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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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젊은 외침. 아니야, 그렇지 않아!

신동흔

잉카 옛이야기 <농민의 아들>
세상을 바꾼 젊은 외침, “아니야, 그렇지 않아!”


  세계 구석구석에서 전해오는 빛나는 이야기들. 오늘은 멀리 중남미 잉카 인디언 사이에서 전해온 옛이야기를 소개한다. 인디언의 전설과 우화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놀라운 예지로 관심 대상이 되어 왔다. 자연과 인간을 한 몸으로 여기는 세계관 등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다소 수동적이며 순응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면도 있는데, 아래 이야기는 색깔이 좀 달라서 눈길을 끈다.

  농민의 아들이 길을 가다 자기 몸보다 큰 나뭇가지를 짊어지고서 땀을 뻘뻘 흘리는 개미를 만났다. 소년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개미는 여왕의 명령으로 창고를 지으러 가는 길이라 했다. 자기들은 평생 그렇게 명령을 받들면서 산다고 했다.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아니야. 그건 불공평해!”
  소년은 다시 밭에서 땀 흘리며 쟁기를 끄는 소를 만나서 누구를 위해 그리 힘들게 일하느냐고 물었다. 소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했다. 수백 년 동안 해온 일이라 했다. 소년이 그건 불공평한 일이라고 하자 소가 말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너희 농민도 왕과 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거라고.”
  절망감에 빠진 아이가 부르짖었다. “아, 어떻게 해야 이걸 바꿀 수 있지?” 그러자 개미가 말했다. “불가능해. 하늘이 정한 질서야.” 소가 말했다. “맞아. 대들어봤자 죽음을 당할 뿐이야.” 토끼가 말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 사슴이 말했다. “이대로가 좋아.” 메추리가 말했다. “주어진 대로 살면 충분해.” 매가 말했다. “신의 뜻이야.” 동물들이 다 함께 입을 모아 말했다. “세상을 바꿀 순 없어!”
  동물들의 수많은 눈이 농민의 아들을 향했다. 그때 소년이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세상은 바뀌어야 해. 우리 인간은 바꿀 수 있어. 세상은 바뀌고 말 거야!”
  소년의 외침이 천둥소리처럼 산과 들을 울리자 메아리가 일어나 물결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할 수 있어.” “세상은 바뀌고 말 거야.”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메아리가 닿는 곳마다 변화가 생겨났다. 민둥산에 숲이 우거지고, 거친 들판이 비옥한 밭으로 변했다. 마을에 좋은 집들이 쑥쑥 생겨났으며, 왕궁의 담이 허물어져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동물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개미는 나뭇가지를 짊어지고서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소는 하늘을 올려다본 뒤 다시 쟁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인간 중심의 독단적 사고를 담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동물과 달리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합리화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인간:동물’의 대립으로 풀기보다 ‘희망:포기’, ‘믿음:불신’, ‘저항:순종’, ‘나아감:머무름’과 같은 의미요소에 주목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농민의 아들이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서 도전하고 저항하는 존재라면 동물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가운데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존재를 표상한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일이란 동물의 삶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인식이 서사 구도 안에 깃들어 있는 터다.
  한때 인간이 ‘도전하는 존재’의 표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젊은이들이 세상 앞에 지레 주눅이 들어서 기를 못 펴는 모습을 본다. 어떻게 해야 이 거대한 세계체제 속에서 밀려나지 않고 한 자리나마 차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같다. 거인의 그림자 앞에서 미리 알아서 엎드리는 식이다. 그 앞에 주어진 길이 무엇인가 하면 제 몸보다 큰 나뭇가지를 짊어지고서, 무거운 쟁기를 몸에 달고서 생각 없이 움직여 가는 일일 따름이다. 이 도저한 물신(物神)의 세상에 하나의 미미한 부속물이 되어서.
  지금이야말로 외쳐야 할 때가 아닐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우리가 움직이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저 산과 들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언제라도 메아리를 울려 퍼뜨릴 준비를 갖춘 채로. 갸륵한 젊은 외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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