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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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눈박이'와 '열두 창문'의 세상

신동흔

외눈박이, 두눈박이, 세눈박이

어떤 여자한테 세 딸이 있었는데, 첫째는 외눈박이고 둘째는 두눈박이, 셋째는 세눈박이였다. 두눈박이 딸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엄마와 자매한테서 미움과 차별을 받았다. 남은 음식을 조금씩 얻어먹을 따름이었다.

어느 날 두눈박이는 들판에서 염소를 지키면서 배가 고파 슬피 울고 있었다. 어떤 낯선 부인이 와서 사정을 듣고는 염소를 시켜서 상을 차리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두눈박이가 그 말대로 염소한테 상을 차리라고 노래를 하자 맛난 음식이 차려지고 상을 물리라고 노래하자 음식이 사라졌다. 두눈박이는 맛있는 음식을 맘껏 얻을 수 있게 돼서 집에서 주는 거친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두눈박이의 변화를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와 자매는 그를 따라가서 비밀을 알아내고자 했다. 먼저 외눈박이 큰딸이 따라갔는데 동생의 노랫소리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두눈박이는 염소를 시켜 상을 차려서 맛나게 먹고 상을 물렸다. 그 다음에 두눈박이를 따라나선 것은 세눈박이 동생이었다. 두눈박이는 다시 노래를 불러 동생이 잠들도록 했으나 세눈박이는 세 번째 눈을 몰래 뜨고서 두눈박이가 하는 행동을 다 지켜보았다. 그 말을 전해들은 엄마는 둘째가 음식을 못 먹도록 염소를 칼로 찔러 죽였다.

염소를 잃고 슬피 울던 두눈박이는 다시 낯선 부인의 말대로 염소의 내장을 얻어서 문 앞에 심었다. 다음날 그 자리에는 찬란한 나무가 서고 황금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외눈박이와 세눈박이가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려 했지만 나뭇가지가 그들을 피하며 물리쳤다. 두눈박이만이 올라가서 황금 사과를 따올 수 있었다. 엄마와 자매는 사과를 빼앗고 두눈박이를 더 심하게 괴롭혔다.

어느 날 멋진 기사가 그 집을 지나다가 찬란한 나무를 보고 놀라서 주인이 누구냐면서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달라고 청했다. 외눈박이와 세눈박이가 차례로 나섰지만 가지를 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눈박이는 그 일을 쉽게 해냈다. 소원을 묻는 기사의 말에 두눈박이는 자기를 멀리 데려가 달라고 했다. 기사는 기꺼이 두눈박이를 데리고 길을 떠나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찬란한 나무도 쫓아와 함께 했다. 그 후 거지가 돼서 찾아온 두 자매를 두눈박이가 반갑게 맞아하여 보살피자 둘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다.

 

정상과 비정상, 평범함과 특별함

그림형제 민담집에 실린 <외눈박이, 두눈박이, 세눈박이(Einaeuglein, Zweiaeuglein und Dreiaeuglein; KHM130)>의 사연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정상적인 것이 어떻게 비정상으로 몰리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무척 인상적인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의 엄마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긴 두눈박이를 미워하고 외눈박이와 세눈박이를 더 사랑했다는 것은 좀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 엄마도 아마 두눈박이였을 터이고 보면 자기를 닮은 둘째 딸을 더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상식으로 보면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의미 맥락이 좀 다르다. 그 맥락은 외눈박이와 두눈박이, 세눈박이의 상징을 읽어냄으로써 하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눈이 두 개 달린 둘째 딸은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자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달리 외눈박이와 세눈박이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자식들이 된다. 이를테면 눈이 하나인 큰딸은 무언가 한 가지를 특별히 잘하는 자식이고 눈이 셋인 막내딸은 무엇이든 다 잘하는 다재다능한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평범한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엄마는 저를 닮은 딸을 외면하는 대신 이 두 딸한테 기대를 걸고서 그들을 키워주려 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세상에 어떻게든 도드라져 보이려고 하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자식을 전문인이나 연예인으로 키우려고 애를 쓰는 오늘날의 수많은 부모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 실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눈박이로 표상되는 외곬의 삶이나 세눈박이가 상징하는 다재(多才)의 삶이란 실상 흉하게 뒤틀린 비정상의 삶일 따름이다. 그런 비정상의 삶으로는 황금 사과로 표상되는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 그리고 제대로 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된다. 두 눈을 가지고서, 자기 앞가림도 하고 주변도 챙기면서, 정상의 삶을 살아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눈이 두 개라야 대상을 제대로 보고 또 잡을 수 있는 법이다. (이렇게 보면 주인공이 뒤에 언니와 동생을 포용하는 것은 잘 어울리는 일이 된다.)

