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신동흔의 '옛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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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살아있는 사물과 씨름도 하고 춤도 추고

신동흔

오랜 만이네요. 제 이름으로 된 이야기 공간이 덩그라니 남아 있고 지난 이야기들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계신 듯하여 간간히 글을 올리려 합니다. 새로 쓴 글들은 아니고 근간에 써서 잡지 등에 실었던 글입니다. 요즘 드라마 "도깨비"가 화제라 해서 도깨비에 관한 글을 먼저 올립니다. 한국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하는 민속소식에 실었던 글입니다. 도깨비의 '사물적 속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글이지요. 흠.. 김은숙 작가께서 이 글을 읽으셨을 가능성도 혹시 있을까요?


  도깨비 설화와 민속 : 살아 있는 사물과 씨름도 하고 춤도 추고

      

  옛날이야기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도깨비다. 옛날엔 참 도깨비가 많기도 했었던 것 같다. 도깨비한테 홀려서 땀을 뺐다는 사람이 마을마다 한둘씩은 있었으며, 도깨비불은 여러번 봤다는 사람이 못봤다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른들이 산을 가리키며 저기 도깨비불이다!’ 하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여러 번이다. 밤길에 갑자기 도깨비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졸였던 기억도 난다.

  도깨비의 정체와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도깨비를 일컫는 말만 해도 여럿이어서, 도채비라고도 하고 독각귀(獨脚鬼), 허주(虛主), 망량(魍魎), 이매(魑魅)라고도 한다. 도깨비는 본래 남자의 속성을 지니는 존재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여자 도깨비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깨비 모습에 대해서는 올려다보면 키가 장승처럼 크지만 내려다보면 자그만하다고도 한다.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뿐이라고 말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부지깽이나 빗자루 따위가 도깨비로 변한다고 하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도깨비한테 뿔이 있는가 없는가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도깨비불 이야기를 제외하면, 도깨비 전승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도깨비와 씨름한 이야기이다. 어떤 남자가 밤중에 술에 취해서 돌아오는데 커다란 도깨비가 나타나서 씨름을 건다. 도깨비를 붙잡고서 밤새 끙끙대던 끝에 마침내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린 남자는 도깨비를 고목나무에 동여매 놓고서 돌아온다. 다음날 의기양양하게 그 자리에 가보았더니 나무에 묶여있는 건 도깨비가 아니라 빗자루(또는, 부지깽이, 도리깨)였다고 한다.

  정체가 빗자루나 부지깽이, 도리깨 등으로 이야기된다는 것은 도깨비의 존재적 속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사물이 변해서 사람처럼 움직인다는 것은 도깨비가 기본적으로 물귀(物鬼)’ 또는 물괴(物怪)’의 성격을 지님을 말해 준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 사이의 존재이니, 고차원의 신령(神靈)과도 구별되며 동물이 변한 귀물(예컨대, 구미호)과도 구별된다. 도깨비가 단순하고 투박한 것은 그들이 본래 사물의 속성을 지녔다는 것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도깨비의 형상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속성과 연결지으면 그 가닥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의 종류와 형태가 제각각인 만큼 도깨비 또한 아주 큰 것과 작은 것, 홀쭉한 것과 퉁퉁한 것 등 형상이 다양할 것이다.

  도깨비의 단순성과 투박함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 옛날에 어떤 사람이 우연히 도깨비한테 돈을 꿔주었다. 그러자 도깨비가 찾아와 돈을 갚는데, 갚은 것을 잊고서 매일 밤마다 돈을 갖다주는 것이었다. 도깨비가 자꾸만 찾아오자 귀찮아진 남자는 집에 말 피를 뿌려 도깨비가 못 오도록 했다. 그러자 도깨비는 앙갚음을 하겠노라고 그 사람의 집에 돈을 무더기로 쏟아 붓고 사라졌다고 한다. 남자가 돈이 제일 무섭다고 한 말을 듣고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 속의 도깨비는 말 그대로 단순 무식하다. 갚은 돈을 자꾸 갚는 어리석음도 그렇지만, 사람의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 돈을 무더기로 퍼붓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단순함은 한편으로 무언가 정감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빌린 돈을 어김없이 갚는다는 정직함도 그렇거니와, 들은 말을 그대로 믿는 우직함과 돈을 모른다고 하는 순수함이 마음을 끈다. 어쩌면 사람들의 약삭빠름에 대비되는 자연적 미덕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깨비가 지니는 일종의 미덕도 그렇지만, 그들의 놀라운 능력에 놀라게 된다. 사람들이 벌벌 떠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더기로 쏟아 붓는 식의 능력 말이다. 그들이지닌 방망이를 두드리면 원하는 게 무엇이든 나온다고 하거니와, 도깨비는 그야말로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능력 때문인지 도깨비는 예로부터 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예컨대 어촌 지역에서는 고기를 많이 몰아다 달라는 뜻으로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뱃고사를 지내면서 물 위에 참봉, 물 아래 참봉, 고기 많이 잡게 해주옵소서.” 하고 기원하는데 이때 참봉은 곧 도깨비를 뜻한다. 한편 도깨비가 화재나 역질을 일으킨다고 인식하여 이를 방지하는 의례를 전승해온 지역도 있다. 제주도 영감놀이는 도깨비에게 풍어를 빌고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굿거리로서, 도깨비와 관련되는 민속의례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들. 하지만 그 속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밤이 되면 문득 살아 움직인다. 그것을 두고 괴이하고 그릇된 일이라고 여기면 도깨비는 피해야 할 두려운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즐겁고 신기하며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면 도깨비는 신이 되고 친구가 된다. 모름지기 옛사람들은 도깨비에서 무서운 귀신의 모습보다 재미있는 친구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씨름을 좋아하고 술과 메밀묵이라면 깜빡 넘어가며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또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도깨비. 그를 통해 우주 만물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며 사람들의 삶에 극적 긴장감과 활력을 부여해 왔던 것이라고 하겠다.

  도깨비하고 말도 나누고 씨름도 하고 춤도 추면서 살아왔던 옛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첨단기능이 강조된 딱딱하고 무표정한 전자제품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보다 더 멋지고 풍요롭게 인생을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만물이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가만! 오늘날의 우리라고 그리 못할 일이 아니다. 손때가 묻어 있는 내 주변의 사물들, 거기 영혼을 불어넣어 도깨비 친구로 만들어 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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