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922

프린트하기

흰눈이와 빨간장미, 순수와 열정의 삶이란...

신동흔



<흰눈이와 빨간장미>, 상징으로 충만한 이야기

<<옛날 옛날에 두 자매가 살았다. 집에 피어난 하얀 장미와 빨간 장미를 닮은 아이들이었다. 한 명은 ‘흰눈이(Schneeweißchen)’라 불렸고, 또 한 명은 ‘빨간장미(Rosenrot)’라 했다. 둘은 믿음이 깊고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하며 끈기가 있었다. 성격은 좀 달랐다. 빨간장미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꽃과 나비를 잡았고, 흰눈이는 집에서 엄마의 일을 돕고 책을 읽었다. 둘은 밖으로 나갈 때 늘 손을 잡고 다녔다. “우리 서로 헤어지지 말자.” “그래. 살아 있는 한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

그림형제 동화 <흰눈이와 빨간장미(Schneeweißchen und Rosenrot; KHM 161)>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상징으로 가득하다. 하얗고 차분한 아이와 붉고 발랄한 아이. 그 두 아이로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은 ‘순수’와 ‘열정’이다. 흰색과 빨간색의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그 두 가치요소가 쌍둥이처럼 늘 함께 한다는 건 무척이나 인상적인 일이 된다. 둘이 함께 손잡고서 나아가는 삶은 어떤 색깔이 될까?

이 화두와 관련하여 백설공주를 되돌아보게 된다. 백설공주의 원 이름은 ‘Schneewitten’으로 흰눈이의 ‘Schneeweißchen’과 아주 비슷하다. 둘 다 백지 같은 순수의 존재라는 사실도 긴밀히 통한다. 순백의 백설공주가 밟아간 길은 아득한 버려짐과 죽음 같은 쓰러짐을 수반하는 길이었다. 그것은 마치 ‘순수’가 맞닥뜨려야 할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 흰눈이 옆에는 빨간장미가 있다. 순수의 곁에 열정이 늘 함께 하는 삶. 그 행로가 백설공주 홀로 나아간 길과 같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숲속을 돌아다니며 빨간 딸기를 땄다. 그들은 해치는 짐승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다정히 모여들었다. 토끼가 두 아이한테 먹이를 받아먹고 노루와 사슴이 옆에서 노닐었으며 위에서 새가 노래를 불렀다. 밤이 돼도 걱정이 없었다. 둘은 이끼 위에 누워서 평안하게 잠을 잤다. 어느 날은 절벽 바로 옆에서 잠들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얀 옷을 입은 아기천사가 그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보기 드물 정도로 평화로운 서사다. 원래 숲속은 위험으로 가득한 곳이다. 사나운 짐승들이 가득하며 곳곳에 장애물과 함정이 잠복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밤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딛는 발 앞쪽이 아득한 절벽일 수 있다. 그런데 저 두 아이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동물들이 스스로 친구가 되어주고 하늘이 나서서 그들을 돌보아준다.

좀 뜻밖으로 여겨질 정도의 이러한 순조로운 전개는 흰눈이와 빨간장미로 표상되는 두 미덕의 조화로운 결합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 순수와 열정의 조화이며, 좀더 확장해서 말하면 소박함과 화려함, 침착한 돌아봄과 활발한 행동력의 조화이다. 동양 식으로 말하면 음(陰)과 양(陽)의 조화가 된다. 그 두 개의 미덕이 서로 어울리자 두 배가 아닌 열 배, 백 배의 힘이 우러난다. 그 기운이 워낙 밝고 강하다 보니 동물로 표상되는 주위 존재들이 두루 거기 이끌려 들어와 평화를 누리는 중이다. 이야기는 아기천사가 함정으로부터 소녀들을 지켜주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실상 그들 스스로 낸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숲속의 깜깜한 어둠도 충만한 조화에서 우러나는 밝은 빛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불쑥 집을 찾아온 커다란 곰, 하지만

거친 숲속에서 저러했을진대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사는 집이 안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기쁨이 절로 우러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또한 조화에서 피어난 힘이었다. 여름에는 빨간장미가 집을 돌보며 꽃다발로 장식하고 겨울에는 흰눈이가 집을 돌보며 불을 지폈다고 하니 흐르는 흐르는 시간 속에 펼쳐지는 음양의 아름다운 조화가 된다. 상상해 보라.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두 아이가 따뜻한 화로 곁에서 어머니의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옆에는 양이 눕고 뒤에는 하얀 비둘기가 앉아 있다. 이보다 더 조화롭고 평화로운 정경을 다시 보기 어렵다.