이러한 해석은 물론 어느 한 가지를 제대로 보는 전문성이나 무엇이든 잘 보고 잘 풀어내는 다재다능함을 격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공을 위한 욕심에서, 또는 남다르게 보여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부러 한 눈을 없애거나 더 만들어내는 왜곡의 삶이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본뜻이 원래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세눈박이의 세상

이 이야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눈박이의 모습이었다. 외눈박이 괴물이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데 비해 세눈박이는 드물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세눈박이가 나타내 보이는 모습에 문득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두 눈을 감고서 잠이 들었으면서도 나머지 한 눈을 살짝 뜨고서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다. 동생을 따라 나가서 그를 살필 때의 모습이다.

이리저리 세상을 살피는 세 개의 눈. 두 개의 눈이 감겨 있는데도 여전히 뭔가를 보고 있는 또 하나의 눈. 그것은 영락없이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나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보려고, 어디 재미있는 거, 그럴듯한 게 없나 찾아보려고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TV, 인터넷을, 또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사람들. 자리에 누워서도 내내 스마트폰을 끼고 있다가 무심중에 집어 들고서 살펴보는 사람들. 그게 바로 세눈박이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스스로 정상이라고 말하겠지만, 영민한 것이라 말하겠지만, 이야기는 그것이 흉한 세눈박이 괴물의 삶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소름!

그림형제가 살던 세상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이 살던 세상은 지금처럼 이렇게 복잡하고 요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 식 비유를 쓰면 외눈박이나 두눈박이는 많어도 세눈박이는 드물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이렇게 세눈박이의 상징을 생생히 살려내고 있다. 몇 백 년 뒤의 세상을 환히 내다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옛이야기다. 다시 한 번, 소름!

 

열두 개 요술 창문

옛날에 한 공주가 높은 성에서 살았다. 그 성에는 사방팔방으로 창문이 열두 개나 달린 홀이 있어서 여기 들어가면 온 세상을 환히 내다볼 수 있었다. 열두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공주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주는 무척 거만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나라를 다스리려 했다. 그녀는 자기가 찾을 수 없게끔 숨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남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남자들이 공주와 결혼하려고 몸을 숨기는 시도를 해봤지만 아무도 그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목이 잘린 채 장대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세 형제가 공주의 남편 자리에 도전해 보겠다고 나섰다. 첫째가 석회굴에 숨고 이어서 둘째가 지하실에 숨어봤지만 단숨에 공주 눈에 띄어서 목이 잘리고 말았다. 다음은 막내의 차례였다. 그는 자기한테 세 번 기회를 달라면서 세 번째도 들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공주는 그가 성공 못할 거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숨을 곳을 찾아 머리를 짜내던 젊은이는 묘안을 못 찾은 채로 사냥에 나섰다. 그한테 까마귀와 물고기와 여우가 차례로 걸렸는데, 은혜를 갚겠다며 사정하는지라 그냥 살려주었다. 그들은 살려준 보답으로 젊은이한테 몸을 숨길 꾀를 내주었다. 먼저 까마귀가 알을 쪼개서 젊은이를 들게 한 다음 그 위에 앉았다. 감쪽같았지만 공주는 열한번째 창문에서 그를 찾아냈다. 다음은 물고기 차례였다. 물고기는 젊은이를 뱃속에 삼키고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공주는 당황했지만 결국 열두번째 창문에서 그를 찾아냈다. 남은 기회는 단 한번. 이번에는 여우가 나섰다. 장사치로 변신한 여우는 젊은이를 물에 담가 군소로 변하게 한 다음 공주에게 팔았다. 젊은이는 여우 말대로 공주 머리카락 속에 들어가 숨었다. 공주가 열두번째 창문까지 옮겨가면서 샅샅이 찾아봤지만 젊은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공주가 창문을 세게 닫자 유리가 부서져 흩어졌다. 공주는 머리카락 속의 군소를 발견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당장 사라지라고 소리쳤다.

다시 사람으로 변한 젊은이가 성으로 돌아가자 운명에 굴복한 공주가 그를 맞이했다. 공주와 결혼식을 올린 왕자는 나라의 왕이자 주인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에 어떻게 숨었었는지 아내에게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보다 한 수 위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존경했다.

