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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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도깨비 신의 초상

신동흔

도깨비에 대해 쓰다 보니 이야기가 하나 더 생각났어요! 신으로 모셔지는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주도 무속신화 "영감본풀이"예요. <살아있는 한국신화>(한겨레출판, 2014)에 이야기와 해설을 수록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무서우면서도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는 우리의 오랜 친구, 바로 도깨비다. 우리 옛이야기의 영원한 주인공인 도깨비가 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일부 어촌 지역에서는 도깨비를 신으로 삼고서 고기를 많이 몰아다 달라는 뜻으로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  도깨비가 화재나 역질을 일으킨다고 인식하여 이를 방지하는 의례를 전승해온 지역도 있다. 남해 일부 마을에서는 남성들을 배제한 채로 여성들이 밤새 도깨비와 어울려 노닐면서 액을 방지하는 의례를 베풀었다고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도깨비를 영감이라 하여 신으로 모시는 가운데 <영감놀이>라는 의례와 <영감본풀이>라는 신화를 전승해 왔다. 신화 속의 도깨비,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영감의 근본은 서울 남대문 바깥에서 솟아난 김치백의 아들 삼형제였다. 삼형제가 나이 열다섯이 되자 마을 어른들을 박대하고 마을 처녀들 헛소문을 내므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마을이 끝장날 듯해서 만주 들은돌까지로 귀양을 보냈다.

삼형제가 송영감 집으로 들어가서 방을 얻어 묵던 중에 하루는 이상한 말을 했다.

영감님 집이 이토록 가난하지만 우리는 잘 먹으면 잘 먹은 값을 하고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합니다.”

무엇을 좋아합니까?”

소를 잡아도 전마리를 먹고 돼지를 잡아도 전마리를 먹습니다. 닭 잡으면 홍문연 대잔치요 수수떡 수수밥에 제육 안주에 소주를 좋아합니다. 우리를 잘 대접하면 부귀영화를 시켜두고 가겠습니다.”

어서 그건 그리 하십시오.”

하루는 송영감이 돼지를 통째로 잡아 수수떡 수수밭에 홍문연 대잔치를 드렸더니 김영감 아들 삼형제가 하는 말이,

영감님네는 세경 땅에 농사를 많이 지으십시오.”

그 말대로 농사를 많이 지었더니 삽시간에 부자가 되어 갔다. 한번은 또 송영감이 소를 통째로 잡아서 큰잔치를 드렸더니 하는 말이,

돈을 많이 빌려서 만주 장판으로 들어가서 우마 장사를 하여 보십시오.”

송영감이 우마 장사를 했더니 삽시에 천하 거부가 되어 갔다. 그때 동네 사람이 말하기를,

송영감이 그 전에는 가난하게 살다가 삽시에 청년 셋이 와서 산 뒤로 큰 부자가 되었는데, 그게 분명 사람이 아니고 생도깨비가 완연하다. 그 생도깨비를 예방을 시켜서 내보내지 않으면 살아날 길이 없이 집안이 다 망할 것이다.”

이렇게 생도깨비가 분명하다고 수군수군하여 가니까 송영감네가 그들을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가 뒤늦게 눈치를 채서 생도깨비라는 것을 알고 쫓아낼 핑곗거리를 찾았다.

영감님네 기술이 좋으시니 경상도 안동 땅을 우리 문 밖으로 떼어다 주십시오. 그러면 내내 데리고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내 집 밖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러자 도깨비 김영감네들이 말했다.

어서 그건 그리 하십시오. 풀무대장장이한테로 가서 쇠꼬챙이 일흔아홉 개를 만들어오면 경상도 안동 땅을 문 밖으로 떼어다 놓으리다.”

어서 그건 그리 하십시오.”

삼형제가 쇠꼬챙이 아흔아홉 개를 가지고 경상도 안동으로 가서 땅을 떼어내려 했으나 석달 열흘 백일이 되어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안동 땅을 떼어오지 못하고 돌아오자 송영감은 그 핑계를 대어 김영감 삼형제를 집골목 나무에 달아맸다. 송영감이 언월도 장검으로 삼형제를 세 도막 네 도막 내자 삼형제가 아홉 형제 열두 형제로 벌려 섰다. 생도깨비가 이제 죽은 도깨비가 되어서 골목으로 나섰다.

