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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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이라는 이름의 미물, 또는 신!

신동흔

지금 집필중인 책의 한 꼭지 올립니다. 신화의 일환으로 업() 설화에 대하여 소개한 글입니다. 서너 편의 설화에 이어서 자료 출처와 이야기 해설이 이어집니다.  삶의 주변에서 갸륵한 신화들을 찾아내시기를 기원하며!

 

구렁이를 모셔 부자 된 사람

옛날에 강원도 횡성에 원세덕이라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다. 이자가 아주 비싼 장리쌀을 빌려서 겨우 끼니를 때우고는 힘들게 품을 팔아서 빚을 갚곤 했다.

그해도 원세덕은 벼를 한 가마니 빌려서 지게에 지고서 고개를 넘고 있었다. 볏가마니가 원래 껍질이 많아서 그리 무겁지 않은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아주 무거웠다. 가마니에 돌멩이가 들어있나 싶어서 열고서 살펴보니까 뜻밖에도 볏가마니 안에 구렁이가 한 마리 들어앉아 있었다.

애고, 네가 내 복이로구나.”

원씨는 이렇게 말하고 가마니를 그대로 싸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광 밑에다가 내려놓고는 그 앞에 밥을 갖다놓으면서 말했다.

네가 내 복이면 이 밥을 먹어라.”

그러고서 문을 닫고 있다가 와서 보니 밥이 사라지고 없었다. 원씨가 다시 또 밥을 갖다 놓자 그 밥도 보이지 않는 사이에 없어졌다.

그렇게 구렁이를 들여서 살기 시작한 뒤로 이상하게 원씨는 일이 잘 풀려서 살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씨를 며느리로 들였는데 살림이 더 불어나서 근동에서 손꼽는 부자가 되었다. 그 집안은 다섯 대가 넘도록 재물을 유지하며 오래오래 잘 살았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돼지

예전에 한 사람이 부모형제 없이 외톨이로 숯장사를 하면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사람이 성실하다는 소문이 나자 어떤 노인이 중매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총각이 반가워하면서 여자를 보았는데 키가 작고 머리가 노란데다 지저분해 보여서 마음이 안 갔다. 그때 노인이 총각한테 넌짓 말했다.

보게. 자네가 일가친척도 없고 살림도 없는데 달리 어디를 가려고 그러는가? 실은 저 처녀 뒤에 작은 돼지새끼가 하나 따라다닌다네. 꿈도 돼지꿈이 좋다고 않던가. 무조건 장가를 들게나.”

노인이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마음을 고쳐서 그 처녀와 결혼을 했다. 물을 떠놓고 혼례를 치러서 살림을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일들이 술술 풀리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었다. 살림이 뽀독뽀독 일어나서 점점 살기가 좋아졌다. 여자도 단장을 하고 보니까 그리 밉지 않았다.

어느 덧 부자가 되고 자식까지 낳아서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여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웬 일인지 돼지가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오니 큰일입니다. 살림이 줄어들려나 봐요.”

내외가 함께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해 질 무렵이 되자 돼지가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뒤로 총을 든 포수가 하나 따라 들어오면서 말했다.

이리로 금방 멧돼지가 왔는데 못 봤습니까?”

돼지는 무슨 돼지입니까? 못 봤습니다.”

포수는 이상한 일이라며 툴툴거리다가 부부한테 말했다.

해도 저물고 했는데 여기서 하룻저녁 자고 갈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리하십시오.”

함께 밥을 차려서 먹고서 잠자리에 누웠는데 한밤중이 되자 밖에서 사방이 쿵쿵거리며 야단법석이 났다. 나쁜 패거리가 그 집을 털려고 몰려온 것이었다. 주인 부부가 무서워 떨고 있을 때 포수가 총을 꺼내서 하늘로 공포를 탕탕 쏘았다. 그러자 몰려왔던 패들이 깜짝 놀라서 달아나 버렸다.

그때서야 주인 부부는 돼지가 집을 지키려고 포수를 데려온 사실을 깨달았다. 얘기를 들은 포수 또한 신기하게 여기며 감탄했다. 부부는 포수를 잘 대접해서 보내고 오래도록 부자로 잘 살았다.

 

두꺼비의 보은

옛날 어느 마을 가난한 집에 처녀 하나가 살고 있었다. 부모를 도와 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저녁에 밥을 지어서 그릇에 담으려 할 때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나서 앞에 쪼그려 앉았다.

두껍아. 어디서 이렇게 왔니?”

처녀가 밥알을 몇 개 집어서 주자 두꺼비는 기다렸다는 듯 받아먹었다. 그 후로 두꺼비는 밥을 차릴 때마다 나타났고 처녀는 다독거리면서 밥을 주었다.

