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1124

프린트하기

브레멘으로 가는 길, 신비의 황금열쇠

신동흔



가자, 브레멘으로

  오랜 세월 묵묵히 곡식을 나르는 일을 해온 당나귀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힘이 빠져 쓸모가 없어지자 주인은 더 이상 먹을 것을 주지 않으려 했다. 낌새를 눈치 챈 당나귀는 집을 빠져나와 브레멘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리로 가서 악사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당나귀는 길에서 지쳐 헐떡이는 사냥개 한 마리를 만났다. 늙어서 사냥을 못하게 되어 죽임을 당할 처지에서 도망쳐 나온 길이라 했다. 당나귀가 브레멘에 가서 함께 음악을 하자고 하자 사냥개는 기뻐하면서 동행이 되었다. 이어서 나이 들어 쥐를 못 잡는다는 이유로 물에 빠뜨려질 뻔했던 고양이가 합류하고, 주인에게 잡아서 튀겨질 상황에 있던 수탉이 다시 합류했다. 넷은 브레멘을 향해 열심히 길을 걸었다. 
  브레멘은 멀었다. 숲에서 날이 저물자 넷은 거기서 밤을 지내기로 했다. 나무에 의지해서 잠을 자려던 일행은 멀리 불빛을 발견하고 그리로 향했다. 불이 밝혀진 곳은 도둑들이 사는 집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도둑들이 맛난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있었다. 도둑을 쫓아내기로 마음먹은 일행은 묘안을 찾아냈다. 당나귀 등에 개가 올라가고 그 위로 고양이와 닭이 올라앉은 다음 일제히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히힝, 멍멍, 야옹, 꼬끼오~ 이들이 그 상태로 유리창을 부수고 뛰어내리자 유령이라고 생각한 도둑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다. 당나귀 일행은 차려진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즐겼다. 
  일행이 제각기 편한 자리를 찾아서 불 끄고 잠들었을 때 도둑들이 돌아와서 동정을 살폈다. 부엌으로 들어간 도둑이 고양이 눈이 석탄인 줄 알고 불을 붙이려 하자 고양이가 얼굴로 뛰어올라 침을 뱉으며 할퀴었다. 도둑이 놀라 뒷문으로 가자 개가 다리를 물고, 마당을 가로질러 거름더미 쪽으로 가자 당나귀가 뒷발로 걷어찼다. 그때 수탉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꼬끼오 하고 소리쳤다. 집안에 끔찍한 마녀가 있다고 믿은 도둑들은 멀리 도망쳐 돌아오지 않았다. 네 명의 브레멘 음악가는 그곳에서 내내 잘 살았다. 