이때 송영감이 다시 도깨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방을 하는데, 백마를 잡아서 말가죽을 골목 입구에 걸쳐놓고 말피를 울안에 뿌려놓고 말고기를 문 앞마다 걸어놓았다. 김영감 도깨비들이 송영감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어디를 갈까 방황하다가 위로 삼형제는 서양각국으로 들어가고 가운데 삼형제는 일본 사당과 철공소로 들어가고, 아래 삼형제는 서울로 들어가고, 맨 아래 삼형제는 강경으로 들어가 벼락바위에 앉았다.

삼형제가 벼락바위에 앉았다가 천기를 짚어본즉 제주도가 좋은지라 제주도에 들어가고자 했다. 마침 제주 동복리 장선주와 김녕리 차동지가 무곡 장사차 강경 벼락바위에 이르므로 김영감 삼형제가 물었다.

어디 사는 어른이며 무엇하러 옵니까?”

살기는 제주섬에 살며 무곡 장사차로 옵니다.”

그러하면 우리 삼형제를 뱃삯 받지 않고 제주섬에 실어다주면 부귀영화를 점지해 주겠습니다.”

어서 그건 그리 하십시오.”

배를 띄워 제주로 들어올 적에 물결이 잔잔하고 순풍이 불어서 언뜻 제주섬에 이르렀다.

어느 포구가 좋습니까?”

김녕 일곱마들 포구가 좋습니다.”

그러면 김녕 포구로 배를 붙입시다.”

김영감 삼형제가 제주 땅에 내려서 놀음을 놀 적에 목관, 정의, 대정에서 놀고 또 제주성내로 들어가서 돼지도 전마리를 먹고 소도 전마리를 먹으면서 놀았다. 한 가지를 갈라서 소섬[우도] 동어귀직이로 들어가고, 또 큰장오리와 작은장오리와 오백장군에 가서 놀았다. 그때 어떤 사냥꾼이 총을 메고서 청삽사리 흑삽사리 황삽사리를 거느리고 올라와 큰 노루 작은 노루를 잡아서 노루가죽 더운 피에 피에 제육 안주와 소주가 좋아지니 한 가지를 갈라서 사냥꾼 집의 산신일월 하군졸로 들어섰다. 또 한 가지를 갈라서 한경면 낙천리 오일본향으로 좌정해서 잘 먹으면 잘 먹은 값을 하고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했다. 한 가지는 갈라서 청수리 연화동 가시밭에 오일본향으로 좌정하고, 대정읍 신평리 노랑골에 좌정하고, 대정 영락리 노랑골에 좌정하고, 한경 고산리 칠전동 노랑골에 좌정하고, 굴할망 굴할아방으로 고사를 받아먹고, 안덕 덕수리 김씨댁 뒷할아방 오일본향에 놀음 놀고, 덕수리 동풀무 서풀무에 놀음을 놀았다. 또 한 가지 갈라다가 한경면 고산리 당산 수월봉에 놀음 놀고, 한경 두모리 살래마루 하군졸로 놀음 놀고, 한림읍 금릉리 소왕마들 술일당에 좌정하여 잘 먹으면 잘 먹은 값을 하고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하고 놀았다.

열한 형제 열두 동무, 아홉 형제 일곱 동무, 여러 영감들이 놀음을 놀 적에 테만 붙은 망건 쓰고, 뼈만 붙은 쾌자에 깃만 붙은 도포를 입고, 목만 붙은 길목보선과 단만 붙은 행전에 깃만 붙은 신을 신었다. 반달같이 들메를 메고 한뼘도 안 되는 곰방대를 들고 앞으로는 청사초롱 밝히고 뒤로는 흑사초롱을 밝혔다. 언뜻하면 천리 가고 언뜻하면 만리 가면서, 바람을 의지 삼고 구름을 벗을 삼아 천리만리를 다니면서 잘 먹으면 잘 먹은 값을 하고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하는 영감참봉 신령님들이다.

