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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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기행 2

마당

전북의 서쪽 2 - 부안,고창

 

# 모항 가는 길

  30번 국도는 해안을 따라 가는 길이다. 격포항에서 모항을 지나 곰소항으로 향하는 이 길은 최근 ‘헌화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파도가 도로까지 날린다. 중앙/지역의 길을 나는 직선/곡선의 차이로 본다. 직선은 지점과 지점을 ‘잇는 것’에 주목한다. 직선의 길은 최단의 길이다. 가로 막은 것들을 쓸어버린다. 곡선은 지점과 지점의 ‘사이’에 집중한다. 곡선의 길은 사연의 경사에 따라 형태가 정해진다. 중앙이 사상이 세우는데 열심인 반면 지역은 사연을 간직한다.   이곳에서 속도를 내는 것은 미친 짓이다. 모항 가는 길은 중심/주변, 지배/종속의 구도를 전복시킬 정도의 커브를 가졌다. 초행자들은 해안도로를 운전하며 9회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커브볼을 기다리는 타자의 심정이 된다. 그러나 몸을 사린다고 해서 길이 보이겠는가? 마음은 감춘다 해도 말은 새어가는 것. 모항을 갈 때는 '불광불급不狂不及' 자신이 세운 최대의 희망을 걸고 가야 한다.

 저기압이 북상하는 유월의 아침, 날은 흐리고 지나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절벽에 핀 꽃을 꺽으려는 노인이 길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날이다. 

 

  길의 오른편은 바다다.

  바다가 불편한 날이면 길 위까지 파도가 친다. 아슬하게, 그러나 결코 쉽게 끝을 보여주지 않는 삶처럼 모퉁이를 돌면 모퉁이가 있다. 마치 남녀간의 연애처럼, 나는 글쓰기 수업시간에 감정의 과잉을 설명할 때 '연애의 긴장감 유지'라는 비유를 종종 사용 한다. 긴장의 죄임과 풀림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문득 길 아래로 모항이 펼쳐진다. 힘이 잔뜩 들어간 활 모양이다. 아니 막 부풀기 시작하는 달의 모양이다. 이곳엔 속도의 욕망으로 잊혀진 '공동체의 서사'가 있다. 

 

  시인 안도현은 시 「모항 가는 길」에서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는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야 / 비로소 여행이란, / 인생의 쓴 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 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라며 독자들을 꼬드긴다. 시인의 말 대로  “모항을 아는 것은 /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모항이라는 이름도 그렇지만, 변산의 한 구석에 자리하면서 이곳은 '상상의 공간'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소개 되면서 수많은 항구 중 하나가 되었다. 문화 텍스트가 실재의 시간을 갖는 순간 획일화의 과정을 밟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의 아픔 같은 건 버리고 온 사람들이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가 문득 멈추는 곳. 모항母港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누군가 내게 모항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먼저 찬 술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폼을 잡으며 이야기 하려 할 것이다. 내게 모항은 무의식 속에 가라앉은 항구다. 젊은 날 부렸던 치기까지도 안아 줄 것 같은 바다. 그렇게 삶의 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면 문득'어머니의 품'(식상하다.) 같은 모항이 나타났다. 그래서 인근의 격포가 관광지로 들썩일 적에도 이곳은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하나 둘 찾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의 적요를 찾을 수 없다. 무엇이든 정말 좋아 한다면 소리 없이 좋아해야 하는 법이다.

 

  아직 철이 이른 해변에는 누군가 써 놓고 간 낙서가 있다. 

나는 인류가 남긴 가장 강렬한 상징을 한참 보았다. 하트 안은 그들의 영토, 누구도 침범 할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지역이다. 세상을 이해 한다는 것은 이렇게 영토가 재위치되는 순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그 쉼표 만큼의 시간에서 나는 세계의 안과 밖을 네트워킹하는 마력을 본다. 하트의 중심은 어디이고 주변은 또 어디인가?  내가 떠난 뒤에도 바다는 저 기호를 희롱하듯 '물어 뜯다', '놓아 주다'를 반복 할 것이다.  