  네 동물의 행보,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유명한 <브레멘 음악대(Die Bremer Stadtmusikanten; KHM 27)>의 사연이다. 나이 들어 퇴물이 된 처지에 악사가 되겠다고 브레멘으로 길을 떠난 네 친구에 대한 다분히 희극적인 이야기이다. 하잘것없는 동물들이 음악을 하겠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들이 해온 일이 짐 나르기나 사냥, 쥐잡기 같은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그 행보가 더 생뚱맞아 보인다. 글쎄, 목청만큼은 빠질 게 없는 수탉 정도라면 혹시 가능성이 있을까? 이야기에 보면 먼저 길을 나선 세 친구가 수탉을 열심히 설득하는데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진 상황을 보면 저들의 행보는 과연 엉터리 수작임이 분명해 보인다. 당나귀 위에 개와 고양이, 수탉이 차례로 올라탄 상태에서 일제히 와글와글 외쳐댄 것이 그들의 ‘음악’이었다. 모름지기 그것은 ‘괴성’에 가까웠을 것 같다. 오죽하면 도둑들이 그들을 유령으로 여겨서 도망했겠는가. 뒤에 도둑들이 재차 확인한 그들의 모습도 음악가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저들이 숲속의 집을 차지한 것은 막무가내 좌충우돌이 가져온 뜻밖의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저들이 펼쳐낸 음악이 완연한 진짜였다고 믿고 있다. 조금 억지스럽게 편을 들자면 이런 식이다. 먼저 저들이 목청껏 자기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억눌렸던 내면의 목소리를 마음껏 풀어내고 있는 터이니 ‘영혼의 소리’나 ‘삶의 소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저들이 서로의 등에 올라탄 채 함께 소리를 내는 것도 좀 새롭게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들이 완연히 한몸이 되어 움직이는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로 일체가 되어 거침없이 펼쳐내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샤우팅! 이거 꽤 그럴듯한 그림 아닐까.
  서사의 맥락에서 우리가 주목할 바는 저들의 ‘연주’에 의해 쫓겨난 것이 바로 ‘도둑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도둑이 상징하는 바로 말하면 생존을 둘러싼 압박과 쟁투, 긴장과 불안 등일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노리고 빼앗고 도망치고 숨는 것이 곧 도둑의 일이다. 당나귀 일행이 펼쳐낸 음악은 그와 상극을 이루는 낯선 일이었으니 도둑들이 그것을 유령으로 여기고 도망한 맥락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가 하면 저 도둑만이 아니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1차적 욕망에 포획된 채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터다. 그건 저 네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짐을 나르고 사냥하고 쥐를 잡고 하는 등의 일.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건 진정한 삶이 아니었다. 저들의 진짜 삶은 브레멘으로의 길 떠남을 통해서, 내면으로부터 원했던 바를 행하는 몸짓을 통해서 비로소 시작되는 중이다. 저들이 목청껏 펼쳐내는 ‘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그 ‘존재의 몸짓’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들이 찾은 브레멘, 또는 제2의 인생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니 다소 억지스러워진 느낌이 있다. 사실로 말하면 이 이야기를 보면서 단박에 마음이 움직여 감동했던 터다. 내내 소모품으로 살아왔으며 이제 퇴물이 되어 스러지게 된 초라한 존재들이 펼치는 통쾌한 반란. “그래, 이게 인생이지!” 거의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 이야기와 딱 겹치면서 떠오른 것은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었다. 인생의 황혼녘에서 문득 다시 만나 새로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펼쳐내는 음악은 이 방면에 문외한인 나한테도 감동 그 자체였다. 기능으로 따지자면 어찌 젊은 시절의 능력에 미치며 떠오르는 신예들을 당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정성으로 말하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소리! 세상은 그렇게 흔들려 일깨워지는 것이었다. 
  브레멘 음악대, 또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늙은 음악인들은 우리에게 온몸으로 말한다. 끝으로 보인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고. 끝처럼 보이는 순간에 오히려 참다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초췌하게 스러져가는 존재들에게 전하는 최대의 축복이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축복은 아니다. 꿈을 놓지 않고서, 자기 자신을 믿고서, 또 동지를 찾아 연대하면서, 몸을 움직여 훌쩍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저 당나귀 일행에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브레멘 음악대’다. 이 이야기 덕분에 브레멘은 꿈의 도시, 음악의 도시의 명성을 갖게 된 터다. 하지만 이야기를 보면 저 나그네들은 실제로 브레멘이라는 도시에 다다른 적이 없다. 그리로 가는 길에 있는 어느 숲에 머물러 정착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브레멘 음악대’라는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들이 찾아 깃든 저 숲이야말로, 그들이 살고 싶었던 삶을 마음껏 펼치는 그곳이야말로 참다운 ‘브레멘’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브레멘은 어디 특정한 곳에 있는 실제적 장소가 아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서 펼쳐낼 수 있는 곳이라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찾아서 제2의 인생을 살아내는 곳이라면 세상 어느 곳이라도 브레멘이 될 수 있다. 이야기에서 당나귀 일행이 브레멘이라는 도시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굳이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살리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럼으로써 저 <브레멘 음악대>는 브레멘이란 도시에 실제로 가기 어려운 이들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터다. 나 자신 아직 브레멘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브레멘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쌓인 눈 속의 황금 열쇠

  눈이 깊게 쌓여 있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가난한 소년이 썰매를 타고 나무를 하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나무를 모아 썰매에 실은 소년은 너무도 추웠으므로 집으로 가기 전에 우선 불을 피워 몸을 조금 녹이려 했다. 눈을 쓸어 내고 보니 땅바닥에 작은 황금 열쇠가 있었다. 소년은 열쇠가 있으니 어딘가 자물쇠도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정말 쇠로 만든 작은 상자가 나왔다.
  ‘열쇠가 맞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은 생각했다.
  ‘상자 안에는 분명 값진 물건이 있을 거야.’
  하지만 자물쇠 구멍이 없었다. 마침내 하나 찾긴 찾았는데, 어찌나 작은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열쇠를 끼우니까 다행히도 딱 맞았다. 소년은 열쇠를 돌렸다.
  자, 이제 우리는 소년이 열쇠를 완전히 돌려 뚜껑을 열어젖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음에라야 우리도 상자 안에 얼마나 멋진 물건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될 거다. 