 <영감본풀이>는 진성기 선생이 엮은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민속원, 1991)특수본풀이항목에 4편의 자료가 수록돼 있다. 여기서는 그 중 내용이 가장 풍부한 조술생 구연본을 바탕으로 사연을 정리했다. 자료에 따라서는 처음에 삼형제가 아닌 칠형제나 구형제가 태어났다고도 하며, 서울이 아닌 진도 완도 섬이나 강경 벼락바위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그 형제들이 각지로 흩어졌는데 놀기를 특히 좋아하던 일부 형제가 제주도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은 대체로 일치한다.

우리 민간전승에서 도깨비는 꽤나 잡스런존재로 이야기된다. 놀라운 재주도 많고 장난을 무척 좋아하는데 기분이 상하면 사납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영 쉽지 않은 존재다. 이러한 특징은 위 신화 속의 영감네들한테도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다. 김치백 삼형제가 어릴 적에 마을 어른들을 박대하고 동네 처녀 헛소문을 냈다는 데서 그들의 놀부심술을 읽어낼 수 있다. 그들이 일흔아홉 쇠꼬챙이로 안동 땅을 떼어내려 하는 모습 또한 장난기가 제대로 분출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송첨지는 그 장난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영감네를 떼어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온 삼형제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마음껏 놀음을 노는 것에서 저 도깨비 신들의 못 말리는 신명은 마음껏 발휘된다. 그들의 차림새는 또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집안에서 이단아로 찍혀서 멀리 만주로 귀양보내졌던 저 삼형제는 자신을 받아들여준 송첨지에게 응분의 보답을 해준다. 자기네 말대로 돼지와 소를 통째로 잡아주자 송첨지 집이 큰 부자가 되도록 해준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순간 마을사람들에 의해 생도깨비로 규정되면서 기피의 대상이 된다. 송첨지는 그들이 자기를 도와준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교묘한 술수로 그들을 떼어낸다. 아니, 떼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몸을 가른다. 그리고 혹시라도 후환이 미칠까 하여 백마의 피로 단단히 방비한다.

도깨비란 본래 흉한 존재이니 이렇게 냉정하고도 확실하게 떼어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 삼형제가 안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사람들과 다른 낯선 존재. 그리하여 기피와 배제의 대상이 되는 존재. 이로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소수자의 처량한 모습이다. 말피 냄새로 표상되는 사람들의 혐오감 앞에 노출되었을 때 저 악의 없는 장난꾼들은 얼마나 초라하고 스산했을까.

주목할 사실은 그들이 사람들의 기피나 배제에 의해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송첨지는 칼로 그들을 세토막 네토막을 내지만, 그들은 귀신으로 되살아나 아홉 형제가 되고 열두 형제가 되어 세상으로 퍼진다. 그들이 찾아간 곳이 어디냐면 서양 각국이고 일본국이고 서울이고 제주섬이었다. 말 그대로 온 세상으로 퍼진 상황이다. 그 가운데도 그들이 가장 신이 나서 움직인 곳이 바로 제주였다. 막내 삼형제가 자청하여 찾아간 제주섬은 과연 그들이 깃들 만한 곳이었다. 그 자신 작은 섬의 소외된 주민들이었던 제주 사람들은 영감네들을 신으로 받아들여 돼지를 통째로 바치고 소를 통째로 바치며 기꺼이 홍문연 대잔치를 벌여 준다. 그러자 신이 난 영감네들은 갈라지고 또 갈라져 이 마을 저 마을로 들어가 마음껏 노닌다. 잘 먹으면 잘 먹은 값을 하고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기꺼이 받아들여진 저 도깨비 신들은 더 이상 흉측한 기피의 대상이 아니다. 액운을 막아주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귀한 신이다. 신들이 다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저 도깨비 신은 특별한 면이 있다. 우스꽝스런 옷을 차려입고서 맘껏 노니는 도깨비 신은 유달리 친근하고 즐거운 존재가 된다. 그들에게 제사를 바치고 놀이[영감놀이]를 하면서 즐길 적에 사람들 또한 그들 안에 담겨 있는 유쾌한 신명을 한껏 펼쳐내는 것이니, 그야말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신성이 아니고 무엇일까.

사족 하나. 저 삼형제를 쫓아낸 김치백 집안은, 또는 송첨지 집안은 그 뒤에 잘되었을까? 이야기는 이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 하늘은 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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