 

   모항을 뒤로한 지 얼마 못 가서 길 왼편에 천연기념물 122호인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다. 시인 이성복이 “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런 나무 이름, 오랫동안 너는 어디 가 있었던가”라고 노래한 나무다. 삶이 무던히 가려울 때 그리하여 못 견뎌 할 때 나는 모항을 찾았던가? 그곳에서 호랑이 등을 긁어주는 나무를 보며 가려운 마음 한 구석 대고 있었던가?

 

  모항 지나 바닷가 언덕에 차를 세우고 곰소항 쪽으로 펼쳐진 칠산 바다를 본다. 바다 건너편에 있는 선운사가 지척이다. 비가 와락 쏟아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흐린 날이다. 칠산바다가 보이는 자리는 시인 송수권의 말처럼 “한쪽 귀로는 내소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 한쪽 귀로는 선운사의 쇠북 소리”(「대역사」)가 들릴 것만 같은 곳이다. 길은 갑자기 바다안으로 급하게 내려갔다 돌아나오면  소금벌레처럼 엎드려 살아온 이들이 사는 곳. 곰소다.

 

# 곰소

  곰소는 일제가 만든 항이다. 예전엔 서해안 고속도로의 나들목이 된 줄포가 부안의 입구였다.-이다. 곰소항은 한 때 수백척의 어선이 몰려오던 서해 4대항이었다. 목포, 제물포, 남포와 더불어 흥성거렸다. 고려시대의 부안지역은 ‘나라 재목의 보고’라고 불리며  수백척의 선박이 건조되었고, 백제시대에는 변산 일대에 수백개의 사찰이 있어서 스님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설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과거 백제부흥 운동이 부안을 기반으로 한 것도 이러한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줄포항에 뻘이 쌓여 일제로 물자를 반출할 만한 큰 배를 댈 수 없게 되자, 무인도인 곰섬을 중심으로 제방을 쌓아 육지로 연결하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곰소항이다. 물동량이 줄어든 요즘 곰소항은 천일염과 젓갈이 주거래 품목이다. 

 염전에서 일하는 인부에게 들은 말이다. 최고의 소금은 송화 가루가 날리는 봄에 만들어진다고. 나는 송화의 향이 스민 복숭아빛 소금 몇 알을 입 안에 털어 넣고 담배를 피운다. 염판위에서는 소금꽃이 폈다. 소금의 결정들은 바람결에 밀리며 바람의 길을 가르쳐 준다. 염부들은 비가 오기 전에 소금을 내기 위해 바쁘다. '소금을 낸다'는 말에서 나는 볕과 바람의 시간의 이야길 듣는다.  내가 아는 어떤 시인은 소금을 보고 '바다의 사리'같다고 말했다. 세상의 욕망과 회한을 날려버리고 오직 순수한 빛으로 남은 것. 그래서 간절함은 한의 빛인 흰색이 되었는지 모른다.

  곰소염전에 오면 배우 박근형이 염부로 출연했던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가 생각난다. 곰소염전을 배경으로 촬영한 이 영화에서 땡볕아래 수차를 밟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낡은 수차들이 보인다. 또 염전을 배경으로 한 김승옥의 소설 「환상수첩」에서 “어떻게든 살아있어야 한다.”던 수영의 말도 떠오른다.

  마음이 어지럽던 젊은 날. 곰소염전에 온 적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흰 소금사막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소금기 묻은 바람이 줄포만에서 불면 지상의 끝에 선 듯한 ‘환상수첩’의 풍경이 기억 속에서 소금꽃을 피우곤 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마음의 다른 한쪽이 누울 때, 세상 끝 곰소염전에 갔었다.

 

  소설가 신경숙에게도 곰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찾는 곳이다.

  정읍출신의 작가들(윤흥길, 신경숙, 박성우)은 이곳에서 어미의 바짝 졸여진 가슴 같은 것을 본다. 나는 전북의 내륙에서 태어나 자란 그들이 유독 곰소항을 사랑한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윤흥길은 이곳에 찾아와 처녀작을 썼고 신경숙도 최근의 화제작에서도 정읍과 곰소를 떠 올린다.