처녀가 살던 마을은 해마다 섣달그믐이 되면 처녀를 굴 앞에 제물로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이 망한다고 하여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일이었다. 제비를 뽑아 제물로 바칠 처녀를 골랐는데 그 해에 하필 그 처녀가 딱 걸렸다. 섣달그믐이 되자 처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마지막으로 두꺼비한테 밥을 주었다.

두껍아 두껍아,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나하고 사귄 지 어느 새 삼년이 됐구나. 나는 부모도 못 모시고 시집도 못 가고 오늘 저녁에 죽는다. 나를 제물로 바치면 호랑이가 물어가는지 귀신이 잡아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구나. 이제 나를 더는 기다리지 마라.”

저녁이 되자 처녀는 새 옷을 갈아입은 채로 제물이 되어 굴 앞의 제각에 앉혀졌다. 사람들이 제사를 마치고 내려간 뒤 처녀가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자니 자기가 밥을 주던 두꺼비가 기어 들어왔다. 처녀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두꺼비를 쓰다듬었다.

어찌 내가 여기 온 줄을 알고서 찾아왔니? 고맙다 두껍아!”

밤이 한창 깊었을 때 처녀는 깜빡 졸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서 눈을 떴다. 보니까 천장에서 세 발이나 되는 커다란 지네가 쉬쉬 소리를 내면서 입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네를 향해 두꺼비가 독을 뿜으며 싸우고 있었다. 서로 독을 뿜으며 싸우는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처녀는 질색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있다가 팡 소리가 나기에 눈을 떠보니 지네가 죽어서 떨어져 있었다. 두꺼비도 그 옆에 쓰러져 있었다.

날이 새서 동네 사람들이 올라와 보니까 제각 안에 커다란 지네와 두꺼비가 죽어 있고 처녀가 쓰러져 있었다. 살펴보니까 처녀는 아직 죽지 않고 생명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물을 먹이고 몸을 주무르자 처녀가 눈을 뜨면서 살아났다. 처녀가 밤에 있었던 일을 사람들한테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모두들 깜짝 놀랐다.

이후 그 마을에는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속이 사라지게 되었다.

 

등짐장사가 업은 업

한 사람이 강원도 열두 고개 마을에서 등짐장사를 했다. 숯을 짊어지고 열두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40리씩 걸어 넘으며 장사를 했다. 열일곱살부터 스무 해가 넘도록 매일같이 고개를 넘어다녔지만 고단한 처지를 면할 수 없었다. 고개 양쪽에 주막이 있는데 그 집에서 자고 먹으면 돈이 다 떨어졌다.

내가 이십 년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 일이 없으니 차라리 죽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 등짐장사는 가진 돈을 다 털어서 돼지 다리 하나와 술 한 말을 샀다. 그는 지게를 마당에 세워놓고 그 위에 술과 고기를 차려서 절을 하고는 지게에 술을 뿌리면서 말했다.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이제 우리가 이별이다.”

그때가 동지섣달이었는데 마을 안에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 등짐장사는 열두 고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고개 위에 돌을 모아놓은 서낭당이 있는데 거기 앉아서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고개를 올라가 서낭당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게 보였다. 세살쯤 되어 보이는 빼빼 마른 아이 하나가 돌무더기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등짐장사는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차마 그대로 놔두고 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를 등에 업고서 다시 주막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가 아이를 업은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술과 밥을 주었다.

이상하다. 그렇다면 내가 업은 게……

그 사람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아이를 업은 채로 강릉의 소문난 부자 과부를 찾아갔다.

내가 그물을 놓으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아는데 자본이 없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주인이 아무 조건 없이 선선히 큰 자본을 대주었다. 등짐장사는 그 돈으로 바다에 큰 어장을 만들고 고기를 많이 잡아서 한없이 큰 부자가 되었다. 강릉땅 이부자가 그 사람이다.

그가 부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개에서 업은 아이가 업()이라서 복을 받은 것이었다.

 

[자료 설명]

민가에서 일종의 신처럼 여기는 업()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자료는 대개 <<구비문학대계>> 등의 설화자료집에서 뽑았으며, 세부내용을 일부 가감하면서 맥락을 가다듬어 징리했다. [출처] <구렁이를 모셔 부자 된 원세덕> :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강원의 설화>> 2, 2005. / 조석준 구연 <행운을 가져다주는 돼지> : <<한국구비문학대계>> 5-4, 1984. / 김상태 구연 <등금장사가 업은 업> : <<한국구비문학대계>> 7-5, 1980.

