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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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우여곡절과 인생이라는 험로

신동흔

가을이네요. 여기 독일은 벌써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독일생활(정확히는 유럽생활)이 반년 넘게 흘러갔군요. 무심한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합니다. 그 시간들이 남긴 자취가 없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그림형제 민담에 관한 글 한 편 올립니다. 긴 글입니다. 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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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우여곡절과 인생이라는 험로

그림형제 민담집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다른 모든 이야기보다 압도적으로 긴 한 편의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두 형제(Die zwei Brueder; KHM 60)>다. 쌍둥이 형제의 모험담인데, 솔직히 처음에 이야기 내용이 쏙 들어오지 않았었다. 조금 인위적으로 꾸민 듯 서사 구성이 허술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까 역시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사가 길고 복잡한 만큼 거기 담겨있는 의미요소도 꽤나 다양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여러 층위의 시험들이 복합적으로 포진돼 있다고나 할까. 그 의미의 가닥을 오롯이 꿰어내는 것은 수월치 않아 보이지만 도전해 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시험인 터다.

빛나는 삶이 예약된 아이들

옛날에 심보 사나운 부자 형과 가난하고 성실한 동생이 있었다. 동생한테는 꼭 닮은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은 산에서 금으로 된 새를 발견한 뒤 세 번의 시도 만에 손에 넣었다. 그 새의 비밀을 알고 있던 형은 동생한테 돈을 주고 새를 받은 뒤 아내를 시켜 통째로 굽게 했다. 그는 혼자서 고기를 다 먹었지만 베개 밑에서 금이 나온 것은 쌍둥이 조카였다. 고기를 구울 때 부엌에 들어왔던 쌍둥이 형제가 새한테서 떨어져 나온 심장과 간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화가 난 형은 동생한테 쌍둥이가 악마의 놀음에 걸려들었다고 하여 숲속에 버리게 했다.

버려진 형제는 한 사냥꾼의 눈에 띄어 양자가 되었다. 양아버지한테 사냥을 배운 형제는 얼마 뒤 놀라운 명사수가 되었다. 이제 세상에 나가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하는 형제에게 양아버지는 사냥 도구와 함께 그 동안 모은 금을 내주었다. 또 칼을 하나 주면서 칼날의 상태로 서로의 안위를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길을 나선 형제가 큰 숲에서 만난 첫 사냥감은 토끼였다. 형제가 그 토끼를 살려주고 얻은 두 마리 새끼 토끼를 불쌍히 여겨서 놓아주자 토끼는 형제를 따라왔다. 비슷한 상황이 거듭돼서 형제는 새끼 여우와 늑대, 새끼 곰과 사자를 두 마리씩 얻었다. 동물들은 형제를 따르며 주인으로 받들었다.

간략하게 정리한 <두 형제> 앞부분 사연이다. 내용을 보면 처음부터 설화적 서사 요소가 풍부하다. 악한 형과 선한 동생이라는 대립 요소에 신비한 힘을 지닌 황금 새의 간과 심장이라는 환상적 화소가 곁들여지며 집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양육자를 만난다고 하는 전형적인 영웅담 식 서사가 이어진다. 사냥꾼으로 나선 형제가 동물들을 살려주어 도움을 얻게 되는 것 또한 현실로는 이상하지만 옛이야기에는 잘 어울리는 설정이 된다. 

내용 가운데 먼저 관심을 끄는 것은 황금 새에 얽힌 부분이다. 이야기는 쌍둥이 형제가 새의 간과 심장을 먹은 것을 우연한 일처럼 서술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그러할 뿐이다. 그들이 큰아버지 대신 신비한 능력을 얻게 된 상황의 이면적 의미맥락은 분명하다. 그들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참 주인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늙은 형한테는 황금이 추한 욕망의 대상일 뿐이지만 쌍둥이한테는 존재의 빛에 해당한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아버지 밑에서, 스스로 황금 새를 얻을 수 있었던 아버지 밑에서 쌍둥이 형제는 스스로 빛을 내는 보석 같은 존재로 커가고 있었던 터다. 

저 쌍둥이 형제의 빛나는 가능성이란 숲속에 버려졌다고 해서 가려질 바가 아니었으니, 그들이 사냥꾼의 양자가 되어 멋진 능력자로 성장하게 되는 것 또한 서사적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사냥꾼이 형제의 은인이 되어준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그들은 스스로의 빛으로 세상의 도움을 얻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하늘의 보살핌이 예비되어 있었던바, 사냥꾼은 신의 대리자에 해당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칼을 건네주면서 운명에 대한 예시를 전하는 모습에서 완연한 신적 존재의 형상을 보게 된다. 영웅담에 등장하는 양육자의 전형적 면모다. 

