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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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오래 지속된다

許弛

 

  지난 3월, 한 여성 수능강사가 EBS 인터넷 동영상 강의 중에 남성과 군대를 비하, 혹은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그 뒤 이 동영상은 온라인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가 파문을 일으켰고 이를 문제 삼은 일부 네티즌들이 그의 미니홈피, 직장 홈피, EBS 홈피 등에 사이버테러에 가까운 집요한 공격을 한 끝에 그는 최근 결국 사과문을 쓰고 강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발언이었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주지하고 있겠지만 간단히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자들은 군대 갔다 왔다고 자랑하거나 뭐 해달라고 떼를 쓴다. 하지만 군대 가서 배워오는 것은 (사람) 죽이는 거다. 여자들이 힘들게 낳아놓으면 남자들은 죽이는 거 배워온다. 뭘 잘했다는 거냐. 처음부터 그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롭다.

  이 발언은 강의의 중심내용이 아니라 일종의 예화이자 수강자들의 집중을 돕는 곁소리에 불과하다는 점은 있지만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진중하지 못한 발언이었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발언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제기를 당하지만, 크게 보아 두 측면에서 주로 논란을 일으키게 된다. 하나는 과연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그 사실을 자랑하거나 그에 대한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했는가 하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군대가 과연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르치는 곳인가 하는 측면이다.

  우선 전자의 경우가 많은 남성 네티즌들을 자극했고 그것이 급기야 사이버테러라는 극단적 인신공격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병제가 시행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며 이 점을 간과한 그의 발언은 분명히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발언의 맥락을 고려해볼 때, 그는 언어생활을 포함한 한국남성사회에 만연한 일종의 속악성을 군대와 연결지어 사고해 왔으며 이러한 평소의 생각이 무심결에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군필자들 일반에 대한 비하는 문제지만 이러한 생각에 들어 있는 일단의 진실은 ‘광분한 남자들’ 누구도 고려하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는 더욱 논쟁의 여지가 크다. 이 문제는 원론적인 측면과 한국적 특수성의 측면이 다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볼 때, 군대는 전쟁기계이고 잠재적 현재적인 폭력기관이 분명하다. 설사 그것이 아직은 필요악이라 할지라도, 전쟁과 군대는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존재이다. 하지만 이 논란의 과정에서 의외로 군대의 존재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 미화하는 입장도 적지 않은 것에 놀랐다. 한국적 특수성을 논하는 자리에 오면 군대의 필요성을 넘어 미화, 성역화하는 논리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리고 그 강사가 EBS 강사직에서 물러나는 데에는 “한국에서 어디 군대를 건드려?” 라는 이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의 위협이 큰 우리 같은 사회일수록 군대의 본질적 폭력성과 반평화성은 더 강력하게 부각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군대 얘기만 나오면 어딘가 움츠러드는 사회가 과연 진정 전쟁을 저지하고 평화를 추구할 생각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남성에 대한 즉물적 적대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이분법적이고 잘못된 일반화에 기초하여 남성을 비하한 그 여성강사의 경솔성이 개인적 문제라고 한다면 그의 발언을 ‘망언’으로 싸잡아 규정하고 그의 전면항복을 받아내 의기양양한 네티즌들과 한국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보다 더 엄정하게 문제 삼아야 할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여성강사의 발언에서도 표현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비대칭적인 한국사회에서 남근주의와 마초주의, 그리고 그에 기초한 남성들의 무지한 속악성은 한국 여성들 일반에게는 여전히 끔찍한 야만의 표징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것이 군대와 같은 물리력이 숭상되는 사회조직의 속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보다 진지하게 성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성찰 없는 군대 옹호, 군대 경험 옹호, 또는 “내가 가고 싶어 갔냐” 식의 유아적이고 몰주체적인 인식들 자체가 한국사회의 남성중심적 권력구조와 사유구조를 지탱하는 가장 큰 심리기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벌인 한 인격에 대한 광기어린 무차별적 집단폭력과 마녀사냥이야말로 그들이 군대에서 배워온 바로 그 ‘죽이는 기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분단과 냉전이 만들어 낸 오랜 단세포적인 적대성의 복제판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을 것이다.

 

* 이 글은 이번 주 <시사인> 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장경남 2010.08.04. 4:12 pm 

잘 읽었습니다.

시냇물 2010.08.04. 9:29 pm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벌인 한 인격에 대한 광기어린 무차별적 집단폭력과 마녀사냥이야말로 그들이 군대에서 배워온 바로 그 ‘죽이는 기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죽이는 기술'은 인간 관계에서도 성립되는 거 같습니다. '죽이는 기술'이 늘고 있는 이 시대에 백석처럼 산속으로 아무도 없는 데로 숨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마당 2010.08.05. 10:14 am 

곁가지로 새는 말인데요.....'죽이는 기술'은.... "끝내준다'는 의미도 있지요. 요즘처럼 더운날에는 뭔가 기술 하나쯤은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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