  

이야기 해설


혹시 ()’이라는 말 들어봤는지 궁금합니다. 집에 깃들어서 사는 구렁이와 족제비, 두꺼비 등을 업이라고 하지요. 구렁이업, 족제비업이런 식으로 말해요. 업구렁이, 업족제비이렇게 부르기도 하고요. 지역에 따라 돼지업도 있고 인업이라고 하여 사람을 업으로 치기도 합니다. 업이 깃들어 있으면 집안에 닥치는 나쁜 일을 막아주고 부자가 되게 해준다고 여겨 왔지요. 일종의 가정 수호신이자 재물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을 붙여서 업신이라고도 하지요.

집안 어딘가에 구렁이나 족제비, 두꺼비 같은 동물이 깃들어 살고 있다는 것. 좀 꺼림칙하지 않나요? 구렁이는 물론이고 두꺼비와 족제비는 보기에 예쁜 동물이 아닙니다. 흉하고 징그러운 쪽이지요. 모습을 보면 섬찟 놀랄 정도예요. 그런 흉측한 동물 따위는 아예 집 근처에 얼씬도 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꾸 마음이 쓰이잖아요. 뭔가 해를 끼칠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옛사람들은 흉해 보이는 이런 동물한테 기꺼이 집 한 구석을 내주었지요.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하고, 신처럼 여겨서 정성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들은 집에 해를 끼치는 동물이 아닙니다. 구렁이는 독사와 달리 독이 없어서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두꺼비와 족제비도 사람에게 해가 없습니다. 구렁이 같은 경우 쥐나 해충을 막아서 곡식을 지켜주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요. 집에 해가 되면 방비해야겠지만, 따로 해가 되지 않는데 보기 싫고 마음에 시끄럽다는 이유로 쫓아낼 일은 아니겠지요. 어차피 눈에 잘 띄는 동물도 아니니 알아서 집 한 구석에 알아서 살도록 두자는 게 옛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라는 게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지요. 사람이 사는 집도 그 재료들은 자연에서 온 것이지요. 집 한 구석을 자연의 미물들한테 내주는 것은 순리에 맞는 일입니다.

귀찮고 꺼림칙한 존재들을 이렇게 동반자로 받아들이니까 아주 흥미로운 일이 생겨납니다. 구렁이와 돼지를 들인 집안이, 가엾은 아이를 업은 사람이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인생역전을 이루지요. 돼지는 강도로부터 집을 지켜주는 신통력까지 발휘합니다. 밥을 얻어먹은 두꺼비는 처녀의 목숨을 구해주어 집안을 온전히 하고 마을의 폐단까지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요. 보통 이 설화 속의 두꺼비를 업으로 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수호신 업 구실을 했다고 할 만합니다. 그 또한 흉한 미물을 외면하거나 내치는 대신 동반자로 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지요.

넷째 이야기 속의 인업은 어떠한가요? 눈여겨볼 사실은 그 인업이 훌륭한 귀공자나 건장한 청년 등이 아니라 갈곳없는 가여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버려진 아이나 노인 등이 업으로 말해지지요. 구렁이나 두꺼비 등과 마찬가지로 힘없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자 사람들 입장에서 기껍지 않은 대상입니다. 모른 척 외면하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이야기는 이들이 바로 복덩어리이고 신()이라고 말합니다. 손을 내밀이서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신령한 일이 일어나게 되지요. 이거 정말 신기하고 멋지지 않나요!

업신은 앞에서 살핀 성주신이나 터주신, 조왕신처럼 정식으로 신 대우를 받아온 존재는 아니에요. 말 그대로 미물에 가깝지요.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을 건넬 때 신들을 대할 때와 달리 편안하게 반말을 하곤 합니다. 업 신앙은 위에 대한 존숭이라기보다 아래에 대한 포용이라고 할 만합니다. 먹고살기 힘든데 그것까지 챙겨야 되나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더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높고 귀한 존재는 누군가라도 챙기겠지만, 내 곁에 있는 작은 존재들을 다른 누가 보살피겠어요.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귀하게 보살피는 그 손길은 큰 기적을 가져옵니다. 가난이 풍요로 바뀌고, 냉기가 온기로 바뀌며, 죽음이 삶으로 바뀌지요. 갈등은 공존과 평화로 바뀌고, 고독과 고통은 행복으로 바뀝니다. 이거야말로 우리 삶을 저 밑바탕에서 빛나게 하는 신령한 힘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도 일종의 신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화라는 건 멀리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지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신화입니다.

이들 업 설화를 포함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우리의 신화는 신령하고 성스러운 삶이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존재들을 진심으로써 포용하는 삶이 그 자체로 신성하다고 말합니다. 그 동안 거듭 이야기해 왔지만, 신성은 우리 가까운 곳에 두루 깃들어 있지요. 내 곁의 가족과 친구들, 동물과 미물들, 그리고 물론 우리 자신에도요. 내 안의 신과 내 곁의 신이 서로 어울려 통하는 아름다운 삶. 그 삶을 풀어내는 당신이 바로 신화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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