드디어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두 형제의 무한한 가능성은 첫 발자국에서부터 뚜렷이 확인된다. 동물들을 살려주어 그들을 자발적 원조자로 만든 일이 그것이다. 주변의 존재들을 포용함으로써 인생길에 큰 힘이 될 관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니 앞날이 가히 창창하다 할 만하다. 당장은 배고프고 힘들지 모르지만, 곰과 사자까지 포함된 새끼 동물들이 훌쩍 크면 최고의 지원군이 될 테니 최고의 투자라 할 수 있다. 계산이 아닌 진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퇴색할 여지가 없는. 

돌아보면 꽤나 거창한 서두라 할 수 있다. 이어질 영웅적 활약이 어떠할지 기대할 만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빛나는 청춘! 그가 맞서 싸우게 될 첫 상대는 용이다. 일곱 개의 머리로 불을 뿜는. 그래, 그 정도는 돼야 어울릴 것이다.

괴물과의 투쟁, 사람과의 싸움

동물들을 데리고 숲에서 나온 쌍둥이 형제는 헤어져서 살길을 찾기로 했다. 둘은 칼을 나무에 꽂은 뒤 동물들을 하나씩 나눠서 이끌고 반대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형이 한 도시에 이르러 보니 검은 상장(喪章)이 가득했다. 무서운 용이 젊은 처녀들을 잡아가는데 급기야 왕의 외동딸이 잡혀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용을 물리치면 왕의 사위가 되어 나라를 물려받게 되지만 소용없는 일이라 했다. 이미 수많은 기사가 용한테 목숨을 잃은 터였다.

사냥꾼[쌍둥이 형]은 짐승을 데리고 용이 산다는 산으로 향했다. 그는 산속 교회의 제단에서 세 개의 술잔을 발견했다. 술을 마시고 힘이 세진 사냥꾼은 땅에 묻혀있던 검을 뽑아들고 용과 맞섰다. 용이 일곱 개의 입으로 불을 뿜었으나 동물들이 불을 껐으며 사냥꾼은 검을 휘둘러 용의 일곱 개 머리를 베어서 용을 처치했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공주가 기뻐하면서 목걸이를 풀어 동물들에게 나눠주고 사냥꾼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사냥꾼은 용의 혀를 손수건에 챙긴 뒤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사냥꾼과 공주에 이어 그들을 지키던 동물들까지 차례로 잠에 빠졌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장관이 다가왔다. 그는 칼로 사냥꾼의 목을 베고는 공주를 협박해서 자기가 용을 처치한 것처럼 일을 꾸몄다. 속아 넘어간 왕은 공주를 그와 결혼시키려 했다. 공주가 할 수 있는 일은 결혼식을 1년 하루 미루는 것뿐이었다.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나서 보니 주인이 목이 잘려 죽어있었다. 책임을 덮어쓴 토끼는 나는 듯이 달려가 사람 살리는 약초를 구해왔다. 짐승들이 머리를 몸에 붙인 뒤 입에 약초를 넣자 사냥꾼이 되살아났다. 머리가 잘못 붙어 다시 잘랐다가 붙이는 우여곡절을 거친 뒤 사냥꾼은 비로소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슬픔에 싸인 채로 동물들과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던 그가 1년 뒤 다시 도시에 이르러서 보니 다홍빛 천이 가득했다. 다음날이 공주와 장관의 결혼식이었다. 그는 동물들을 들여보내 자기 존재를 알린 뒤 성에 들어가 왕한테 용의 혀를 내보이며 지난 일을 말했다. 그를 알아본 공주가 장관의 악행을 폭로했다. 장관은 처형되고 쌍둥이 형은 공주와 결혼하여 다음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이야기 앞부분에서 기대했던 바와 대략 걸맞는 영웅적 무용담이다. 머리가 일곱이나 달린 용을 보기 좋게 처치하고 공주를 구하는 과정이 그럴싸하다. 거느린 동물들의 도움을 얻는 한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용을 베었으니 통솔력과 해결력을 함께 갖춘 오롯한 영웅[또는 리더]이 된다. 술을 마신 뒤 검을 뽑았다고 하는 삽화—엑스칼리버를 연상시키는—의 의미맥락이 궁금한데, 이 이야기에서 그것은 용기나 자신감, 과단성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교회’와 연결시키면 모종의 신탁(神託)을 받는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의 능력이나 자신감이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터이니 두 요소가 서로 무관치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덧붙이면, ‘술의 힘’이라는 설정에서 약간의 유머가 읽히기도 한다. 따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이 이야기의 디테일에는 유머적인 요소가 꽤 많다.] 

