각각 집회・시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이행한 민주시민들, 노무현 전대통령 및 그의 유족 및 지지자들, 그리고 천안함 사망장병 유족들이 심각한 명예의 훼손과 더불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확고히 망언으로 완성된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각 발언에는 성격상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의 두 발언은 의식적 발언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망언’이지만 마지막 발언은 ‘망언’보다는 ‘실언’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법질서 파괴자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경찰 등 공안기관 종사자들의 관습적 소신인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주의사회에서 이러한 잘못된 소신을 공언하는 것은 틀림없이 ‘망언’이라 할 수 있다. 또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 동기가 차명계좌였다는 근거없는 발언은 특히 의도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악의적인 ‘망언’에 틀림없다. 하지만 천안함 유족들의 애통한 몸부림을 두고 “동물처럼 울고 불고...” 라고 표현한 것은 평소의 소신이라거나 악의적인 왜곡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무심결에 나온 ‘실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발언의 당사자로서도 앞의 두 ‘망언’에 대해서는 그나마 동조자나 지지자가 있을지 모르나 이 마지막 ‘실언’은 일종의 패륜적 발언으로 보편적인 비난을 모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뼈아픈 발언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실언’은 그 정도를 넘어서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시위 참가 시민들을 범법자로 보는 것, 전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비방한 것까지는 정치적 소신이거나 개인적 편견의 문제로, 혹은 공직자로서의 자질 부족의 문제로 보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비명횡사한 혈육의 죽음 앞에서 애통해 하는 유족들을 동물에 비유한 그의 무의식적 ‘실언’은 생각해 볼수록 충격적이다. 그것은 그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인간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발언은 크게 보아 슬픔을 좀 더 격조있게, 성숙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행해진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슬픔이 다 격조있게 표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가 예를 들었듯 미국인들처럼 표현하는 것만이 슬픔에 대한 최선의 표현은 아니다. 또 하나, 만일 그 유족들이 그저 평균적인 서민들이 아니고 부유하거나 권력과 명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면 그가 그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눈에 그 울부짖는 유족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극한 비탄에 빠진 인간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쩌면 일부러 슬픔을 과장해서 보상금이나 더 받아내려는 한 덩어리의 귀찮은 짐승 같은 존재들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가 한번이라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힘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있다면 그의 입에서 과연 ‘동물’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의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이러한 인간관은 그러나 그에게만 특수한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인간을 하나의 ‘귀찮은 덩어리’로 격이 낮은 동물적 존재로 보아 왔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전근대 시기의 귀족들에게 노예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히틀러나 그의 추종자들에게 유태인들이 그랬을 것이고 이승만 이래 극우반공주의자들에게 ‘빨갱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도 개발업자들에게 철거민들이 그러할 것이고 자본가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비인격화, 사물화는 국가나 지배계급이 국민이나 피지배계급에 속한 인간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파시스트적 인간형들이 가진 보편화된 멘탈리티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비인간적 멘탈리티를 일상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국가/권력/자본의 인간 일반에 대한 초월적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고착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실언’은 사실은 ‘실언’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적 훈련이 뱉어낸 가장 정상적이고 반듯한 ‘정언’인 것이고, 애통해 하는 유족들에게 무례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간직하고 있던 무의식적 신념을 무심코 발설한 것이야말로 그의 진짜 실수가 되는 것이다. 그가 신자유주의 반공 부르주아국가 대한민국의 경찰청장으로서 자격미달이라면 바로 이 때문이다.


시냇물 2010.08.18. 10:20 am 

망언이 아니라, 실언이고, 실언이 아니라, 정언이라는 말씀... 명확한 지적입니다. 등골이 오싹합니다. '신자유주의 반공 부르조아 국가'라는 규정은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했던 민주주의로 위장한 새로운 전체주의와 다름 없고요,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전체주의를 위해서는 이러한 정언정신, 시민을 사물로 보는 파시즘적 멘탈리티가 필요하겠지요. 전체주의를 위한 자격충분의 경찰청장, 어떡하든 일급 간부로 모시려 할 겁니다.
지난주 중국에 갔더니 교수들 평균 봉급을 3000위안 정도(우리돈 70만원)에 묶어두고 아첨하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권력에 굴복하지 않으면 70만원도 안 준다는 말이죠. 중국이나 어디나 파시즘 시대는 논문 쓰고 연구해야 할 서생들을 비루하게 만듭니다.

許弛 2010.08.18. 4:20 pm 

꿈보다 해몽, 지젝까지 모셔올 필요도 없어요. 그나저나 1주일에 한번씩 글 올리려니까 아주 뼛골이 빠집니다~

조현설 2010.08.22. 5:16 pm 

무의식화된 멘탈리티, 이게 제일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멘탈리티를 간직한 몸이 지워지지 않는 한 결코 쉬 사라지지 않을....(근데 그 사람 이름이 조현X여서 그게 저로서는 요즘 속이 쓰린게 사실입니다.^^;)

許弛 2010.08.24. 10:58 am 

그 조현X라는 친구는 게다가 비겁하기까지 하더군요. 진짜 보수라면 영화 <어 퓨 굿맨>에서의 잭 니콜슨처럼 청문회건 재판정이건 소신껏 할 말은 다 해야지요. 무의식에만 있고 의식에서는 억압하고 통제해서 어떻게든 엽관이나 하려는 천민들 쯧쯧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세상 읽기'를 시작하며 [1]
2010.05.18. 2304
18 문제적 문학인 임화
2010.10.24. 1917
17 프로문학 연구에 대한 한 소회-대구 심포지엄을 다녀… [1]
2010.10.17. 1514
16 '진보' 사용설명서
2012.05.17. 993
15 '사랑'을 믿지 않는 <난쏘공> - 최인석의 <연애, 하는… [1]
2012.05.02. 1404
14 곤혹의 나날, 다시 문학을 생각한다 [4]
2012.04.24. 939
13 영국에서 보내는 짧은 편지
2011.09.27. 1420
12 당신들의 천국
2011.01.05. 2059
11 빚진 자의 혼잣말 - 전태일 40주기에 [1]
2010.11.09. 1833
10 한 주만 쉬지요 [3]
2010.09.08. 2418
9 싸이코패스 공화국 [1]
2010.08.31. 1941
8 개 같은 내 인생 [4]
2010.08.25. 2105
망언과 실언 [4]
2010.08.18. 1764
6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2010.08.10. 1664
5 폭력은 오래 지속된다 [3]
2010.08.04. 1767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