<<어느 날 저녁, 다들 다정하게 앉아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빨간 장미가 빗장을 열었더니 곰이 두툼한 고개를 문속으로 들이밀었다. 빨간장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팔짝 물러섰다. 양은 매애 울고, 비둘기는 파드득 날아오르고, 흰눈이는 어머니 침대 뒤로 숨었다.>>

그렇다. 그런 평화뿐이라면 어찌 이야기가 될까. 뭔가 일이 펼쳐져야 맞다. 아름답고 강력한 조화라지만 모든 도전과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곰이든 늑대든, 무언가가 찾아오게 되어 있다. 저들이 누리는 평화가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지게 되는 시점이다. 

겨울밤에 숲으로부터 집으로 불쑥 찾아온 곰은 거친 야성을 표상하는 존재이다. 순치되지 않은 야성과의 예기치 않은 맞닥뜨림이란 그 자체로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 된다. 그가 거친 발을 사납게 휘두르면 두 소녀 정도는 한꺼번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야만적인 물리력 앞에 소박한 미덕에 기초한 평화와 행복이란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이야기 속에서 두 소녀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숨었다고 되어 있는 것은 무척이나 현실적인 일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작은 반전이 일어난다. 크고 거친 저 곰은 알고 보면 꽤나 온순한 존재였다.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그를 공격해서 내쫓으려 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다가가서 몸의 눈을 털어주고 불을 쪼이게 하자 곰은 금세 좋은 친구가 된다. 어떤 정도냐면 오히려 두 아이가 곰한테 짓궂은 장난을 치게 될 정도로. 

<<그들은 손으로 곰의 털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등 위에 발을 올려놓기도 했으며, 곰을 이리저리 굴리기도 했다. 개암나무 회초리로 등을 때리기도 했으며, 곰이 으르렁거리면 깔깔 웃었다. 곰은 그 장난을 다 받아주었다. 다만 장난이 너무 짓궂으면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살려줘 얘들아. 흰눈아 빨간장미야, 그러다가 신랑감 맞아죽겠다.”>>

바깥세상에서 밀어닥친 험한 위험과의 대면은 이렇게 싱겁게 해결이 된다. 험상궂은 곰마저 큰 어려움 없이 무난히 순치시킨 터이니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펼쳐내는 미덕과 조화의 힘은 과연 대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들이 곰을 상대로 해서 펼치는 장난에는 그들의 충만한 자신감이 배어 있다. “우리의 빛으로 세상 누구라도 밝힐 수 있어. 우리 둘이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지! 사나운 곰도 이렇게 순한 친구가 되어주는걸.” 

어떤가 하면 지금이야말로 위험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세상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움직여갈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은 무서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어떤가 하면 저 곰은 본래 온순한 존재였다. 난쟁이의 마법에 걸려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착하고 멋진 왕자였다. 그런 까닭에 손쉽게 두 소녀의 빛을 받아들이게 된 터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그런 존재뿐일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존재가 훨씬 더 무서울 수 있다. 

이제 그런 적이 등장할 차례다. 그가 누구냐면 왕자를 곰으로 만들어 버린 난쟁이다. 아주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세상 어떤 빛도 스며들 틈을 보이지 않는 깐깐하고 사나운 존재다. 두 소녀는 제 힘으로 그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난쟁이와의 세 번의 만남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숲에서 땔나무를 줍는데 수풀 사이에서 무언가 폴짝폴짝 뛰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난쟁이가 갈라진 나무 틈에 수염이 끼여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난쟁이는 빨리 자기를 도우라고 호통을 쳤다. 아무리 해도 수염이 안 빠지자 흰눈이가 가위를 꺼내 수염 끝을 잘랐다. 난쟁이는 고맙다는 말 대신 귀한 수염을 잘랐다고 화를 내면서 숨겨뒀던 금 자루를 움켜쥐고 사라졌다.

얼마 뒤 두 아이는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다시 난쟁이를 만났다. 난쟁이는 낚시를 하다가 수염이 낚싯줄에 얽혀서 물속에 끌려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수염을 풀려고 낑낑대던 아이들은 다시 가위를 꺼내 수염을 잘랐다. 난쟁이는 다시 화를 벌컥 화를 내면서 꺼지라고 욕하고는 진주가 든 자루를 끌고서 사라졌다. 