 

흥미로운 대결, 흥미로운 결합

이상의 내용은 그림형제 민담 <군소(Das Meerhaeschen; KHM 191)>의 사연이다. <열두 개의 요술 창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야기다. ‘군소는 작은 바다생물의 이름인데 생김새가 토끼와 비슷해서 어부들이 바다토끼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이 생물의 독일 이름인 ‘das Meerheaschen’은 작은 바다토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의 영어 명칭도 바다토끼를 뜻하는 ‘sea hare’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정식 명칭은 군소이니 김경연 번역본이 취한 <군소>가 이 이야기의 정석적인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지만 매우 흥미로운 서사를 갖추고 있다. 젊은 남녀가 아슬아슬한 대결을 거쳐 한 쌍의 부부로 결합하는 과정이 긴장감과 함께 큰 재미를 자아낸다. 세상 모든 것을 눈 아래로 내려보던 공주가 허술해 보이는 평범한 남자를 이기지 못하고 그에게 굴복하게 된다는 반전이 특히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좀 궁금해지기도 한다. 만약 저 남자가 여자의 머리카락 속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공주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말이다. 모르긴 해도 상대에 대한 존경심보다 자기의 어리석음에 울화가 치밀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남자는 끝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었으리라.

이 이야기에서 평범한 젊은이가 놀라운 힘을 갖춘 공주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보잘것없는 동물들한테서 나왔다. 까마귀와 오리와 여우가 그들이다. 젊은이는 총으로 쏴버리면 속절없이 사라질 그들을 죽여 없애는 대신 그들을 존중하여 살려주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다른 세상과 소통함으로써, ‘작은 것들의 힘을 빌림으로써 그는 아무도 못했던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었다. 전에 <하얀 뱀>이나 <세 가지 언어> 같은 이야기에서 보았던, 또는 수많은 난쟁이 이야기에서 보았던 바와 통하는 원형적인 의미요소가 된다. 이 이야기는 특히 주인공 자신이 작은 동물(군소)로 변하는 과정을 담고 있음으로 해서 작은 것의 힘을 더욱 잘 보여준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앞뒤가 꼭 맞게 잘 짜인 서사라 할 수 있다.

 

열두 창문의 세상

<군소> 이야기에서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열두 개 요술창문의 형상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환히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 어찌 보면 그야말로 드넓은 지혜의 창이라 할 수 있다. 또는 활짝 열린 정보의 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주가 그 창문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혼자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은 정보의 힘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공주를 젊은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숨어 있는 새 정보, 작지만 놀라운 힘을 가진 정보(일컬어 노하우knowhow’)로 무장한 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는 한 편의 참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요술창문 이야기가 나한테 전해준 것은 편안한 감동보다 무서운 소름과 전율이었다. 세상을 환히 내다보는, 아무것도 그 아래서 숨을 수 없는 요술창문……. 거기서 내가 직관적으로 떠올린 것은 바로 씨씨티비’(CC TV)였다. 저 위에서 세상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 수많은 씨씨티비의 번득이는 창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일들을 누군가가 위에서 다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물론 이는 그를 통해 범죄를 예방한다고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누가 창문에 눈을 대고서 우리의 발가벗은 모습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말이다.

좀 벗어나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이 열두 창문은 요즘 세상의 신상털기를 떠올리게 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작은 것 하나 제대로 숨기기 어려운 세상. 고성능 레이더를 가동시켜서, 세 개의 눈을 이리저리 돌려서 타인의 숨은 비밀을 속속들이 드러내 밝히고 자신의 성공에 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정보에 감탄하고 굴복하여(이른바, OTL) 열광하는 사람들. 열두 창문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걸려든 사람의 목을 잘라서 매다는 공주와 속절없이 그 공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런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면 과장이 될까?

미셸 오슬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있다. 옛이야기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명작이다. 그림자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발한 기법도 그렇지만 이야기를 해석하는 감각이 무척 놀라운 작품이다. 총 여섯 편의 삽화 중 다섯 번째의 잔인한 여왕과 새 조련사가 바로 이 <군소>를 차용한 것인데, 감독은 배경을 초현대식으로 하고 여왕을 고성능 레이더를 지닌 인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또한 이 오래 된 이야기 속에서 현대적 삶의 상징을 간파한 것이리라. 뒤늦게 영화를 보면서 발견한 이 놀라운 겹침에 또 한 번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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