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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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짬. 바르셀로나에서,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

신동흔

중간에 가족하고 헤어진 뒤 혼자서 훌쩍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열다섯 시간.. 차비는 단돈 1.5파운드. 싼맛에 간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러 고생을 해보려는 것도 아니고.. 머나먼 낯선 길을 땅 위로 한없이 훌훌 움직여 가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서 밟아보려 했다. 밟아도 밟히지 않겠지만... 


몬주익 언덕의 성과 묘지, 황영조가 메달을 따던 경기장, 가우디의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탈루냐 광장 분수대, 사람들로 가득한 람블라 거리.. 그리고 칙칙한 아파트들이 높다랗게 서있는 수많은 좁다란 뒷골목들과 거기 깃들어 움직이는 사람들.. 


산 펠립 네리 광장에 발을 디딘 건 저녁 여덟시가 지나서였다. 이미 어둠이 내린 고딕 지구 작은 뒷골목들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겨우 그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골목 안으로 찾아 들어가 눈앞에 나타난 광장은 자그마했다. 어둠 속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저들은 그저 배경일 따름.. 이 광장의 주인은, 따로 있다. 바람을 닮은 사람들..



저기 벽에 기대고 앉은 저 젊은 여인들,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서 여기로 온 것이리라. 특히나 저 외딴 곳에 혼자 죽치고 앉아 있는 저 여인은..



건물 담벼락에 이렇게 움푹움푹 패인 저건 총탄의 흔적.. 그러고 보면 저것도 바람의 그림자? 총탄이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와 저렇게 자취를 남겼을테니 말이다. 그래. 저 아래에는 내전 당시 무고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핏자국들도 깃들어 있겠지..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 헤매이다 운명의 여인을 만났던 다니엘의 그림자도..


그때였다. 이 사람이 나타난 것은.



흰 정장에 핸드백을 걸친, 어두운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한 저 여인.. 그는 또 무엇을 찾아 이 밤에 여기를 온 것일까..


 

  총탄의 자취 가득한 담벼락 옆에 기대선 저 여인은 떠날 줄을 몰랐다. 내가 광장을 떠나서 골목을 한 바퀴 휘돌고 다시 돌아온 때에도 여인은 그린 듯 저렇게 홀로 서 있었다. 술 마시던 사람들, 분수대에서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 다 떠난 어둡고 쓸쓸한 광장에 저 홀로.. 저이는 또 누구의 '운명의 여인'인 것일까.. 


  다음날 새벽,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섰지만 미로 속의 광장은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람의 그림자처럼.. 그래. 어차피 잡을 수 없는 그것...


  그 누구도 알 리 없이 잠깐 스쳐갔을 따름인 나의 발걸음.. 그 또한 바람의 그림자이리라. 어찌 그 자취뿐일까. 머지 않아 속절없이 '잊혀진 글들의 묘지'에 갇힐 이 허튼 끄적임도.. 그래. 그런들 어떠랴, 바람처럼 흘러가면 그뿐, 이렇게 생각해 보려 하지만, 이 무상하게 흘러가는 길에 거침은 무에 이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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