그 후 도시로 가는 길에 두 아이는 황야에서 다시 난쟁이를 만났다. 그들은 막 독수리에게 잡혀가려는 난쟁이를 붙들고서 힘껏 독수리와 싸워서 난쟁이를 구해냈다. 하지만 난쟁이는 “그렇게밖에 못하겠어? 너희들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옷이 다 상했잖아. 망할 녀석들 같으니라구!” 째지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면서 보석 자루를 들고 바위 아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 격이다. 꼼짝없이 죽을 처지에 있는 자기를 살려준 은인한테 저런 식으로 대하다니 기가 막힐 정도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삼세번이나 말이다. 선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어떻게 해도 화를 내면서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꽉 막히고 뒤틀린 존재다.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만 있는, 적의(敵意)로 가득한 존재!

무엇이 저 난쟁이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이야기 속에 답이 나와 있다. 그가 마치 목숨처럼 챙기는 ‘자루’가 그것이다. 자루에는 금과 진주, 그리고 보석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지만, 난쟁이에게 있어 그것은 추한 탐욕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어떻게든 보석을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버둥댔을 저 난쟁이는 물건에 사로잡힌 노예였다. 빛을 물론이고 어둠조차 스밀 구석이 없는 강퍅한 존재.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펼쳐내는 빛은 그에게 짜증의 대상이었을 따름이다. “그것 좀 치우지 못해! 꺼지라고!”

흰눈이와 빨간장미한테 그것은 뜻밖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보면 기꺼이 사랑해 마지않는 것이 그들이 지나온 길이었다. 그들이 예의 순수함과 발랄함으로 활짝 웃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활짝 개게 되는 터였다. 그런데 그들이 발벗고 나서서 온 힘을 다해서 구해준 이한테서 저런 차갑고 쓰디쓴 반응이라니! 마음이 상하고 기가 꺾여서 화기(和氣)가 사라질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저 아이들, 대단하다. 그런 상황을 한번, 또 한번 겪고서도 또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난쟁이를 돕는다. 왜 그리 하는가 하면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순수와 열정의 존재였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저 늘 하던 대로, 몸에 배어 있는 대로 자기네 빛을 펼쳐낼 따름이다. 누군가가 그 빛을 거부한다면 그건 그의 문제일 뿐이다. 

<<소녀들은 그의 배은망덕한 행동에 익숙해 있던 터라, 그냥 그곳을 떠나 시내에서 자기들 볼일을 보았다.>>

꽤나 쿨한 모습이다. 나는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나타내 보이는 이러한 쿨함이 그 또한 둘이 함께 하는 조화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흰눈이 혼자였다면 상심해서 슬픔에 젖었을지 모르며, 빨간장미 혼자였다면 격동해서 분노에 휩싸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서로 어울려 힘을 내고 있기에 이런 황당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훌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낯을 찌푸리면서 공격해온 난쟁이를 도리어 무색하게 만들면서.

왕자의 두 길, 그리고 우리의 길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시내에서 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황야에서 다시 난쟁이를 만났다. 난쟁이는 동굴에서 나와 자루의 보석을 쏟아놓고 살펴보는 중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보석을 지켜보는 두 소녀에게 난쟁이가 화를 내면서 꺼지라고 욕할 때에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곰이 나타났다. 난쟁이가 놀라 피하려 했지만 늦은 뒤였다. 난쟁이는 곰에게 살려 달라고 빌면서 보석을 갖고 소녀들을 잡아먹으라 했다. 곰은 그 말에 아랑곳없이 앞발로 난쟁이를 쳐서 죽여 버렸다. 

곰이 두 소녀 앞에 서는가 했더니 흉한 가죽이 벗겨지며 금빛 찬란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나는 왕자란다. 내 보물을 훔쳐간 못된 난쟁이가 마법을 거는 바람에 사나운 곰이 됐었지. 이제 난쟁이가 죽어서 마법이 풀린 거야.”>>