괴물 용과의 싸움은 생각보다 쉽게 끝난다. 단숨에 용을 물리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인공의 능력은 과연 놀라웠던 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시험은 따로 있었으니 ‘사람’과의 싸움이 그것이다. 적이 아닌 동지가 돼야 할 사람의 예기치 않은 배반과 차가운 공격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무방비상태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동물들의 힘으로 되살아나지만, 그가 입은 내상은 크고 깊은 것이었다. 그가 1년간 세상을 덧없이 떠돌아다녔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은 일이 어찌 작은 일일까. 어쩌면 그는 공주조차 믿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거니와, 좌절감을 뿌리치고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큰 아픔과 긴 시간이 필요한 바였다.

어떻든 그는 1년 만에 상황을 극복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그가 진짜였으므로, 그리고 그 증좌가 분명했으므로 하나의 당연한 귀결이 된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용의 혀는 무척 놀랍고 인상적인 화소가 된다. 숨겨진 진실을 표상하는 그것은 ‘완전범죄는 없다’는 말을 연상시키며 ‘진실은 땅에 묻히지 않는다’는 진리를 환기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 물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주와의 의기투합이라 할 수 있다. 공주가 그의 도래를 믿고 기다렸다는 사실이야말로 주인공이 다시금 우뚝 설 수 있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진실의 가치와 함께 인간적 신뢰를 확실히 회복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저 주인공은 완연한 세상의 중심이 되거니와 왕의 자리를 얻는 것은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 전개가 된다. 

이제 이야기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는 말만 더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상치 않은 새로운 사연이 이어진다. 하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날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헤어진 동생과 어떻든 만나야 할 테니 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까지의 사연만으로는 이야기가 좀 뻔하다는 사실이다. 익숙한 삽화들을 그럴싸하게 조합한 데 가까운 모양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상의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뜻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함정

젊은 왕은 왕비와 더불어 즐겁게 살았다. 사냥을 좋아했던 그는 수하의 동물들을 데리고 종종 사냥을 나갔다. 근처에는 유령이 나온다는 숲이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곳이었다. 그 숲에서 꼭 사냥을 하고 싶었던 젊은 왕이 마침내 기회를 얻어 숲에 이르렀을 때 눈처럼 하얀 암사슴이 눈에 띄었다. 그는 사람들과 헤어진 뒤 동물들만 거느린 채로 사슴을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숲에 들어간 젊은 왕은 암사슴한테 홀려 있었다. 잡힐 듯 놓치곤 하던 사슴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는 깊은 숲속에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가 어둠 속에서 불을 지필 때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웬 할머니가 나무에 앉아서 얼어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왕이 내려와 불을 쬐라고 하자 짐승들 때문에 못하겠다면서 자기가 주는 회초리로 짐승을 조용히 시켜달라고 했다. 왕이 나무 회초리로 동물들의 등을 치자 동물들이 조용해지며 돌로 변해 버렸다. 그러자 나무에서 뛰어내린 마녀는 나뭇가지로 왕을 건드려 돌로 만들어 버렸다. 마녀는 웃으면서 왕과 동물을 다른 돌들로 가득한 구덩이에 집어넣었다.

이상이 새로 이어진 뜻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내용을 보면 좀 엉뚱하고 이해가 잘 안되는 쪽이다. “이건 또 뭐지? 갑자기 웬 암사슴이고 저 마녀는 또 뭐야? 아무 힘도 못 쓰고서 돌이 되는 건 또 뭐고…….” 

어떤가 하면 주인공이 돌이 된 이 사건을 축으로 해서 쌍둥이 동생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그와의 만남을 위한 서사적 장치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작문학에서 흔히 활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만약 이것만이라면 무척 허망한 일일 것이다. 최고로 꼽히는 민담집의 가장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단지 ‘그럴듯하게 꿰어 맞춘 것’이라면 말이다. 모름지기 그럴 리는 없다. 필연적이고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맞다. 

이 이야기를 다시금 찬찬히 살펴볼 적에 그 결정적인 무언가가 홀연히 모습을 나타냈다. 그렇다. 저 주인공은 지금 인생의 가장 크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괴물-강적과의 싸움도 아니고 동지-사람과의 싸움도 아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교만적 욕망’과의 싸움. 

빛나는 능력으로 괴물용을 훌쩍 물리쳤으며 배반과 불신이 구렁텅이를 박차고 일어서 세상의 주역으로 우뚝 선 그였다.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고 왕이 되어 즐겁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는 그에게 세상은 다 자기 것이었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기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는 터였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유령의 숲? 그건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거기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하하! 보라구. 나란 말이야!” 그는 그렇게, 0.1%의 망설임도 없이, 금지된 숲으로 훌쩍 뛰어 들어간 것이었다. 

