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114

프린트하기

운수는 바뀐다!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사람..

신동흔

근간에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샘터, 2014)를 펴내면서 사람은 자기 먹을 복을 타고나니 걱정 말고 길을 나설 일이라 했었다. 살펴보면 정말로 복이 척척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한테 그것은 ‘남의 일’에 가깝다. “나는 왜 이렇게 안 풀릴까? 참 복도 없지!” 이렇게 한탄하는 쪽이 더 많아 보인다.

여기 복이 지지리도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부모를 잃고 고단하게 연명하는 상황에서 굶어죽을 팔자라는 저주까지 듣게 된 젊은이다. 그 검은 운명의 그늘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체 무엇이었을지, 그 행로를 따라가 보자. 대구에서 직접 수집한 설화에 담긴 사연이다(2006년 1월에 경상감영공원에서 박종문 어르신 구연).

옛날에 한 소년이 부모를 잃고 삼촌 집에서 쇠죽을 끓여주며 빌붙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과객이 그를 보더니 삼촌한테다가 그가 굶어죽을 관상을 지녔으니 집에 둬서 좋을 게 없다고 했다. 소년은 낙심하고 삼촌은 그를 꺼려 박대했다. 소년은 보따리를 싸서 작별인사도 없이 마을을 떠났다. ‘뭐 굶어죽을 팔자니까 어디든지 가는 대로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며칠을 굶어가며 길을 가던 소년은 정자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묵직한 엽전 보따리를 발견했다. “하이고, 내 굶어죽을 팔자에 돈 이거 필요 없다.” 이러면서 밀쳐놓고 떠나려는데 웬 관리가 황급히 뛰어와서 보따리를 찾았다. 보따리를 받은 관리는 그게 나랏돈이라며 보상금이라도 주려 했으나 소년은 마다하고서 길을 나섰다.

길을 가던 소년이 밤에 산중에서 외딴집을 발견하고 묵기를 청하자 처녀가 나와서 생명이 위험하게 될테니 그냥 가라고 했다. “하이고, 내가 굶어죽을 팔잔데 호랑이 물어간들!” 이러면서 소년은 그 집에 들어가 묵었다. 밤에 도깨비들이 나타나 위협했으나 소년이 겁낼 것도 없이 뭐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도깨비들이 절을 하면서 자기들은 땅속에 묻힌 은금보화인데 제발 꺼내달라고 사정했다. 다음날 도깨비들이 알려준 곳을 파보자 엄청난 금이 나왔다. 소년이 자기는 필요 없다며 금을 다 주고 길을 떠나려 하자 처녀가 그를 붙잡고서 배필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소년은 그게 인연인가 싶어서 찬물을 떠놓고 여자와 예식을 치렀다.

소년이 아내와 함께 금을 싣고서 돌아오자 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나라에서 소년을 찾는 전갈이 이르렀다. 예전의 관리가 그를 조정에 천거한 것이었다. 소년은 나라에 등용돼서 좋은 벼슬을 하게 됐다. 나중에 전날의 관상쟁이가 그를 다시 보더니만 “그때는 굶어죽을 팔자였는데 지금 보니까 아주 상이 좋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끝에 화자가 덧붙인 말은 “그러니 그 관상쟁이도 모르는 놈이래요.” 하는 것이었다. 관상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엉터리라는 말이다. 과객의 말 바꿈을 보면 과연 그리 말할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과객이 관상을 잘못 봤다는 쪽보다는 소년의 관상이 바뀌었다는 쪽으로 해석하고 싶다. 전날의 소년이 궁기가 가득했다면 뒷날의 그는 화기가 가득했을 터이니 전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외양의 차이가 아닌 내적이고 질적인 차이라는 사실이다. 소년은 ‘존재의 변환’을 이루어냈던 것이고 이야기는 이를 ‘관상이 달라졌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사람의 관상은 바뀐다. 왜냐하면 인간은 질적으로 변하는 존재이므로.

저 소년이 존재의 변환을 이루어낸 묘리는 ‘길 떠남’과 ‘마음 비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핍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어차피 한번 죽을 인생, 그까짓 거!’ 하는 마음으로 걸림 없이 떠나서 나아가다 보니 ‘먹고사는 일’보다 크고 소중한 본연의 가치를 체득하게 된 터다. 속박에서 자유로, 어둠에서 빛으로의 극적 전환이다. 우리 자신 이런 식으로 거듭 태어나 본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저게 누구야! 내가 알던 그 사람 맞아?” 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면 그 또한 꽤 멋진 일 아닐까?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67 업(業)이라는 이름의 미물, 또는 신!
2017.04.05. 34
66 세상을 바꾼 젊은 외침. 아니야, 그렇지 않아!
2017.02.06. 131
운수는 바뀐다!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사람..
2017.01.20. 115
64 소수자 도깨비 신의 초상
2016.12.15. 167
63 도깨비! 살아있는 사물과 씨름도 하고 춤도 추고
2016.12.15. 154
62 그새 1년이 지났네요. 이야기 모음집을 출간했습니다.
2016.01.24. 589
61 브레멘으로 가는 길, 신비의 황금열쇠
2015.01.20. 1149
60 새 책.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2014.12.29. 931
59 요하네스여, 나를 위해 훌쩍 되살아 오기를!
2014.11.26. 832
58 두 나그네와 옛이야기의 정치학
2014.11.01. 747
57 '세눈박이'와 '열두 창문'의 세상
2014.11.01. 885
56 갈피짬. 바르셀로나에서, 바람의 그림자를 찾아..
2014.09.30. 805
55 두 형제의 우여곡절과 인생이라는 험로
2014.09.09. 772
54 드넓은 세상의 주먹만한 아이
2014.09.02. 776
53 흰눈이와 빨간장미, 순수와 열정의 삶이란...
2014.08.16. 897


1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