저 난쟁이는 애지중지 감추어두던 보물을 왜 동굴에 끌어내서 펼쳐놓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자기의 모욕적인 공격에도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고 아무 일 없는 듯 갈 길을 가는 흰눈이와 빨간장미를 보면서 제풀에 성이 난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난쟁이는 이렇게 씩씩거리지 않았을까? “흥! 니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너희들한테 이런 멋진 보석 있어? 있냐고! 이게 다 내 거란 말이야!”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빛나는 보석 옆에서 더 흉하고 볼품없었을 저 난쟁이는 결국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그가 세상에 드리운 탐욕과 적의라는 마법은 무척이나 음험하고 강력해서 잘 나가던 왕자를 곰으로 바꾸는 힘을 냈지만 그것은 실상 자기를 가둔 감옥이었으며 마지막 한 방울의 온기마저 쥐어짜낸 고문 도구였다.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채로 적의만 가득한 그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다만 무서운 것은 그런 적의가 펼쳐내는 파장이 무척이나 크다는 사실이다. 거기 휘감겨 스스로를 잃었던 왕자가 난쟁이를 쳐서 죽이는 것은 그러므로 필수적인 과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난쟁이의 적의에 사로잡혔던 왕자가 난쟁이를 쳐 없애고 흉한 가죽을 벗는 일이 어찌 가능했는지 그 맥락 또한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다. 저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펼쳐내는 구김 없는 순수와 열정의 빛을 흡수함으로써 저 사람은 자신을 휘감고 있던 적개심과 분노, 또는 무력감과 절망감의 허울을 걷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나고 보면 아주 간단한 그 일이 무에 그리 힘들어서 그 긴 시간을 어둠 속에서 방황한 것인지…….

이야기는 흰눈이가 왕자와 결혼하고 빨간장미는 왕자의 동생과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끝맺어진다. 갑자기 등장한 ‘왕자의 동생’만 제외하면 아주 자연스럽고 완벽한 결말이 된다. 다음과 같은 마무리 표현은 또 얼마나 어울리는지.

<<그들이 사는 집 창가에는 해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났다. 하얀 장미와 빨간 장미였다.>>

끝내 서로를 배반하지 않은, 변함없는 동반자가 되어 함께 움직인 순수와 열정의 삶 앞에 좌절은 없었다. 별다른 큰 시련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손쉽게 이루어진 일일 리 없다. 순수와 열정을 함께 지켜가면서 변함없이 제 길을 가는 일이란 실상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어떻게든 할퀴고 물어뜯어서 흠집을 내려는 적의의 존재가 곳곳에 도사리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이야기 속 난쟁이보다 더 집요하고 악랄한 키보드 워리어 악플러들!]

어떻든 공은 이제 우리한테 넘어와 있다. 저 변함없는 순수와 열정의 존재이기 어려운, 그렇다고 설마 가망 없는 난쟁이는 아닐, 십중팔구 곰 가죽을 쓴 왕자와 비슷한 자리에 있을 우리들이 과연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자꾸만 몸을 조여들려고 하는 곰가죽을 우리는 과연 벗어던질 수 있을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들을 찾기가 어려운 일일 거라고? 아니, 그렇지 않다.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 곁에 있다. 저기 정원에 들판에 흰꽃 붉은꽃 가득 피어있고 하늘에서 밝은 빛 한가득 내리고 있지 않은가. 저기 저 사람, 나를 향해 밝은 미소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 사진은 독일 카셀의 주택가를 산책하다가 만난 어느 집의 정원입니다. 정원 앞에 쉬다 갈 수 있도록 벤치도 놓여 있었지요.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67 업(業)이라는 이름의 미물, 또는 신!
2017.04.05. 75
66 세상을 바꾼 젊은 외침. 아니야, 그렇지 않아!
2017.02.06. 158
65 운수는 바뀐다!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사람..
2017.01.20. 140
64 소수자 도깨비 신의 초상
2016.12.15. 216
63 도깨비! 살아있는 사물과 씨름도 하고 춤도 추고
2016.12.15. 184
62 그새 1년이 지났네요. 이야기 모음집을 출간했습니다.
2016.01.24. 615
61 브레멘으로 가는 길, 신비의 황금열쇠
2015.01.20. 1187
60 새 책.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2014.12.29. 959
59 요하네스여, 나를 위해 훌쩍 되살아 오기를!
2014.11.26. 852
58 두 나그네와 옛이야기의 정치학
2014.11.01. 765
57 '세눈박이'와 '열두 창문'의 세상
2014.11.01. 910
56 갈피짬. 바르셀로나에서,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
2014.09.30. 824
55 두 형제의 우여곡절과 인생이라는 험로
2014.09.09. 787
54 드넓은 세상의 주먹만한 아이
2014.09.02. 794
흰눈이와 빨간장미, 순수와 열정의 삶이란...
2014.08.16. 923


1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