  보물상자를 찾아내 열기까지

  그림형제 민담집의 200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인 <황금 열쇠(Der goldene Schluessel; KHM 200)>이다. 무척 짧고 간단한 이야기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야기 원문을 통째로 옮겼다(김경연 역, <그림형제 민담집>, 현암사, 2012, 911쪽). >
  책의 맨 끝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를 나는 완연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기고 있다. 잘 모르기는 해도 이 이야기만큼은 그림형제가 직접 지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지요.” 하면서. 또는 “우리가 이야기와 더불어 이렇게 살아왔어요.” 하면서. 
  흔히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말한다. 저 소년한테도 딱 맞는 일일지 모른다. 추운 날 버겁게 나무를 하러 나온 가난한 아이. 빨리 집으로 가는 게 상책일 것이다. 눈을 쓸고 불을 피우는 일은 허튼 시간 낭비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소년은 눈을 쓴다. 나무를 해서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몸과 마음을 따뜻이 녹이는 일이 그 이상으로 중요했으므로. 그렇다. 그것이 이야기다.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이야기 속에서 따뜻한 평화를 찾는 시간은 오히려 더 소중한 법이다. 
  그런데 그런 몸짓이 의외의 발견을 가져온다. 황금 열쇠가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로 말하면 그로부터 인생이라는 보물창고를 열 가능성과 만난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면, 열쇠를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 그걸로 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소년은 그러지 않는다.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아 나선다. 그냥 이리저리 눈을 돌려 찾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손을 호호 불면서 언 땅을 이리저리 파헤친다. 옆에서 보기에 참 허망하고 무모한 일이었으리라. “별 가망도 없는 일로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끌끌.” (참고로 그림형제는 부친의 뜻하지 않은 작고로 가난하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들이 옛이야기의 가치를 깨닫고 그를 향한 탐험을 시작한 것도 사는 일이 고단했던 그 무렵이 아닐까?)
  소년의 시도는 무망해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의 믿음대로 자물쇠는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자물쇠만이 아니다. 자물쇠가 있다면 그 자물쇠로 채워진 귀한 무엇이 있기 마련. 낯선 상자가 함께 나타난 것은 그러니까 하나의 ‘필연’이었다. 이야기로 말하면 무언가 의미 있는 단서를 발견하고서 해법을 찾아서 움직이다 보니 이야기의 세계에 품긴 크고 귀한 가치의 창고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상황이다.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소년이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자물쇠에 구멍이 없었다 한다. 자물쇠를 열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까 작은 구멍이 보였다고 한다. 열쇠가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구멍. 하지만 소년은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거기 열쇠를 끼워 본다. 뜻밖에도 열쇠가 들어간다. 드디어 보물 상자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옛이야기가 꼭 그러하다. 무언가 담겨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는 하는데 그것을 열어서 풀어낼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시 보고 또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없는 열쇠 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이, 너무 작아서 안 맞아!” 이렇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갖다가 끼워서 맞춰 보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뜻밖에도 열쇠가 들어가고 자물쇠가 열리는 것이다. 저 그림형제가 그랬을 것처럼, 나 자신 옛이야기들과 만나고 그 뜻을 풀이하면서 거듭 경험하고 있는 신비로운 마법이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 사이를 흘러온 ‘진짜 이야기’들은 이 마법을 언제라도 배반하지 않는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림형제가 옛이야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민간전승 문학은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영원한 샘에서 나오는 영원히 타당한 형식이다.”

  그렇다. 옛이야기는 영원히 타당하다. 그 의미의 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늘 살아있었고, 살아있으며, 살아있을 터이므로. 살아 있으므로 없던 구멍이 생겨나며 작았던 구멍이 커진다. 애정과 믿음 속에 이리 살피고 저리 만지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의 보물창고는 훌쩍 열리게 되어 있다. 찬란한 신세계와 함께.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 브레멘, 또는 서천서역의 문 앞에서

  그림형제가 펼쳐낸 긴 이야기가 ‘열쇠’로 마무리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자, 우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끝이냐고요? 그럴 리가요!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보물 상자는 아직 열리지 않았는걸요.”
  저 보물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브레멘’이나 또는 ‘서천서역’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있을지, 여기서 이리저리 말하면 허튼소리가 될 것이다. 그림 형제도 그에 대한 말을 생략하지 않았던가.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 앞에 그리로 통하는 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 열쇠가 있다는 것. 신비의 만능열쇠가.



* 사진은 독일 동화가도 여행 최종 목적지로 얼마 전 방문한 브레멘의 모습입니다.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저 뒤편 어두운 골목 안에서 한 늙은 악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답니다. 묻지 않더라도, 꿈을 찾아 브레멘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겠지요.

* 돌아보니 그 동안 꽤나 오래 '문학의 아침'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네요. 이제 물러갈 때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봄에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있어야겠지요. 글쎄요. 오늘 이 글이 마지막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이리 갈 수도 저리 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67 업(業)이라는 이름의 미물, 또는 신!
2017.04.05. 19
66 세상을 바꾼 젊은 외침. 아니야, 그렇지 않아!
2017.02.06. 112
65 운수는 바뀐다!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사람..
2017.01.20. 99
64 소수자 도깨비 신의 초상
2016.12.15. 143
63 도깨비! 살아있는 사물과 씨름도 하고 춤도 추고
2016.12.15. 130
62 그새 1년이 지났네요. 이야기 모음집을 출간했습니다.
2016.01.24. 571
브레멘으로 가는 길, 신비의 황금열쇠
2015.01.20. 1125
60 새 책.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2014.12.29. 921
59 요하네스여, 나를 위해 훌쩍 되살아 오기를!
2014.11.26. 818
58 두 나그네와 옛이야기의 정치학
2014.11.01. 739
57 '세눈박이'와 '열두 창문'의 세상
2014.11.01. 869
56 갈피짬. 바르셀로나에서,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
2014.09.30. 792
55 두 형제의 우여곡절과 인생이라는 험로
2014.09.09. 758
54 드넓은 세상의 주먹만한 아이
2014.09.02. 756
53 흰눈이와 빨간장미, 순수와 열정의 삶이란...
2014.08.16. 889


1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