“곰소로 이사를 가버렸어도 난 당신을 찾아내버렸네. (……) 해안가 소금밭에서 당신이 짓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요. 곰소로 찾아간 나를 보고 당신이 내게 한 말도 무슨 일이요? 였재. (……) 곰소는 당신 때문에 내게 잊지 못할 곳이 되었재요.”(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그들은 “소금이 모자랄 때/ 제 눈물을 말려 먹는다는 소금벌레”(박성우 / '소금벌레')처럼 염부의 팍팍한 삶에서 어머니를 보았던 것일까? 다시 찾은 소금밭은 한적하다. 비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근의 곰소항에서  젓갈을 좀 사고 곧 내소사로 떠난다.

 

# 내소사

  곰소항에서 북쪽으로 5분 거리에 내소사가 있다. 하늘은 잔뜩 흐리다. 기상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사찰입구 주차장부터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듣는다. 접이 우산을 챙겨서 매표소 앞 전나무 길에 들어서자 참았던 듯 비가 내린다. 길 양쪽에 늠름히 서있는 전나무 잎 새로 푸른 빗방울이 듣는다. 길 위의 사람들이 녹색으로 물든다.

  경내에는 관광객들이 처마 아래 모여서 비를 긋는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들이 오래된 절의 시간을 흘려 보낸다. 나는 대웅전 꽃살무늬 문살을 슬쩍 만져본다. 희미해진 문양에서 희미한 옛향기가 손 끝에 스밀 것 같다. 

 

  비오는 날, 오래된 건물을 찾으면 인적이 드물어서 좋다. 그곳에선 특별한 냄새가 난다. 일상의 어수선함이 일순 가라앉는 분위기, 커피향은 진해지고 음악의 파장이 깊어지다. 선방의 아궁이에서 불을 땐다.  군불의 연기가 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사찰 마당에 가라앉아 비를 맞는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젖은 마음을 말리고 싶다. 불현듯 옛 건물 모퉁이에서 옛 사람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오늘 저녁은 사찰에 한 자리를 청해 젖은 마음을 뉘어도 좋으리라.

 

    "이 대웅보전을 지어 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어스럼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西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 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俗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마리가 천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 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四肢를 뻗고 늘어지는 걸 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서정주, 「내소사 대웅전 단청」 일부)

 

  전설에는 돌이 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며느리 방죽’, ‘소돔과 고모라’, ‘오르페우스’에는 경고를 무시한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늘 뒤를 돌아보는 대목에서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금기를 어기는 행동이 결국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수많은 이브와 판도라와 연금술사들이 금기를 어긴 호기심으로 역사를 만들다. 그렇다 누구나 호기심이라는 또 하나의 심장을 갖고 산다. 그것이 쿵, 쿵, 쿵, 울리는 순간을 나는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웅전 천정을 살펴보며 혹시나 날아들었을 새 한 마리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처럼.

 

  작가들에게 좋아하는 절을 꼽으라면 영주의 ‘부석사’와 예산의 ‘수덕사’ 그리고 부안의 ‘내소사’ 정도다. 이 절들의 공통점은 여성스러움이다. 처연함이 배어 있을 것만 같은 배경으로 작품이 쏟아졌다. 정읍출신 소설가 윤흥길은 교사시절 이곳 내소사에서 하숙을 정하고 습작시절을 보냈다. 그는 겨울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과로와 영양실조로 고생하며 글을 쓴지 2년 후인 1968년 새해 <회색 면류관의 계절>로 등단한다. 나는 문학청년 윤흥길이 걸었을 내소사의 전나무 길을 걸어 나간다. 비는 어느덧 그쳤다. 비에 젖은 전나무 길이 윤흥길의 창작무대인 셈이다. 절과 멀어질수록 전나무 향내가 짙어 진다.

 

<'고창 기행'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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