그 결과는 이야기에 나타난 그대로다. 일컬어, 허무한 종말. 숲속의 어둠 속에 고립된 상태에서도 정신을 못 차린 저 사람, 제 손으로 짐승들을 내리쳐 ‘조용하게’ 만든다. 자기의 마지막 보호막을 그렇게 허탄하게 걷어버린 그는 최소한의 저항도 못한 채 가는 나뭇가지에 풀썩 쓰러져 버린다. 차고 넘치던 생명력은 한순간에 싹 증발해 버린다. 빛나던 인생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가. 교만과 방심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함정!

앞서 ‘교만적 욕망’이라 했다. 왜 욕망인가 하면 ‘순백의 아름다운 암사슴’ 때문이다. 저 암사슴이 상징하는 바를 어느 한쪽으로 한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청순한 미모의 여성으로의 연상을 통해 성적 욕망의 함정을 떠올리게 되지만, ‘붙잡기 힘든 욕망의 신기루’ 같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풀이가 더 어울릴 것도 같다. 이를테면 최고의 성공에 대한 환상이나 초월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천상적 행복에 대한 몰입 같은 것. 뻗으면 손에 잡힐 것 같은 그 신기루를 쫓다가 ‘마녀의 함정’에 굴러 떨어져 그간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잃는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허망한 무너짐이다. 그래도 다행한 건 지금 우리는 이야기 속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저 절망의 나락에서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를 준다. 그 구원의 길은 명백하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 그 일은 그동안 오래 기다려 왔던 사람, 쌍둥이 동생의 몫이다. 

혼자 가는 길, 손잡고 가는 길

쌍둥이 형이 돌이 되어 굴에 갇혔을 때, 동생이 나라에 도착했다. 헤어질 때 꽂아둔 칼이 녹슨 것을 보고 형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동물들을 이끌고 성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알고 반겨 맞았다. 왕비는 그한테 왜 그리 늦었느냐고 물었다. 당분간 형으로 행세하기로 한 동생은 밤에 왕비와 누우면서 중간에 칼날을 세워서 그녀가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며칠 뒤 그간의 사정을 알아낸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형이 갇힌 숲으로 향했다. 그가 하얀 암사슴을 쫓아서 숲속 깊이 들어가 불을 피우자 마녀가 나타나 그를 꼬드겼다. 하지만 동생은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마녀한테 방아쇠를 당겼다. 마법이 안 통하는 은단추 총알에 맞아 떨어진 마녀는 동생이 시키는 대로 돌들을 사람으로 되돌렸다. 마녀를 불태운 뒤 숲을 벗어난 쌍둥이 형제가 함께 귀환하자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다. 왕비는 짐승한테 선물했던 목걸이로써 겨우 진짜 남편을 가려낼 수 있었다. 왕비가 젊은 왕한테 침대에 칼날을 세운 이유를 묻는 말을 들으며 형은 동생이 얼마나 믿음직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게 이야기의 끝이다. 길고 복잡하게 이어진 사연에 비하면 다소 불완전한 결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저 동생은 자기 안의 욕망이라는 가깝고도 무서운 함정에 마침내 빠져들지 않음으로 해서 형을 구했으니 꼭 맞는 결말이 된다. 얼핏 싱거워 보이지만 실은 가장 큰 싸움이었던 터다. 이야기에서 그가 노파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은 것과 침실에 칼날을 세운 것은 본질이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일컬어, 냉철한 이성. 신기루 같은 욕망의 함정에서, 뭐든 용납되고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교만의 함정에서 존재를 구한 것은 차가운 이성이었다. 열정이 순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감성/욕망은 이성/윤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라는 머나먼 험로를 온전히 헤쳐나갈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다. [말은 쉽지만 실상은 얼마나 어려운지. 이 이야기만 하더라도 되살아난 형이 자기 아내의 남편 행세를 한 동생을 질투해서 목을 벴다가 후회하고서 다시 붙이는 과정이 포함돼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인간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저 두 형제의 관계다. 꼭 닮은 쌍둥이인 저 두 사람을 ‘인간의 두 자아’로 해석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해석할 바가 아닌 듯하다. 쓰러진 형을 일으키는 저 동생은 혼자 힘으로 바이 감당하기 힘든, 어느새 길을 잘못 들어 비트적대곤 하는 우리 존재를 곁에서 지켜주고 일깨워주는 동반자의 표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현실에서 그가 꼭 형이나 동생이어야 할 이유는 물론 없다. 부모, 스승, 형제자매, 친구, 동료, 선후배, 그 밖의 수많은 지인들이 다 그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아내나 남편도! 힘들 때 서로 붙잡아주고 일으켜 줄 믿음의 동반자. 뜨겁게 손잡고서 나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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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입니다. 이 밑에까지 스크롤 내려서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가을에 큰복 받으실 거예요! 하하.

(낯선 땅에 멀리 있어서인가 봐요. 속깊은 이야기 나누며 함께 걸어갈 동반자들이 자꾸 그리워지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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